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시장 경쟁 격화에 대응하기 위해 잇따라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포드의 첫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에 탑재된 SK온의 NCM9 배터리팩. /SK이노베이션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배터리 업계와 원재료, 완성차 업체 간 연합전선 구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내년부터 본격 시행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라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배터리 제조에 사용되는 핵심광물의 40% 이상을 수급해야 7500달러 상당의 전기차 보조금 혜택 중 절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핵심광물 비중은 2025년 70%, 2029년에는 100%까지 높아진다.

배터리 업계는 핵심광물 공급업체와 최종 수요처인 완성차 업체와의 연합전선을 통해 안정적인 배터리 생산·공급체제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이에 배터리 업계는 국내의 우수한 원재료 업체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27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북미 지역에서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 원재료의 원활한 수급을 위해 고려아연과 손을 잡았다. 고려아연은 업계 최고 수준의 양극재 원재료 수급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LG화학이 배터리 양극재 분야에서 라인당 1만톤 이상의 생산성을 지닌 만큼 양사의 협력 시너지는 극대화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현재 LG화학은 미국 테네시주에 미국 최대 규모인 연산 12만톤의 양극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앞서 고려아연은 지난 7월 전자제품 폐기물에서 핵심광물을 추출하는 미국의 재활용 업체인 이그니오를 인수했다. 이로 인해 업계에서는 LG화학이 ‘핵심광물-전구체-양극재’로 이어지는 공급망을 구축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전구체는 양극재의 핵심 원재료다. 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 등을 혼합해 만들어지며, 양극재 재료 비용의 70%가량을 차지한다.

SK온은 배터리 소재 업체인 에코프로, 거린메이(GEM) 등과 니켈 공급망 강화에 나섰다. 지난 24일 SK온과 에코프로, 거린메이는 세계 최대 니켈 생산국인 인도네시아에 니켈·코발트 수산화혼합물(MHP) 생산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2024년부터 연간 니켈 3만톤에 해당하는 MHP를 생산할 예정이다. 이는 전기차 배터리 약 43기가와트시(GWh), 다시 말해 60만대 이상의 전기차를 굴릴 수 있는 규모다.

MHP는 다른 중간재들보다 안정성이 높고 가격 역시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이 같은 이유로 전구체 생산에 사용되는 황산니켈의 새로운 원재료로 주목받고 있다.

SK온과 에코프로는 니켈뿐 아니라 전구체 등 배터리 원재료 부문 협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SK온에 따르면 양사는 인도네시아에서 수급한 MHP를 기반으로 국내에서 황산니켈·전구체 생산을 고려하고 있다. 미국과의 FTA 체결국인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황산니켈을 미국 전기차 배터리 생산공장에 투입하게 되면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전기차 보조금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

삼성SDI는 원활한 양극재 확보가 핵심 경쟁력이라고 판단해 합작사 에코프로이엠과 자회사 에스티엠을 통해 투트랙 전략으로 양극재 물량을 공급받고 있다.

삼성SDI와 에코프로비엠이 공동 출자한 양극재 생산업체 에코프로이엠은 지난달 경북 포항에 세계 최대 규모의 양극재 공장 CAM7을 준공했다. CAM7은 이차전지 양극재를 생산하는 단일 공장으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연산 5만4000톤의 생산능력을 갖췄다. CAM7은 시운전 과정을 거쳐 내년 1분기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가며, 생산된 양극재는 전량 삼성SDI에 납품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유연한 대응을 위해서는 최종 수요자인 완성차 업계와의 협력도 중요하다. 27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그룹은 SK온과 손잡고 미국 현지 배터리 생산공장 건설과 관련해 이번 주 중 업무협약(MOU)을 체결할 가능성이 크다. 현대자동차그룹과 SK온의 미국 합작공장에서는 연간 전기차 30만대 규모의 배터리가 생산될 예정으로 알려졌다. 부지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새로운 전기차 공장이 들어서는 조지아주가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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