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류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 공개

'柳成龍備忘記入大統曆-庚子' 6월(왼쪽)과 7월 부분. /문화재청 제공
'柳成龍備忘記入大統曆-庚子' 6월(왼쪽)과 7월 부분. /문화재청 제공
 

‘류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柳成龍備忘記入大統曆-庚子)가 9월 국내로 돌아왔다. 서애 류성룡(1542∼1607)이 1600년 경자년 한해 동안 사용한 달력 및 메모장이다. 사용자 본인의 친필로 다양한 사실이 기록돼 있어 학술·연구 가치가 높다. 관련 유물이 많지 않은 데다, 충무공 이순신(1545∼1598)에 관한 생생한 증언도 등장해 더욱 눈길을 끈다.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은 ‘징비록’의 저자로 특히 유명하다. ‘징비록’은 임진왜란을 돌아보는 자기반성이자 후일을 위한 경계의 뜻으로 집필됐다.

‘대통력’이란 14세기 명나라에서 나온 역법이다. 월·일 및 절기를 책처럼 편집한 책력(冊曆)의 일종이다. 날과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으므로 농사 및 일상생활에 유용하다. 농업국가 조선에서 사대부는 기본적으로 지주였기에 농사 관련 절기가 남의 일이 아니었다. 돌아 온 류성룡 대통력은 개인 일정이나 생각 등을 적어 두기도 하는, 현대인의 ‘다이어리’에 가까운 물건으로 보면 되겠다. ‘경자년 대통력’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가로 20㎝·세로 38㎝, A4 종이보다 조금 길죽한 편이다. 먹물로 쓴 검정 글씨(墨書)와 붉은색 글씨(朱書)로 그날의 날씨·약속, 병의 증상과 처방 등이 적혀 있다. 글씨가 적힌 날짜는 총 203일, 422년 전 조선 문인의 1년간 일상을 보여준다.

문화재청 관계자에 따르면 "기재된 필적과 주로 언급되는 인물·사건 정보 등을 토대로 류성룡의 연대기가 기록된 ‘서애선생연보’(西厓先生年譜) 등을 검토한 결과, 그의 수택본(手澤本)으로 추정된다." 수택본이란 사용자가 가까이 두고 자주 이용한 손때 묻은 책을 뜻한다. 임진왜란 당시 군사전략가로도 활약한 류성룡의 친필 기록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내용들의 사료적 가치 또한 매우 크다. 이순신 장군이 ‘여해’(汝諧)라는 자(字: 사대부의 평소 통명)로 불리며 등장한다. 휘하 장수들 만류를 무릅쓰고 진두지휘한 충무공의 마지막 모습을 전한다. 류성룡과 이순신은 ‘한양 건천동’(지금의 서울 중구 인현동)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사이다. 그 외 정유재란 때 포로로 일본에 끌려간 강항(1567∼1618)이 1600년 돌아온 일 등 역사적 사실부터 술 제조법에 이르기까지 메모의 내용은 다양하다.

류성룡 종가에서 소장해 온 문헌 및 자료 모음(柳成龍宗家文籍)이 현재 보물로 지정돼 있다. 여기에 포함된 대통력 6권에 ‘경자년’ 편을 새롭게 더한 것이다. 이 귀중한 사료의 귀환엔 김문경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의 열성과 도움이 컸다. 2년 전 경매로 일본인 소장자 손에 들어간 사실을 김 교수가 금년 5월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측에 전한 것이다. 김 교수는 2005년 일본의 한 경매에서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의 영웅 김시민 장군 공신교서(功臣敎書)가 거래됐음을 국내에 알린 인물이기도 하다.

해당 유물의 번역 및 검증이 고전학자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에게 맡겨졌고, 약 두 달간 검토 끝에 이순신 장군 관련 기록 등이 확인됐다. 재단은 3차례 평가위원회를 거쳐 유물을 귀환시켰다. 구입에 복권기금이 활용됐다고 한다. 돌아온 ‘대통력-경자’는 향후 류성룡 연구에 중요하게 쓰일 전망이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안전하게 보존 관리하면서 관련 연구·전시 등에 폭넓게 활용할 것"이라고 문화재청이 밝혔다.

보물 ‘류성룡 종가 문적’의 ‘류성룡비망기입대통력’.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제공
보물 ‘류성룡 종가 문적’의 ‘류성룡비망기입대통력’.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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