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무하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겸 총리가 방한했다. 오전에는 한남동 공관에서 윤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오후에 롯데호텔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 등과 차담회를 가졌다. 주요 의제는 사우디의 국책프로젝트 ‘네옴시티’(NEOM CITY) 등 도시 인프라 개발과 원전 및 방산 협력이다. 이 중심에 ‘네옴시티 프로젝트’가 있다. 빈 살만 왕세자가 2017년 석유 중심의 경제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발표한 초대형 신도시 건설 사업이다.

네옴시티 프로젝트는 홍해와 인접한 사우디 북서부 사막지대에 서울의 44배(2만6500㎢) 크기의 신도시를 2030년까지 완공하는 사업이다. 총규모 5000억 달러(약 700조 원)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고유가로 인해 아무리 오일머니가 넘쳐난다고 하더라도, 사우디가 필요로 하는 자금과 기술은 해외의 협력 없이는 조달이 불가능하다.

이를 잘 알고 있는 1985년생 빈 살만 총리는 지난 15~16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석,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과시하면서 미국과 관계 개선을 도모했다. G20 정상회의에 이어 한국-일본-태국 순으로 방문해 국책 프로젝트에 소요되는 자금 1조 달러와 산업·기술 협력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우디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자금과 산업·기술이 무엇인지 헤아려 보면, 원전·방산·도시인프라 개발 등에서 한국 정부와 기업은 중요한 협력 파트너다. 우리가 결코 저자세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1970~80년대 오일머니가 만든 중동 건설 붐은 한국 기업에 엄청난 이익과 경험을 제공했다. 하지만 2010년을 전후한 한국의 중동 건설 시장 진출은 대체로 저가·덤핑 수주로 귀결됐다. 아랍 상인 특유의 상술에 놀아나 출혈 경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아랍은 진득하게 땅을 개간하고 작물을 재배하는 농경 문화가 취약하다. 그래서 산업기술 입국은 이루지 못했지만, 빼어난 상술 내지 상업 문화가 있다. 유대 상인, 중국 상인과 함께 이들을 세계 3대 상인으로 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우리가 달라져야 한다. 우리 기업끼리 출혈경쟁을 벌이지 않도록 통합 조정하는 정부 역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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