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에 이어 ‘문학’을 보자. ‘국어’의 주요 콘텐츠가 ‘문학’이라서 두 개념은 깊이 얽혀 있다. ‘글월文’과 ‘배울學’ 모두 유구한 역사를 가지지만, ‘문학 소녀’ ‘문학 청년’ 같은 의미의 우리말 ‘문학’은 일본어 ‘Bun’gaku文學’에서 왔다. Literature(영), litterature(불) 등의 번역어다. 19세기 후반부터 이런 의미로 쓰기 전까지는, 육예(六藝, 주역·서경·시경·춘추·예·악)의 ‘글을 배움’ 즉 ‘學文’이었을 뿐이다.

사람의 사상·느낌을 글로 감정에 호소하는 심미적 창작품(시·소설·희곡·수필·평론)이 현대적 의미의 ‘문학’이다. 역사적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기에 문학은 특정 시대·계급 이념을 반영하기도 한다. 인생의 통찰을 이끄는 철학성과 함께 문학의 ‘정치성’이 거론되는 이유다. 동북아에서 문학은 한 때 구국·계몽의 방법론, 이념의 도구였다. ‘순수문학’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발상이 ‘민족문학’을 거쳐 ‘순문학’ ‘대중문학’이라는 개념으로 남아 있다.

‘문학’은 근대에 비로소 등장한 현상이다. 중세문학·고대문학 등은 오늘날 편의상 그렇게 쓰는 것에 불과하다. ‘문학’이 성립하려면 일정 수준의 문자 해독률 즉 익명 다수의 독자가 필요하다. 자본주의의 성장, 근대식 교육, 활자매체의 보급 등 근대국가의 성숙 과정에서 벌어지는 모든 조건들의 총합으로 가능해진다. ‘문학’은 시민사회의 희로애락을 담은 ‘언어예술’이자 주요 ‘오락’이었다.

‘문학’의 장(場)인 시민사회가 근대국가(nation state)와 함께 성장했다. 헌법을 가진다는 게 근대국가의 핵심이다. 근대적 법체계가 법적 존재로서의 근대인을 구축했다면, 문학이 개인적 내면을 만들었다. 법-문학은 근대사회의 안과 바깥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제국의 국민으로 살면서 ‘문학’을 통해 내면 속에 별도의 ‘우리나라’를 상상해낼 수 있었다. 조선인의 국가나 민족을 공공연히 말할 수 없었으나, 조선어로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라는 ‘상상의 공동체’가 다져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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