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울(6세기 초, 지름 1.4㎝).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에서 금령총에 초점을 맞춘 특별전 ‘금령, 어린 영혼의 길동무’가 열리고 있다(내년 3월5일까지 무료 관람). 국보 ‘금령총 기마인물형 토기’를 비롯해 금관·금방울 등 300여 점의 유물이 나왔다. 이를 통해 최근 3년간 금령총을 재발굴한 성과와 보존처리 결과 등을 소개하는 것이다. 짧은 기간의 조사였음에도 발굴보고서가 충실하게 작성됐고, 신라 적석목곽묘(積石木槨墓·돌무지덜넛무덤) 구조의 이해에 크게 공헌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금령총이란 6세기 초반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의 중요한 유적 중 한 곳이다.

1924년 첫 발굴 때부터 2018년 국립경주박물관이 다시 발굴에 나서기까지의 여정을 전시에 담았다. ‘금령총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프롤로그) ‘1924년: 금령총, 세상에 드러나다’(1부) ‘내세로의 여정을 같이하다’(2부) ‘2018년: 금령총, 다시 들여다보다’(3부) ‘재발굴이 가져온 1500년만의 만남’(에필로그) 등 5개의 주제로 구성된다. 금령총을 둘러싼 기존의 인식을 소개하고 금령총 이름의 유래가 된 작은 금방울을 프롤로그에서 선보인 후, 1부에서 금령총 무덤 주인의 신분과 권위를 엿보게 하는 발굴품들을 배치했다. 유리잔, 종(鐘)모양 말방울, 둥근 말방울 등이다. 당시 열차 칸 1량을 가득 채울 정도의 분량이었다고 한다.

2부는 관·껴묻거리(부장품)용 상자, 금관·금허리띠·금가슴걸이·금귀걸이·금팔찌·금반지 등 복식품, 말 탄 사람 모양 주자, 배 모양 그릇 등 상형토기, 순장자들의 장신구 등으로 꾸며졌다. 무덤 주인을 상상하게 한다. 3부에선 복원 처리를 통해 새롭게 선보인 말다래와 금동신발, 국내에서 발견된 가장 이른 사례로 추정되는 진주, 무덤 일대 고지형 분석과 지하 물리탐사 결과가 공개된다. 마지막 에필로그로, 1924년 발굴된 굽다리 긴 목 항아리 몸통과 2019·2020년 발굴된 굽다리 편이 결합된 사례를 통해 금령총 재발굴의 의의와 성과를 전달한다.

금령총 금관(높이27㎝·지름15㎝)은 다른 금관과 달리 옥 장식이 없다. 신라금관 가운데 가장 작고 장식이 단순한데, 꾸밈장식의 크기도 작은 편이다. 금관·금팔찌·금허리띠·금반지 등이 놓여있던 간격을 고려하면 무덤 주인은 키가 1m 안팎 어린이였으리라 추정된다. ‘기마인물형 토기’는 이른바 주인상·하인상 두 점이 한 세트이며, 앞서가는 인물 토기 오른손에 방울 꽂힌 막대가 들려 있다. 제사를 주관하며 무덤 주인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제사장 내지 무당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금령총은 발굴되기 전 크게 훼손돼 길이 약 13m·높이 약 3m의 반달형 상태였지만, 원래 지름이 30m 정도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금동 장식의 천마(天馬) 말다래 장식, 2019년 무덤 둘레에 쌓는 돌(護石) 바깥쪽에서 나온 높이 56㎝의 말 모양 토기 등이 눈길을 끈다. 마치 입을 벌리고 혀를 내민 듯한 토기는 등과 배 부분이 깔끔하게 절단된 모습이다. ‘의례 과정에서 고의로 깨뜨려 부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의 특기할 부분은 ‘역사의 퍼즐’이 맞춰졌다는 점이다. 박물관 관계자에 따르면, 1924년 몸통만 발견된 유물들이 재발굴을 통해 나머지 파편들을 만났다. "재발굴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덮혔을 역사", "재발굴로 인한 1500년 만의 만남"이다. 한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딸랑딸랑 금령총 이야기’도 어린이박물관에서 동시 개최된다. 한순섭 국립경주박물관장은 "출토된 다양한 부장품과 제사 흔적 속 의미, 갑자기 어린 영혼을 떠나보낸 심정을 헤아려 보는 시간이 되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슬픔’에 대한 고대인과 현대인의 공감 여지를 일깨운다.

왼쪽부터 배 모양 그릇, 등잔 모양 그릇.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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