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에서는 한 매체(?)가 분탕질 중이다. 언론이라는 울타리가 넓어지면서 기자 아닌 ‘기레기’들이 먼지처럼 부유한다. 진짜 기자들에게는 참담하고 모욕적이다. 그래서 발심, 마음을 내서 찾아봤다. 기자다운 기자, 언론이 언론인 영화. 마침 ‘그녀가 말했다’가 기다렸다는 듯 11월 30일 개봉했다. 다른 두 편도 제목 들으면 알 만한 영화들. ‘트루스’ 그리고 ‘스포트라이트’다.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출발부터 ‘스트레이트’다.

'그녀가 말했다' 두 여기자.
'그녀가 말했다' 두 여기자.

‘그녀가 말했다’-기자는 현장의 하이에나

‘그녀가 말했다’(She Said· 2016)는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범죄를 파헤친 뉴욕타임스(NYT) 탐사보도팀 얘기다. NYT 여기자 메건 투히, 조디 캔터가 쓴 동명의 책을 바탕으로 한다. 두 기자는 와인스타인 보도로 미국 최고의 언론상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성범죄는 은밀한 공간 피해자와 가해자만 있을 때 벌어지기 십상이다. 가해자는 입을 안 열고 피해자는 입을 닫는다. 그래서 기자는, 마치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빠르게 움직이고 잡식성 자료도 받아 소화해내야 한다.

와인스타인 성범죄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2017년. 그는 ‘시네마천국’(1989), ‘킹스 스피치’(2010), ‘실버 라이닝 플레이북’(2012) 등 아카데미 작품상을 6번이나 거머쥔 거물 이다. 그로부터 피해를 당한 이들은 영화사 직원부터 유명 여배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와인스타인의 영화적 체급은 개개인이 맞붙을 정도를 넘어섰다. 영화계에서 그는 자이언트 헤비급이다.

여기에 두 기자가 나섰다. 메건(캐리 멀리건)과 조디(조 카잔)는 30년간 이어진 와인스타인의 성범죄를 밝혀내고자 3년간 관련 문건을 취재하고 수백 명을 인터뷰했다. 피해자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설득하고 증언을 녹취했다. 영화는 실패와 성공이 거듭되는 이들의 진실 추적과정을 담았다. 성범죄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공간적 위압감과 음향 효과 등으로 피해자가 겪었을 공포와 불안 등을 표현하고 있다.

‘그녀가 말했다’ 제작진은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가해자 와인스타인을 스크린에 등장시키지 않으며, 여성에 대한 신체적 공격을 묘사하지 않는 것. 영화에는 와인스타인 성폭력을 제보한 유명 여배우 애슐리 쥬드가 직접 출연해 극중 피해 여배우 역할을 소화했다.

☞2017년 10월 8일 NYT 보도 후 ‘미투 운동’(#MeToo)이 촉발됐고, 이는 한국에도 영향을 미쳐 유명 작가, 감독 등이 추풍낙엽처럼 명예를 떨구고 사라졌다. 2020년 3월 와인스타인은 1급 성범죄 및 3급 강간 혐의로 23년 형을 선고받았다.

'트루스'.
'트루스'.

‘트루스’-특종과 오보의 차이는 정확한 증거

특종을 했고 보도를 내보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그 특종이 오보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하루 만에 희열이 좌절로 바뀐 이들은 ‘트루스’(Truth· 2016)의 메리 메이프스(케이트 블란쳇) 팀이다. 메리는 25년 동안 프로듀서로 활약한 베테랑. 그가 맡은 특종의 냄새는 조지 W.부시에 관한 것. 부시가 베트남 참전을 피하려고 텍사스 주 방위군에 청탁으로 들어갔고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메리 팀은 즉시 정밀 취재에 들어가 관련 증거나 서류들을 모았다. 마침내 당시 부시의 상관이 작성했다는 1973년 메모를 입수, 필적 감정 전문가 분석과 군인들 증언을 확보했다. 이만하면 완벽하다. 취재 내용은 CBS 간판 프로그램 ‘60분’을 통해 방송됐다. 앵커는 댄 레더(로버트 레드포드). 레더의 신중하면서도 차분한 멘트들은 보도 내용에 신뢰감을 더했다. 메리 팀은 환호했다.

하지만 다음날, 상황이 180도 반전된다. 증거로 제시한 메모가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다. 1970년대 타자기로 작성됐다는 메모에 대해 한 보수 블로거가 현대의 컴퓨터로도 똑같이 작성할 수 있다는 글을 올렸다. 결국 부시 병역 의혹은 메모 조작 의혹으로, 특종은 오보로 추락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메모 제보자가 메모 입수 과정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취재과정의 결함, 증거의 불충분함은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결국 회사 측은 댄 레더에게 사과방송을 하게 하고, 내부감사에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감사가 메리에게 묻는다. "이렇게 생각할 수는 없겠소? 소위 특권층이라 부르는 그 사람이 어쩌면 제대로 복무했는지도 모른다고." "No." 메리의 답은 단호했다.

영화는 무차별 공격을 당해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메리 팀을 지켜보게끔 한다. 이 또한 언론의 모습, 기자가 당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부시 군복무에 대한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이 사건은 ‘메모게이트’라 불린다.

☞영화는 메리 메이프스의 회고록 <진실과 의무: 언론, 대통령, 그리고 권력의 특권>을 원작으로 한다. 차기 대통령 자리를 두고 조지 W.부시와 존 케리의 대결이 한창이던 2004년 9월 8일 CBS 보도가 나갔다. 상대 후보 존 케리는 베트남전 참전용사였다. 부시 재선에 강력한 걸림돌이 될 뻔했던 보도는 오보로 추락, 부시는 재선됐다.

'스포트라이트'.
'스포트라이트'.

‘스포트라이트’-취재에는 어떤 성역은 없다

‘스포트라이트’(Spotlight·2016)보스턴 글로브 지 탐사보도팀 실화를 다룬다. 이 팀은 사건의 진실을 밝힌 공로를 인정받아 2003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2001년 새로 부임한 편집장 마티는 아동 성추행 사건에 연루된 가톨릭 사제에 관한 얘기를 꺼낸다. 신부가 몇 년 동안 아동 수십 명을 성추행 했고 이를 보스턴 교구장이 알고도 덮어준다는 내용이다. 건이 크다. 취재 성역(聖域)의 성역(性域)이다.

팀장 로비(마이클 키튼)를 비롯해 마이크(마크 러팔로), 사샤(레이첼 맥아담스) 등 4명으로 스포트라이트 팀이 구성된다. 팀은 자료를 조사하고 사건을 본격적으로 캐기 시작한다. 4명의 기자들은 각각의 시점에서 피해자, 가해자, 변호사 등 스캔들에 연루된 사람들을 추적한다.

하지만 파헤치려 할수록 문은 굳게 닫히고 협박은 거세진다. 심지어 은밀하게 추기경까지 나선다. 그러나 팀은 추적을 멈추지 않는다. 이들은 마침내 전직 사제의 증언을 끌어내고, 성스러움 속에 감춰졌던 추악한 사제들의 얼굴이 드러난다.

팀은 보스턴 내 의심 가는 87명의 신부들 중 70명의 성추행 증거를 확보해 첫 기사를 내보낸다. 기사 발행 다음날, 스포트라이트 팀 전화는 끝없이 울려댄다. 쏟아지는 제보전화다. 가해자들의 이름을 엔딩크레딧으로 올리며 영화는 끝난다. 후일담으로, 이 기사 이후 보스턴대교구 성직자 249명이 성추행으로 고소당했다고 한다.

영화는 사제들과 보스턴대교구의 잘못만을 지목하지 않는다. 자료 조사 과정에서 보스턴 글로브조차 사제 20명에 대한 제보를 받고도 단신 기사로 끝냈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 장본인은 바로 로비, 하지만 본인조차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동 성추행이라는 충격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어디에도 음험한 구석은 없다. 자극적 장면 없이 탄탄한 시나리오와 관록있는 배우들 연기로 끌고 나간다. 영화는 제88회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상했다.

☞2016년 백악관 기자단 만찬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 영화를 "스타워즈 이후 최고의 판타지 영화"라고 드립을 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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