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3일 서울 강남구 강남구민회관에서 열린 수도권광역급행철도 GTX-C 은마아파트 간담회에 참석해 은마아파트 주민대표들에게 GTX-C 공법의 안전성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3일 서울 강남구 강남구민회관에서 열린 수도권광역급행철도 GTX-C 은마아파트 간담회에 참석해 은마아파트 주민대표들에게 GTX-C 공법의 안전성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사업은 서울과 경기도 주요 지점을 연결하는 초대형 국책사업이다. 하지만 지역 이기주의에 발목이 잡혀 경제·사회적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내년 2분기 착공해 2028년 1분기 개통 예정인 GTX-C 노선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주민들의 노선 변경 요구로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린 게 대표적이다.

30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경기도 수원과 양주 덕정을 연결하는 GTX-C 노선은 양재역~삼성역 구간에서 은마아파트 하부를 50m 정도 지나가는 형태로 계획됐다. 정부는 이 같은 노선 계획을 공식화하며 사업을 발주했고,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2021년 6월 정부안을 준용해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은마아파트 주민들은 재건축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GTX-C 노선이 단지 지하를 60~66m 깊이로 관통하면 안전사고 위험이 있다며 우회를 주장하고 있다. 특히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까지 나서 안전성을 보증했지만 불안감을 확대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원 장관은 지난 23일 은마아파트 주민들의 의견 수렴을 위해 열린 간담회에서 "은마아파트 구간에 적용하는 공법은 한강 하저터널이나 GTX-A 구간에서 수많은 주택가와 도심 한가운데를 지나며 이미 검증됐다"며 "안전에 대해 확실히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실제 GTX-A 예정 노선 중 3개 구간과 서울도시철도 노선 18개 구간이 주거지 지하를 통과하고 있으며, 철도 건설 후 상부에 아파트를 재건축한 사례도 12곳 이상에 달하고 있다.

지난해 암반공학 분야의 최고 권위 학회인 국제암반공학회(ISRM)에서 한국인 최초로 회장에 뽑힌 전석원 서울대 공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도 "은마아파트 지하의 GTX 터널 공사가 위험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전 교수는 "지표면에서 깊이 내려갈수록 흙, 풍화암, 연암, 경암 순으로 단단해진다"며 "서울은 한강 주변의 일부 매립지를 제외하곤 30m만 내려가도 일반 콘크리트 3배 정도의 강도를 지닌 경암층이 나오는 지형"이라며 "은마아파트 밑의 터널 깊이가 경암층이라면 충분히 안전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은마아파트 주민들은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정부의 공식 견해와 전문가 진단에도 사업 추진을 가로막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현대건설 모기업 오너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도 봉변을 겪고 있다. 이들이 정 회장의 자택 앞에서 지난 12일부터 릴레이 시위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은마아파트 주민들이 GTX-C 노선 변경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대심도 터널이 단지 밑을 지나가면 초고층 아파트 건설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14층 28개동, 4424가구로 이뤄진 은마아파트는 35층 33개동, 5578가구로 재건축 승인을 받은 상태다. 하지만 서울시의 ‘35층룰’이 폐지되면서 숙원인 ‘49층 단지’를 재차 노리고 있다.

원 장관은 "국책사업에 대해 막연한 불안을 확산시키고 선동하는 것을 국가기관으로서 용납하거나 굴복할 수 없다"며 "우리 단지 밑을 지나가지 못한다는 (님비) 주장에 국책사업이 변경되는 선례를 남길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 같은 원 장관의 언급에 이어 국토교통부는 서울시와 함께 은마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회 및 입주자대표회의에 대한 관계기관 합동점검에 나섰다. 이는 2002년 재건축추진위원회 설립 후 첫 조사다. 이번 조사는 재건축추진위원회가 입주자대표회의의 장기수선충당금 등 공금을 GTX 반대 집회에 사용하고 있다는 의혹에 따른 것이다.

은마아파트 주민들의 막무가내식 요구로 GTX-C 노선안 확정이 미뤄지면서 설계 등 착공을 위한 제반 절차도 여의치 않은 상태다. 내년 2분기 착공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특히 은마아파트 주민들의 요구대로 노선이 변경될 경우 추가로 막대한 비용이 발생해 상당 부분을 이용자들이 떠안아야 한다.

지역 이기주의에 곤욕을 치른 건 2018년 건설에 착수한 GTX-A 노선도 마찬가지다. 서울 청담동 주민들의 강한 반발이 강남구의 굴착 허가 거부로 이어지면서 공사가 1년여 동안 중단된 바 있다. 사업자 선정을 위한 입찰에서 유찰이 거듭돼 계획된 착공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한 GTX-B 노선은 사업성이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남양주시와 인천시의 역 (驛) 신설 및 이전 요구에 난항을 겪고 있는 상태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