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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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가지고 나 고발당해서 너무 좋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거고." 국민의힘 정미경 최고위원이 한 시사프로에 나와 한 말이다. 정미경이 언급한 이는 바로 장경태, 그는 김건희 여사가 아이를 안고 사진을 찍을 때 3점 조명을 썼다며 김 여사를 공격했다. 대통령실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장경태의 폭주는 계속됐다. 그는 이 의혹의 근원지가 외신이라 했지만, 그 외신은 ‘레딧’이라는, 흔하디흔한 인터넷 커뮤니티였다. 정미경이 말을 마치자마자 사회자가 제지한다. "잠깐만요, 고발당해서 좋을 사람이 어딨겠습니까?"

하지만 사회자 말과 달리 장경태는 대통령실의 고발에 한껏 들떠 보였다. 고발 직후 그가 보인 반응을 보자. "역사상 초유의 대통령실 고발 1호 국회의원이 됐다. 2022년 ‘윤신정권’의 고발조치가 탄생했다." 이 정도면 좋아하는 게 맞지 않은가? 자신을 장준하 선생에 비유한 대목을 보면 ‘좋아 날뛴다’는 표현도 과하지 않다. 게다가 장경태는 김건희 여사가 사진을 찍은 행위를 숫제 ‘도둑질’로 매도한다. "불을 켜고 하든 끄고 하든, 도둑질은 도둑질이다." 마지막 멘트도 참으로 장엄하다. "사실상 김건희가 야당 국회의원을 고발한 것이다. 삼권분립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역사적인 고발을 했으니 역사적 사명감으로 대응하겠다."

이 말의 부적절함을 반박하는 건 지면이 아까우니, 장경태가 왜 저러는지만 잠깐 얘기해 보자. 지금 그는 자신을 독재정권과 싸우는 야당 투사로 봐달라고 외치는 중이다. 그러기 위해 윤석열 정권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를 소환할 만큼 독재정권이어야 하고, 김 여사는 최순실(최서원)과 같은 비선실세가 돼야 하며, 대통령실이 허위사실을 퍼뜨리는 국회의원을 제지하려 법의 힘을 빌리는 건 ‘삼권분립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여야 한다.

상식적인 이들이라면 헛소리로 치부할 테지만, 세상엔 꼭 상식적인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다. 개딸, 개아들의 본거지라 할 클리앙이란 커뮤니티는 이번 장경태의 싸움을 지지한다. "장경태 의원 응원합니다. 앞으로도 큰일 해 주시기를." "장경태 의원 잘하네요. 민주당 의원들은 좀 보고 배우길." "야당이 이런 패기가 있어야죠." 심지어 김 여사가 안았던 소년을 찾으려 장경태가 사람을 보냈다는 기사에도 찬사가 쏟아졌다. "장경태 의원한테 후원하길 잘했네요."

한숨이 나오지만, 문제는 이런 이들이 민주당의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한다는 것, 실제로 최고위원이나 당대표 등을 선출할 때 좌파 커뮤니티에서는 ‘이번에는 누구를 뽑자’는 공지가 나간다. 올해 8월 23일 클리앙에 올라온 글을 보자. "경기도민이고 더민주 권리당원입니다. 내일 더민주 최고위원 투표하라는데 장경태, 박찬대로 대동단결하면 되는 거죠?" 그렇게 장경태는, 박찬대도 물론, 최고위원이 됐다.

사정이 이런데 장경태가 자신을 뽑아준 이들의 기대를 외면할 수 있을까? 그래서 장경태는 김 여사 사진을 ‘빈곤포르노 화보’라 매도하고, 윤대통령의 도어스테핑 중단을 ‘천공이 도어스테핑 하면 안된다’고 한 탓이라 우기는 등 장경태 피셜 제2의 장준하가 되려고 노력 중이다. 이런 추세면 차기 총선에서 공천받는 건 일도 아닐 듯하다. 총선에서 걸러지면 되지 않냐고? 그가 국회의원 배지를 단 곳은 동대문구을, 2012년부터 쭉 민주당이 차지하던 지역이다. 이곳의 민주당 지지자들이 ‘장경태는 근거없는 폭로나 하는 의원이니 찍지 말자’라고 할까? 그런 분들도 상당수 있겠지만, ‘이번 총선에선 민주당이 반드시 이겨야 한다’며 장경태를 찍어줄 이도 꽤 있을 것이다. 재선의 길이 꼭 꿈만은 아니다.

물론 장경태가 처음부터 이렇게 막 나가는 정치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민주당이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했을 때, 장경태는 다른 4명의 초선 의원들과 함께 ‘조국과 추미애. 박원순 사태 등이 참패 원인이다’는 입장문을 냈다. 정확한 진단이지만, 이들은 곧 민주당 강성지지자들로부터 ‘초선 5적’으로 불리며 조리돌림을 당한 끝에 결국 굴복하고 만다. 그 뒤 장경태가 무차별 폭로나 하는 정치인이 된 것은, 그가 모자라서가 아닌 영악한 선택의 결과. 민주당에서 장경태와 김의겸, 그리고 김남국 같은 이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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