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알 하나

 

누가 흘렸을까

막내딸을 찾아가는
다 쭈그러진 시골 할머니의
구멍 난 보따리에서
빠져 떨어졌을까

역전 광장
아스팔트 위에
밟히며 뒹구는
파아란 콩알 하나

나는 그 엄청난 생명을 집어 들어
도회지 밖으로 나가
강 건너 밭이랑에
깊숙이 심어 주었다
그때 사방팔방에서
저녁노을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준태(1948~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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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것들은 자신의 생명을 본존하고 대를 잇기 위해 나름대로 대비한다. 동물은 물론이고 식물들도 그렇다. 예컨대 소나무 솔방울은 비가 오면 오므리고 맑은 날에는 방울을 펼친다. 방울 사이에 있는 씨앗을 보호하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다. 그런데 식물은 동물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 하지만 전략이 다 있다. 새나 곤충 같은 다른 생명체나 바람이나 물처럼 자연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시인은 생명이 살 수 없는 아스팔트 위에서 ‘밟히며 뒹구는 파아란 콩알 하나’에서 생명을 발견한다. 시인은 파아란 콩알 하나가 ‘막내딸을 찾아가는 다 쭈그러진 시골 할머니의 구멍 난 보따리에서 빠져 떨어진’ 것일 거라 추측한다. 그리고는 콩알 하나가 만들어 낼 생명을 상상한다. 장차 그것은 사람을 먹여 살리는 곡식이 될 것이며, 나아가 죽어가는 지구를 되살릴 ‘엄청난 생명’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아스팔트 위에’ 뒹굴고 있는 한 작은 돌멩이와 다를 바 없다.

시인은 그것을 집어 들고 버스를 탄다. 버스는 도회지를 벗어나 강을 건너고 시골길을 달린다. 어머니가 사는 시골집에 다니러 가는 길이었거나 아무튼 버스는 ‘강 건너’ 시골길을 달리고 마침내 한적한 시골버스 정거장에 닿는다. 버스에서 내린 시인은 주머니 속의 콩알 하나를 꺼내 ‘밭이랑에 깊숙이’ 심는다. 때마침 ‘사방팔방에서 저녁노을이’ 번지고 마치 시인의 장한 행위를 아낌없이 칭찬해주는 듯하다.

‘아스팔트 위에 밟히며 뒹구는 파아란 콩알 하나’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발견한 시인의 사상이 경이롭다. 세상은 인간들만의 것이 아닌 살아 있는 모든 생명들의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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