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와 전염병4]제1차 대전과 스페인감기
[인류와 전염병4]제1차 대전과 스페인감기
  • 데마치 유즈르(出町譲, 경제저널리스트・작가)
  • 승인 2020.0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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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In-depth 2020/4/18

【요약】

・제1차 세계대전에서 유행되었던 스페인감기、2년 동안에 세계인구 3분의 1이 감염

・중립국이었던 스페인에서 유행 보도가 나돌게 되어 ‘스페인 감기’로 불리게 되었다

・최초 유행은 미군에서 시작했다는 설이 유력

톱 사진:Spanish flu virus 출처 : Cynthia Goldsmith
Spanish flu virus 출처 : Cynthia Goldsmith

이번 신형코로나는、100년만에 팬더믹(pandemic; 세계적인 대유행)이 되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거의 100년 전에 이와 같은 무서운 전염병이 만연했었다. 1918년 스페인 감기다. 신형코로나 보도로 자주 듣고 있지만 그것이 어떤 것이 였을까? 나 자신 그 이름은 들어 본적이 있었어도 별로 아는 것이 없다. 그래서 우선은 그 전모를 숫자로서 나타내보려고 한다.

당시에 불과 2년 정도 기간에 세계에 6억 명을 감염시켰다. 당시의 세계인구(16억)의 3분의 1 이상에 상당하는 숫자다. 사망자가 4천만 명이라고도 하고 5천만 명이라고도 한다. 인류사상 한번의 유행으로는 가장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그 무렵의 제1차 세계대전의 전사자가 1천만 명이라고 한다. 전쟁의 전사자보다 전염병 사망자가 4、5배가 많았던 것이다.

▲사진 스페인감기 대유행 때문에 마스크를 한 여학생 (1919년) 출처::Mainichi Shimbun
▲사진 스페인감기 대유행 때문에 마스크를 한 여학생 (1919년) 출처::Mainichi Shimbun

바이러스가 날뛰면、인류가 손을 쓸 수가 없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것이 입증된 꼴이다. 100년 전의 사건이라고 해서 가벼이 봐서는 안된다. 지금의 신형코로나도 치료법이 개발되어 있지 않다. 마찬가지 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감염확대 방지에 최대의 노력이 필요하다.

스페인감기가 최초로 발생한 곳이 나는 틀림없이 스페인이라고 마음 굳히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그 이름의 배경이 된 것은 당시의 국제정세였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라 미영불 연합군과 독일과의 전쟁이었는데 전시였기 때문에 각국은 정보를 통제했다. 전쟁에 불리한 정보는 은폐했다. 그것이 전쟁당사국이 행하는 수법이다.

스페인은 달랐다. 중립국이였기 때문에 인플루엔자가 대유행되고 있는 것을 자유롭게 전했다. 국왕뿐만 아니라 각료들에게도 퍼져 나라의 기능자체가 마비되었다. 이러한 혼란이 뉴스가 되어 “스페인에서 강력한 감기가 유행되고 있다”고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래서 ‘스페인감기’라고 불려진 것이다. 보도의 자유로 뜻밖의 형태로 보복을 당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스페인의 수법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전쟁당사국 정부가 은폐한 것이 스페인감기의 피해확대로 이어졌다고 한다. 유행을 억제하기 위한 대책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쟁당사국은 국가 체면을 걸고 싸웠지만 실제로는 ‘국민 우선’의 자세가 결여되어 있었다. 정보공개 철저는 지금도 통하는 중요한 원칙이다.

그런데 이 스페인감기는 크게 나누어 3가지 단계가 있었다. 1918년부터 ‘전조(前兆)’, 가을부터의 ‘제1파’, 1919년 연말부터의 ‘제2파’다.

특징은 뒤로 가면 갈수록 광폭해진 것이다. 수습이 되었다 싶으면 어금니를 또 드러내고 반복적으로 사람을 살해했다. 일단 수습되어도、안심할 수가 없었다. 바이러스가 변이해서 광폭해졌다. 그래서 신형코로나도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된다. 바이러스의 본질은 1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스페인감기의 시작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유력한 것은 미군기지였다. 1918년 3월 4일、캔자스주 팬스턴기지에서 발열과 두통을 호소하는 병사들이 쇄도했기 때문이다. 3월에 걸쳐 233명이 감염되어 그 중 48명이 사망했다. 그것이 스페인감기로 보인다.

감염된 병사들은 돼지우리 청소담당들이었다. 이 지역은 철새의 큰 무리가 날아오는 월동지였다. 철새가 바이러스를 돼지에게 옮기고 돼지 몸 안에서 변이되어 사람으로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시기 학교와 자동차공장、더욱이는 형무소 등에서도 집단감염을 볼 수 있었다.

▲사진 Emergency hospital during influenza epidemic, Camp Funston, Kansas (1918) 출처:National Museum of Health and Medicine
▲사진 Emergency hospital during influenza epidemic, Camp Funston, Kansas (1918) 출처:National Museum of Health and Medicine

다만 미국 국내에서는 주의를 기울인 사람이 적었다. 당시는 제1차 세계대전 말기였고 미국도 참전했었다. 유럽전쟁에 여론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정보통제가 있었던 것도 영향을 주었다。

스페인감기는 그 후 미국 국내만이 아니고 영국과 프랑스로도 확대되었다. 군대에서 일반시민으로도 옮았다. 더욱이 당시에는 수많은 선박이 세계를 오가고 있어서 유행은 러시아、북아프리카、인도、중국에도 도달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는 항만노동자들의 4분의 3이 드러누웠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도 감염확대에 역할을 했다。유럽전선으로 내보냈던 미군병사들 가운데 감염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미국의 지정학자 알프레드 크로스비의 저서 「사상최악의 인플루엔자」(미스즈書房)에 의하면 스페인감기는 4개월에 걸쳐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이미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그 해 여름이 되자 감염력은 쇠퇴해졌지만 다시 미국에 확대되었다. 그리고 어느 때인가 사라졌다. 당시 미국국민의 건강은 전에 없이 양호했던 만큼, 스페인감기는 겁낼 정도는 못 된다고 다수가 생각했다. 그리고 세계는 낙관론을 폈다.

그런 단계를 거치면서 스페인감기가 그 후 4천만 명、5천만 명이나 되는 목숨을 빼앗아 갈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폭풍 전야의 고요에 지나지 않았다. 바이러스가 광폭해져 대유행하는 모습은 다음 회에 전하겠다.

<계속>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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