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양현모의 개인전 전시 전경. /통인화랑 제공
사진작가 양현모(59)의 개인전 ‘양현모, 塔’이 열리고 있다(12월4일까지 서울 인사동 통인화랑). 작가가 지난 12년간 전국 곳곳을 돌아보며 담아온 옛 석탑 사진들이 처음 공개되는 자리다. 불교와 함께 전해진 탑이 오랜 세월 동북아·동남아에 다양한 형태로 자리잡은 가운데, 우리나라 석탑 또한 한반도 주민 특유의 미의식이 녹아 있다. 그 조형미와 섬세한 아름다움을 이번 개인전에서 확인하게 해준다.

톡특한 기법으로 태어난 사진들이다. 석탑마다 검정 장막을 쳐 배경이나 다른 물체가 함께 찍히지 않도록 하고, 최대 크기의 아날로그 필름을 이용해 탑의 중간 위치에 초점을 맞춘다. 렌즈와 거리에 따른 왜곡을 없애 실제 탑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 것이다. 완벽한 비례를 지닌 석탑 자체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탑’ 하면, 주변 자연이나 배후의 사찰과 어우러진 풍경을 흔히 떠올리지만, 양 작가의 사진에선 오로지 ‘자연광 속의 탑’이 주인공이다.

오랫동안 패션·인물 사진 전문가였던 양 작가가 어떻게 탑에 꽂히게 됐을까. 2009년 경주여행에서 감은사지 3층 석탑을 만난 게 계기였다. "어둠이 깔리는 폐사지(廢寺地)에 솟아오른 탑의 자태를 보며 그저 ‘멋지다’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는 그날 밤 근처 식당에서 홀로 민박하며 "밤새 잠을 설칠 정도"로 석탑을 향한 마음이 부풀었다고 한다. "이탈리아 유학을 다녀 와 패션·광고 사진으로 이름을 떨치고 돈을 벌면서도 떨쳐내지 못한 질문, 내가 정말 원하는 사진이 무엇일까에 대한 답을 찾은 순간이기도 했다."

그 후 양 작가만의 ‘탑 촬영여행’이 시작됐다. 틈만 나면 촬영장비를 가득 싣고 탑을 찾아 나섰다. 석탑들은 봄기운 가득한 햇빛 속에 빛날 때, 흰 눈 수북할 때 등 그때그때 매력이 다르다. 8~10인치짜리 대형 필름을 사용한 수동카메라로 자연광에만 의존했다. 500㎏ 상당의 장비를 산중까지 져 나르거나, 탑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오르기도 한다. 기대하던 ‘빛’을 놓치면 며칠 기다려야 했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 속 탑들은 ‘변화 속에서 정지된 시간의 단면’을 보여주며 당당하게 빛난다.

1963년 충남 천안 태생인 양 작가는 중앙대 사진학과 및 대학원 수료 후, 이탈리아에서 이 방면의 세계적 배움터인 Instituto Italiano Di Fotografia를 수석 졸업했다. 1998년 밀라노 San Fedele 갤러리 초대전(또 다른 세상)을 비롯해 다수의 개인·초대전을 가지는 한편, 유명 패션잡지와 국내외 유명인들의 화보 작업을 해왔다. 독자적인 작업실 ‘일 스투디오’(IL STUDIO)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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