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始原 '황해 문명'··· 초원의 길로 빛을 전하다
문명의 始原 '황해 문명'··· 초원의 길로 빛을 전하다
  • 김유라 역사 에디터
  • 승인 2017.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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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겨레의 나라<上> -- 황해 초원에서 꽃 피어난 '황해 문명'
(그림1) 토바 호수. 토바 화산폭발구가 싱가포르 크기의 호수가 되었습니다. 7만5천년 앞서의 대폭발은 17도나 온도를 떨어뜨려 인류를 멸종의 위기로 몰고 갔습니다.
(그림1) 토바 호수. 토바 화산폭발구가 싱가포르 크기의 호수가 되었습니다. 7만5천년 앞서의 대폭발은 17도나 온도를 떨어뜨려 인류를 멸종의 위기로 몰고 갔습니다.

아득히 먼 옛날에 남태평양에 무(MU) 대륙이 있었는지 북대서양에 아틀란티스 대륙이 있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아마 21세기 안에 그 태고의 비밀이 윤곽을 드러낼 듯합니다.) 이제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7만5천년(토바 화산) 그리고 2만5천년(옐로우스톤 타우포 화산) 앞서 엄청난 화산폭발이 있었으며 그때마다 하늘은 어두워지고 얼음추위가 닥쳐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는 멸종의 고비를 넘나듭니다.(그림1)

(그림2) Transition of ‘From Foraging to Farming In North China’/ 2004, Sydny Univ.
(그림2) Transition of ‘From Foraging to Farming In North China’/ 2004, Sydny Univ.

살아남고자 해 뜨는 동쪽으로 모여든 인류의 조상들이 마침내 이른 곳은 오늘 황해로 불리는 낙원이었습니다.(그림2) 북쪽의 툰드라, 서쪽의 사막, 남쪽의 삼림지대와는 달리 탁 트인 풀밭에 오늘의 압록강과 황하가 하나로 모여 큰 강줄기로 굽이치고 있었습니다. 빙하기 유라시아에서 만날 수 있었던, 하나밖에 없는 ‘기름진 초승달지대’로서 2만년 앞서 수렵과 어로 및 채집으로 살던 인류에게는 극락이었습니다.(그림3)

(그림3) 방사성탄소연대 1만8천년 앞 (~1950년, BP) / Winsconsin Univ.
(그림3) 방사성탄소연대 1만8천년 앞 (~1950년, BP) / Winsconsin Univ.

바로 그 곳에서 1만년 가까이 인류의 첫 문명이 펼쳐졌으니 <황해문명>이라 부르겠습니다. 이윽고 얼음의 날이 가고 다시 바닷물이 들어찬, 1만년 앞쯤이 되면 황해초원은 사라집니다.(그림4) 풀밭은 중앙아시아로 헝가리 들판을 거쳐 아나톨리아로 지중해로 마침내 기름진 초승달 메소포타미아로 이어지며 <첫 초원의 길>을 이룹니다. 그러나 풀밭이 널리 펼쳐진다고 저절로 사람들이 그 곳의 임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황해초원은 44m 아래 황해 바다에 잠겨버렸지만 그 인류문명의 새벽이 있었기에 첫 초원의 길을 인류의 힘으로 누빌 수 있었습니다.

(그림5) 방사성탄소연대 8천년 앞 (~1950년, BP) / Winsconsin Univ.
(그림4) 방사성탄소연대 8천년 앞 (~1950년, BP) / Winsconsin Univ.

 

신석기와 농경 그리고 정착문명에서 유목문명까지 길을 닦다.

먼저 2만2천년 앞서 펼쳐진 장흥 신북마을의 신석기 유적입니다. 그림2에서 보듯이 장흥은 오늘과 달리 그 무렵 강가였습니다. 제대로 물고기 잡고 농사짓는 인류가 나타나는 때는 뗀돌(타제석기)과 간돌(마제석기)로 가름을 합니다만 신북마을에서 간돌이 쏟아지면서 ‘1만년 앞쯤 인류의 신석기혁명’이란 이론이 빛을 잃었습니다. 더군다나 신북유적은 구석기 유적에서 신석기 유적이 같이 발굴된 바로서 이는 일본 나가노현 간노키 유적과 히비야 유적 말고는 없습니다. 오늘의 일본 열도까지 이어져있을 때이니 바로 황해문명의 자취입니다. (뾰족밑 빗살무늬토기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그림5)

공중에서 내려다 본 장흥 신북마을과 여기서 출토된 신석기 간돌 유물들(오른쪽)과 뾰족 밑 빗살무늬 토기(왼쪽)입니다.
(그림5)공중에서 내려다 본 장흥 신북마을과 여기서 출토된 신석기 간돌 유물들(오른쪽)과 뾰족 밑 빗살무늬 토기(왼쪽)입니다.

다음으로 농경입니다. 이미 콩의 원산지가 삼한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에 더하여,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에서 지구마을에서 가장 오래 된, 1만3천년에서 1만5천년 앞서 재배 벼의 볍씨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수메르는 BC 9500년 무렵, 인도는 BC 6000년 무렵, 이집트는 BC 5000년 무렵, China는 BC 2500년 무렵부터 농경.) 게다가 소로리 볍씨에서는 벼의 두 종류인 자포니카와 인디카가 모두 발견되어 벼의 기원이 황해초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조-콩-수수-기장 등 이기작(二期作)으로 한 해 내내 농사를 지어 생산성 또한 높았습니다.(그림6)

농경은 곧 정착문명으로 이어집니다. 더욱이 쌀농사는 가족농과 씨족 사회 그리고 마을이 나타남을 뜻합니다. 논을 만들어 물을 대는 것부터 모내기와 벼 베기 그리고 가을걷이까지 두레가 아니면 못 합니다. (또한 전문기술이 있어야 하기에 1937년 스탈린은 러시아 동포들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곳곳에 쌀농사 전문가로 끌고 가서 죽든 말든 부려먹었습니다.)

(그림5) 인류 첫 농경문명- 소로리 볍씨 유물.
(그림6) 인류 첫 농경문명- 소로리 볍씨 유물.

쌀농사가 커지면 대규모 치수사업으로 이어지니 이는 곧 고대국가의 등장을 뜻합니다. 물길과 저수지 등 관개시설을 짓고 다리를 놓으려면 두레로는 턱도 없으니 많은 사람들을 모으고 다스리는 정치조직이 나타남은 필연입니다. 그래서 고대 동아시아에서 ‘치수(治水)는 곧 정치’였습니다. 치수에는 동이족을 으뜸으로 쳤으며 ‘물을 잘 다스렸다.’는 요순(堯舜)이 동이족이라 함은 황해문명 때의 자취가 역사시대로 고스란히 이어지는 신화시대의 고리를 문명의 지각생 화하족의 눈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처럼 황해가 바다가 된지 1만년입니다. 그 뒤 요하문명이 나타나고 바로 그 터에서 단군조선이 들어섬은 코리아의 상고사가 China와는 달리 더는 신화의 영역이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의 영역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위서(僞書) 논란은 그만 땅에 묻고 재야로 밀쳐버린 여러 책들을 대놓고 비출 때가 되었다 싶습니다. (지난 주, 끔찍했습니다만 모화사대(慕華事大)의 뿌리를 뽑으려면 이제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역사시대를 맞이하라! <해의 길>

높은 생산성을 지닌 농경문명과 그를 뒷받침할 고대국가의 원형만 갖고 첫 초원의 길을 엶에는 무언가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는 두 가지 뜻입니다. 먼저, 농사를 돌아다니며 지을 수 없습니다. 곧 유목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도우미가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들짐승과 날짐승이 다스리는 초원에 나서려면 든든한 동맹군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몽골 초원(사람만 있는 테렐지 말고 말 그대로 사람 없는 초원)에서 하룻밤만 게르 안에서 자보면 느낌이 옵니다. 저 멀리 들리는 짐승 소리. 그 짐승과 처음 맞닥뜨리며 사람을 지켜줄 용사가 개입니다. (이 말고도 고기와 옷도 있어야 합니다. 수렵하던 인류가 갑자기 밥과 풀만 먹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개 말고 다른 짐승들도 길들입니다.)

개의 조상은 동북아 회색 늑대라 합니다. 진돗개와 풍산개가 늑대 같아 보이는 까닭입니다. 삼한의 땅에서 그 무렵으로 보이는 개 뼈가 많이 나옵니다. 개의 뒤를 이어 양-염소-소-말-돼지-닭 차례로 짐승들이 길들여집니다. 길들여진 때를 거슬러 올라가면 1만5천년-1만1천년-9천년-7천년-5천년-5천년-4천년 앞이랍니다. (양-염소-소는 지중해에서 인도까지, 돼지와 닭은 인도에서 동남아까지, 그 사이에서 길들여졌답니다. 말은 따로 중앙아시아입니다. 이는 곧 7천년~5천년 사이 소와 말 즉, 농경문명과 유목문명이 새로운 차원에 접어듦을 뜻합니다. 다음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개를 빼고 나머지들은 유라시아 초원의 길을 따라 정착문명이 자리 잡은 뒤 하나둘 가축이 됩니다. 이렇게 개의 자리는 남다릅니다. 그렇게 농경과 유목의 채비를 차린 뒤 사람과 개는 함께 길을 떠납니다. 1만5천년 앞서 사람의 벗이 된 개는 8천년 앞쯤이 되면 온 누리에 퍼집니다. 그 무렵이 곧 황해초원에서 뻗어 나온 인류문명의 첫 햇살이 지구마을 곳곳에 자리 잡은 때입니다. 이 인류문명의 새벽을 무어라 부를까 궁싯거리다 <해의 길>(Sun Road)이라 이름 지어봅니다.

고작 ‘6백~3천’(계백 어른의 결사대보다 적습니다.)이 살아남을 만큼 멸종의 위기까지 겪었던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가 진저리치는 얼음의 날을 지나 살아남으며 마침내 정착농경문명까지 이뤄낸 황해초원의 황해문명. 그러나 멸종이 아니라 이제 넘쳐나는 인구를 견디다 못해(기후변동으로 풀밭이 옮겨진 까닭에 더해서입니다.) 다시 지구마을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감격의 시대’는 ‘얼음의 날’을 넘어선 ‘해의 길’로서 인류의 첫 지구 나들이입니다.

이까지 인류문명의 새벽을 훑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역사시대를 다루겠습니다. 초원의 길과 바다의 길 그리고 그 DNA와 오늘 우리가 이어가야 할 자산을 하나하나 살피겠습니다. 쉽진 않지만 눈여겨봐야 할 바가, 벼농사나 목축이나 삼한의 땅에서 곧장 수메르 쪽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다시 세 대륙으로 퍼짐입니다. 그런데 인디아나 동남아 그리고 차이나로 이르는 길은 갈 때 거쳐 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되돌아오는 길에서 꽃이 핍니다.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유라시아 바다의 길이기도 하지만, 지도로는 삼한의 땅 바로 옆인 차이나(中原)가 문명의 무대에 뒤늦게 오른 까닭도 밝히겠습니다. 곧 뵙겠습니다.

< 출처- 도움 받은 글과 그림 > 어느 재야 사학자 / 홍익희 세종대 교수

kyr@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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