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
김승옥

문재인 대통령이 6대 대기업 총수를 불러 투자 확대를 주문하면서 좋은 일자리는 기업의 몫이고 정부는 최대한 지원할 뿐이라고 했다. 일자리를 민간이 만든다는 생각은 고정관념이라며 공공부문 일자리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발언이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경제원리를 무시해 시장을 왜곡시켰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부동산시장과 고용시장이다. 이제야 시장의 힘을 깨달은 것인지, 아니면 알고 있었으나 정치적인 이유로 무시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정권 말기라도 이런 말을 하니 다행이다.

문 대통령은 비정규직을 시장에 맡기지 않고 정부의 힘으로 없애려고 하다가,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인국공)에 사장이 두 명이 생기는 사태가 벌어졌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틀 만에 인국공을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하며 보안검색원 정규직화를 밀어붙였다. 비합리적인 조치라고 판단해 시간을 달라고 했다가 해임당한 전 사장이 해임무효소송에서 승소해 경영에 복귀하면서, 사장이 두 명이 되었다. 문 정부나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을 사라져야 할 악이며 노동자 착취의 일환이라고 여긴다. 과연 이것이 올바른 이해인가?

우선 비정규직이라는 개념 자체가 애매하고,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용어다. 세계에서 사용되는 비슷한 용어가 비상근이다. 비상근은 부정적인 어감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2007년에 소위 비정규직 관련 3개 법률을 제정하면서, 마치 비정규직은 나쁜 것처럼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비상근직은 나쁜 것이라고 인식하는 나라는 세계에 거의 없다. 왜냐하면 기술 발전 등으로 비상근이나 유연한 노동시간제를 원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사실 기업의 임원이나 장관직은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비정규직이다. 예술가, 스포츠맨, 특수형태 고용자들도 비정규직이다. 육아나 자율성을 원해서 비정규직을 선호하기도 한다.

물론 비자발적 비정규직이 문제다. 만약 한국의 기업들이 취업을 희망하는 모든 사람을 정규직으로 고용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능력이 된다면 비정규직 제로를 추구할 수도 있다. 현실 세계에서는 정규직으로 완전고용을 이룩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그렇다면 비정규직으로라도 고용되는 것이 실업자보다 더 나을 것이다.

노동시장이 경직적일수록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번 채용하면 정년이 될 때까지 해고 못 하니 기업은 정규직 고용을 꺼리는 것은 극히 당연하다. 파견근로 대상 직업군도 정해 놓았다. 아마 이렇게 경직적인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해고가 자유로운 미국은 비정규직 비중이 가장 낮지만, 고용 보호가 강한 프랑스나 포르투갈 등은 그 비중이 높다.

문 정부는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하고 노력하면서, 22만 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실제로 지난 4년여 동안 전체 비정규직이 159만 명 늘어 사상 최대가 되었으며, 정규직과 임금 격차도 157만 원으로 가장 크게 벌어졌다. 비정규직은 정부가 법이나 힘으로 강제한다고 해서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비정규직을 줄이려면 정규직의 고용 보호 수준을 낮추고, 파견근로를 대폭 확대하는 등 고용시장을 유연하게 바꾸어야 한다. 정책 실패에 대한 반성 없이 자신의 공적을 과장하는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라는 것을 인정하듯이, 비정규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없애고 노사 간 계약에 맡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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