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진영 언론매체들 모두 폐쇄...처음으로 반중파 없는 의회 선거

29일 홍콩에서 국가안전처 소속 경찰이 민주 진영 온라인 매체 스탠드뉴스의 패트릭 람 편집국장 대행을 체포해 연행하고 있다. 국가안전처는 이날 신문 사무실을 압수 수색하고 전·현직 간부 6명을 선동적 출판물 발간 모의 혐의로 체포했다. 2014년 홍콩 우산혁명의 해 12월에 창간한 스탠드뉴스는 민주진영 온라인 매체로 인기를 누려왔다. /로이터=연합
29일 홍콩에서 국가안전처 소속 경찰이 민주 진영 온라인 매체 스탠드뉴스의 패트릭 람 편집국장 대행을 체포해 연행하고 있다. 국가안전처는 이날 신문 사무실을 압수 수색하고 전·현직 간부 6명을 선동적 출판물 발간 모의 혐의로 체포했다. 2014년 홍콩 우산혁명의 해 12월에 창간한 스탠드뉴스는 민주진영 온라인 매체로 인기를 누려왔다. /로이터=연합

2021년, 코로나19의 변이 확산 때문만이 고통은 아니었다. "중국 당국에 의해 일년 내내 홍콩 민주화 운동의 모든 게 짓밟혔다"고 AP통신은 29일(현지시간) 강조했다. 외신들이 꼽는 2021년 최대 뉴스의 하나가 ‘홍콩 민주주의 말살’이다.

홍콩국가보안법 시행 후 매체 두 곳이 문을 닫았다. 26년 역사의 ‘빈과일보’는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행사(7월 1일)를 앞두고 폐간, 온라인 신문 ‘스탠드뉴스’도 며칠 전 정리됐다. 지난 6월 경찰은 빈과일보를 급습해 간부·주필을 체포하고 자산을 동결했다. 2019년 이래의 글 30여편이 ‘외세와 결탁’했다는 혐의였다. 지난 29일엔 당국을 향한 증오 선동 보도의 혐의로 스탠드 뉴스 관련자 7명을 체포하고 회사 자산을 동결하자, 이 매체는 몇시간만에 폐간을 선언한다. 마지막 남은 민주진영의 뉴스 사이트였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국가 두 체제) 약속의 훼손이라며 유감을 표했고, 국제 언론 감시단체 ‘국경없는기자회’는 지난 7월 캐리 람(林鄭月娥) 홍콩 행정장관을 ‘폭압자(predators)’ 명단에 올렸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꼭두각시임이 증명됐으며, 이제 공공연히 시 주석의 언론정책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스탠드뉴스 급습은 홍콩 입법회(의회) 선거를 친중 진영이 싹쓸이 한 지 열흘만에 벌어졌다.

 

 

지난 19일 홍콩 입법회 선거에서 전체 90석 중 89석이 친중파로 채워졌다. 나머지 1명은 중도 성향으로, 1997년 중국에 반환된 후 반중파 후보조차 없는 첫 선거였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애국자치항(愛國者治港·애국자가 홍콩을 다스리다)’ 원칙을 내세워 홍콩이 중국의 통제권 안에 있어야 함을 분명히 했다. 지난 3월 이 원칙에 따라 홍콩 선거제가 개편됐고, 그런 조처에 대한 화답이 선거 결과였다. 후보들은 당국의 자격심사를 거치고 충성맹세도 해야 했다. 싸늘한 민심 속에 투표율 역대 최저(30.2%)였으나, 캐리 람 행정장관은 친중파의 대승을 부각시키고 "정부가 잘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자축했다. 이날 ‘애국자치항 원칙으로 홍콩 정세가 안정, 민주주의 또한 발전했다’는 내용의 중국공산당의 백서가 나왔다.

홍콩의 홍콩중문대 교정에 ‘민주주의 여신상’이 세워져 있을 당시 모습(위)과 24일 새벽 조각상이 철거된 뒤 빈자리(아래)를 각각 찍은 사진. ‘민주주의 여신상’은 1989년 중국 톈안먼 시위 당시 대학생들이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에 세운 동명의 조각상을 본떠 제작한 것으로, 유혈 진압된 6월 4일을 의미하는 뜻에서 6.4m 높이로 제작됐다. 이 조각상을 설치한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支聯會·지련회)는 지난 9월 해산됐다. /AFP=연합
홍콩의 홍콩중문대 교정에 ‘민주주의 여신상’이 세워져 있을 당시 모습(위)과 24일 새벽 조각상이 철거된 뒤 빈자리(아래)를 각각 찍은 사진. ‘민주주의 여신상’은 1989년 중국 톈안먼 시위 당시 대학생들이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에 세운 동명의 조각상을 본떠 제작한 것으로, 유혈 진압된 6월 4일을 의미하는 뜻에서 6.4m 높이로 제작됐다. 이 조각상을 설치한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支聯會·지련회)는 지난 9월 해산됐다. /AFP=연합


민주화운동을 추모하는 예술 작품들도 연달아 사라지고 있다. 홍콩중문대의 ‘민주주의 여신상’은 1989년 시위의 유혈 진압일(6월 4일)의 기록이라는 의미에서 높이 6.4m로 제작됐다. 같은 날 홍콩 링난대에선 추모 벽화가 철거됐다. ‘민주주의 여신상’과 함께 천안문 광장에서 홀로 탱크를 막아선 일명 ‘탱크 맨’과 총탄에 희생된 이들의 모습이 담긴 양각 부조 작품이다. 이틀 전, 24년간 홍콩대에 전시됐던 천안문 시위 추모 조각상 ‘수치의 기둥’ 역시 철거됐다. 덴마크 작가 옌스 갤치옷이 제작해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연합회(지련회)에 기증, 지련회가 홍콩대에 전시한 것이었다. 지련회는 홍콩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박을 받다 지난 9월 말 자진 해산했다.

홍콩·중국 행정부 관련 중요 정보가 보도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의 마지막 흔적이 지워졌다는 뜻이다. 100명 이상이던 활동가들은 국가보안법을 피해 해외로 도피·체포, 노동조합이나 기타 독립 조직 또한 폐쇄됐다. 인권전선(Civil Human Rights Front)도 마찬가지다. "자유언론 없이 어떤 민주주의도 작동 못한다"고 작년 6월 설립된 대(對)중국 의회간 연합체(Inter-Parliamentary Alliance on China)의 루크 드 폴포드는 말했다. 홍콩 민주화운동의 모든 기억이 이렇게 삭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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