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업계는 한국 조선의 입지를 끌어올릴 비장의 무기로 자율운항 시스템을 주목하고 있다. 경기도 시흥시에 위치한 대우조선해양의 자율운항 선박 관제센터. /대우조선해양
국내 조선업계는 한국 조선의 입지를 끌어올릴 비장의 무기로 자율운항 시스템을 주목하고 있다. 경기도 시흥시에 위치한 대우조선해양의 자율운항 선박 관제센터. /대우조선해양

자율운항 시스템이 글로벌 선박시장을 뒤바꿀 새로운 ‘게임 체인저’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선박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국내 조선업계 역시 한국 조선의 입지를 한층 업그레이드시킬 비장의 무기로 자율운항 시스템을 주목하고 있다.

최근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업계 ‘빅3’가 유럽연합(EU), 영국, 중국 등 경쟁국을 제치고 자율운항 시스템을 개발·시험·상용화에 잇따라 성공하면서 친환경 선박에 이어 자율운항 시장까지 휘어잡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자율운항 선박은 복잡한 도심 도로가 아닌 사방이 트인 바다에서 운항하기 때문에 자율운행차 개발보다 진입장벽이 낮다. 아울러 최적의 운항 경로 탐색을 통해 선박 운영비를 최대 22%까지 감축하고, 사람의 과실에서 비롯된 해양 사고의 80%가량을 낮출 수 있는 등 경제성과 안전성이 뛰어나다.

국제해사기구에 따르면 자율운항 시스템은 기술 수준에 따라 4단계로 구분된다. 레벨1은 선원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단계다. 레벨2는 비상 상황을 대비해 최소 인원의 선원만 승선한 채 원격으로 움직이는 선박이다. 레벨3은 선원이 탑승하지 않은 상태에서 오직 원격 제어만으로 움직이는 단계다. 레벨4는 인공지능(AI)을 조타수 삼아 스스로 운항하는 완전 자율운항 선박이다.

자율운항 선박은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4차산업 혁명의 핵심 기술이 집약된 미래 고부가가치 선박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어큐트마켓리포트에 따르면 자율운항 선박의 시장 규모는 2028년 315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자율운항 선박시장의 선점을 위한 국내 조선업계 빅3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29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는 한반도 인근 해역에서 자율운항 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글로벌 자율운항 경쟁에서 가장 앞서 있는 곳은 현대중공업이다. 현대중공업은 지주사 HD현대를 통해 지난 2020년 자율운항 전문회사 아비커스를 출범시켰다. 사내 벤처 1호이기도 한 아비커스는 지난 6월 자사의 자율운항 기술인 ‘하이나스 2.0’을 이용해 세계 최초로 대양 횡단에 성공했다. 이 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아비커스는 최근 SK해운 등 국내 선사 2곳으로부터 수주했다. 경쟁업체들 가운데 가장 먼저 레벨2 자율운항 기술을 상용화한 것이다. 하이나스 2.0은 컨테이너선과 LNG선 등 23척의 대형 선박에 탑재될 예정이다.

대우조선해양은 레벨3 기술에 도전 중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경기경제자유구역청, 시흥시, 서울대학교와 자율운항 선박 개발·실증 사업에 대한 업무협약(MOU)을 맺고 자율운항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16일부터 17일까지 양일간 서해 제부도 인근 해역에서 자사의 자율운항 시험선인 ‘단비’를 이용해 자율운항 기술 검증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밝혔다. 단비는 대형 상선을 모사한 대우조선해양의 자율운항 전용 테스트 선박으로 대형 선박과 유사한 운항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이번 해상 시험을 통해 대우조선해양은 자율운항 레벨3 수준까지의 기술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중공업 역시 자율운항 선박시장 선점을 위해 보폭을 넓히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서해에서 남해, 그리고 동해를 잇는 국내 도서 연안에서 자율운항 해상 실증에 성공했다. 이번 실험은 지난 15일부터 나흘 동안 삼성중공업의 원격 자율운항 시스템인 ‘SAS’가 탑재된 9000톤급 ‘세계로호’를 통해 진행됐다.

삼성중공업에 따르면 세계로호는 해상 조업이 활발한 이어도 부근을 지날 때 전방과 우현으로부터 동시 접근하는 여러 척의 어선들과의 복합 충돌 위기 상황에서도 SAS가 위험을 실시간으로 감지해 5초마다 안전한 회피 경로를 제시하는 등 우수성을 입증했다.

국내 조선업계에 남은 과제는 완전 자율운항 기술인 레벨4 개발이다. 하지만 무인 운항과 관련해 관련 법이 없어 기술 개발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선박직원법 제11조는 선박에는 선박의 크기·용도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원을 반드시 승선시켜야 한다. 즉 현행법상으로는 완전 자율운항 기술을 개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글로벌 자율운항 선박시장의 주도권을 확실히 잡기 위해 관련법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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