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기
박인기

군국주의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하고 싱가포르를 함락해 들어갈 때 일본 대본영(大本營)의 전황 발표는 기세등등했다. 그 발표는 라디오로 전파되었기에 듣기의 전유물이었다. 소위 ·영 연합군 귀축(鬼畜)’을 궤멸한 숫자는 한껏 강조되었고, 전체주의 레토릭(rhetoric)은 승리의 전황을 도도하게 일깨웠다. 이러던 일본도 전쟁이 패색으로 기울자, 자기네가 이기는 소규모의 전투들만 발표의 서두에 앞세웠다. 전황 발표란 으레 그런 것인가.

1960년대 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 ·일 축구전 라디오 중계방송은 양국 간 전쟁이라도 난 듯, 전황 발표를 방불케 했다. A 아나운서는 애국심 넘치는 열정과 흥분의 목소리로 중계를 했다. 그의 중계를 듣노라면 우리가 밀리고 있는 게임도 이기는 것 같았다. 반면 B 아나운서는 비교적 차분한 목소리로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중계를 했다. 물론 평균적 국민은 A 아나운서의 중계를 선호했다. 전황을 듣는 사람의 마음자리가 보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10개월째로 들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끈질긴 항전을 하면서 러시아의 병력·장비 손실이 상당하다. 우크라이나는 승리의 전과를 비교적 소상히 전한다. 그러나 전장 자체가 우크라이나 땅이다. 다른 피해가 클 것이다. 전의가 떨어진 러시아의 전과는 잘 전해지지 않는다. 각기 자국 군대와 국민의 사기를 살필 것이니, 부풀리고 줄이고가 어찌 없겠는가. 전황 발표는 크게 믿을 바가 못 된다. 그래도 귀를 갖다 대는 것이 전황 발표다.

일상으로 전황 발표를 무연히 들으며, 내 몰인정함에 스스로 무심해지는 나를 본다. 숫자로만 대하는 사상자들, 그 숫자만 잠시 뇌리에 머물 뿐, 그들에 대한 인간적 상상력은 인색하다. 파괴된 전차의 수를 비교하며 전쟁을 게임처럼 대하는 건 아닌지. 그 안에서 숯덩이처럼 타죽는 병사들에 대해서는 까마득히 잊어버린다. 전황 발표에 무심히 귀를 내놓기만 할 것인가. 전쟁 일으킨 자를 향한 분노를 곧추세워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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