文, 제주 4.3 진실 거꾸로 보지 말라
文, 제주 4.3 진실 거꾸로 보지 말라
  • 최영재 편집국장
  • 승인 2020.0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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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3일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2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추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2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추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3일 “제주 4·3이라는 원점으로 돌아가 그날, 그 학살의 현장에서 무엇이 날조되고, 무엇이 우리에게 굴레를 씌우고, 또 무엇이 제주를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 72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서 이같이 말한 뒤 “누구보다 먼저 꿈을 꾸었다는 이유로 제주는 처참한 죽음과 마주했고, 통일 정부 수립이라는 간절한 요구는 이념의 덫으로 돌아와 우리를 분열시켰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제70주년 추념식 이후 2년 만에 참석했다.현직 대통령이 재임 중 제주 추념식 행사에 두 번 참석한 것은 문 대통령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의 발언을 하나하나 뜯어보자. 먼저 그는 무엇이 날조됐는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했다. 제주 4.3과 관련해서 지금까지 날조된 것은 없다.

오직 날조하고자 하는 좌익들의 시도만 있을 뿐이다. 4.3은 많은 희생자를 낳은 아픈 역사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는 명백히 대한민국 정부의 탄생에 대한 반대요, 도전이었다.

4.3 사태의 본질은 북한 김일성의 지령을 받은 남로당과 빨치산이 대한민국 정부의 출범을 거부한 사건이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앞서 제헌의회를 구성하기 위해 유엔 감시하에 5.10 총선거가 치러졌다.

당시 전국의 200개 선거구 가운데 오직 제주도 2개 선거구에서만 선거가 무산되고 나머지 198개 선거구에서는 무사히 총선이 치러져서 198명의 제헌의원을 선출했다.

◇4.3 사건 때문에 제주도만 5.10 총선 무산

1948년 11월 경찰 심문을 받기 위해 대기중인 제주도민들. 사진=제주 4.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
1948년 11월 경찰 심문을 받기 위해 대기중인 제주도민들. 사진=제주 4.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제주도에서는 남로당 무장대가 난동을 일으켜 선거관계자들과 경찰 및 가족들을 학살하고 난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선거가 치러지지 못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태가 악화되어 희생이 커진 것은 남로당 무장대 지도부가 월북하여 상황이 제대로 통제되지 못한 가운데 전시적 내란 상태에서 토벌대와 민간인과 뒤섞인 무장폭도들간의 상호 불신의 감정이 증폭되었던 데 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통일정부 수립이라는 간절한 요구는 이념의 덫으로 돌아와 우리를 분열시켰다”고 했다. 그야말로 적반하장격의 역사 해석이다.

문 대통령의 이 말에는 북한과 남한이 통일정부를 같이 만들어야 하는데 1948년 남한이 먼저 단독정부를 만들려고 했고 그 단독정부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이 제주 4.3이라는 역사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북한 정권은 제주 4.3이 일어나기 2년 전인 1946년 2월 8일에 이미 수립되어 있었다. 1946년 2월 8일 ‘북부 조선 각 정당 사회단체 지도자, 각 행정국, 각 도 ‧ 시 ‧ 군 인민위원회 확대협의회’가 평양에서 열렸다.

이 회의는 북조선의 중앙행정기관으로 ‘북조선 임시위원회’를 수립할 것을 결의하였다.

◇북한은 1946년 2월에 이미 단독정부 수립

1948년 9월 9일 발족한 북한의 초대 내각. 앞줄 가운데가 김일성, 김일성의 왼쪽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두봉, 오른쪽이 부수상 겸 외무상 박헌영.
1948년 9월 9일 발족한 북한의 초대 내각. 앞줄 가운데가 김일성, 김일성의 왼쪽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두봉, 오른쪽이 부수상 겸 외무상 박헌영.

이 북조선 임시위원회는 단순한 중앙 행정 기관 역할뿐만 아니라 사실상의 주권 기관이었다. 북한은 이미 이 때부터 사실상의 북한 단독 정권을 수립했던 것이다.

이 위원회는 다음해인 1947년 2월 ‘북조선 인민위원회’가 되고 그 다음해인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내각으로 간판을 바꿔 달게 된다.

이렇게 1946년부터 이미 실질적으로 존재하던 북한 정권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저지하기 위해 일으킨 무장폭동이 4.3 사건이었다. 문 대통령은 아마도 사건을 왜곡해서 사건의 본질을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국가폭력으로 규정하고 싶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누가 무슨 정치적 목적으로 초기 사태를 일으켰고, 어떻게 빨치산 무장조직이 만들어지고 어떤 무기가 동원됐는지는 철저히 숨기고 싶을 것이다. 오로지 그는 군경의 진압과정에서 벌어진 민간인 희생만 부각하고 싶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미 대한민국을 건국과정에서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국가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여러번 이 같은 역사인식을 공개적으로 내비쳤기 때문에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때문에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국가로 만들려면 4.3의 본질을 왜곡해야만 한다. 그리고 사건을 ‘국가폭력의 문제’로 몰고가야 한다.

문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선서했다. 이런 선서를 스스로 부정하는 대통령을 우리는 언제까지 지켜보아야 하나?

sopulg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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