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희
김인희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해임을 요구하는 야권의 목소리가 기세등등하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158명이나 사망하는 대형 사고가 터졌으니, 안전 주무부처 장관이자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이 장관의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해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여당도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정조사에 동의했고 국정조사를 진행하기 위한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은 국정조사를 먼저 제안해놓고도 이 장관의 파면을 요구하고 있다. 국정조사를 그저 미리 정해놓은 결론에 맞추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나 요식행위 정도로만 여기고 있다는 뜻이다.

국정조사가 무엇인가. 사안에 대한 장벽 없이 그 어떤 일이든 국가의 행정력을 동원해 진상을 조사할 수 있는 국회의 권한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 권한인만큼 절대 요식행위가 되어서는 안되고 그 절차와 권위는 절대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국정조사를 통해 사고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그 원인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조사해 원인에 책임이 큰 사람들을 밝혀내 처벌하는 것이 올바른 절차다.

그런데 사고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확실히 증명되지 않았는데 이 장관에 대한 파면부터 요구한다는 것은 민주당이 이미 국정조사의 결론을 이 장관의 책임으로 정해놓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과정을 그에 짜맞추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잠시 시계를 돌려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이었던 시절로 돌아가 보자.

2020년 11월 23일, 검찰은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를 조작한 혐의로 산업부 전·현직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인 24일, 당시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윤 총장에 대해 긴급하게 직무정지를 결정했다.

검찰총장의 직무를 정지시키려면 마땅히 그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막상 직무를 정지시켜 놓고 보니 그럴만한 근거가 없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근거를 ‘만들기’위해 윤 총장에 대한 감찰을 시작했다. 그런데 윤 총장에 대한 감찰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추 장관이 감찰 절차를 위반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애초에 정권에 대한 수사를 막아야 한다는 결론을 정해놓고 위법과 탈법을 감수하며 검찰총장 직무를 정지시키다보니, 그 위법이 또다른 위법을 불러온 셈이다.

이번 이상민 장관 파면 요구도 상황이 비슷하다.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정지가 문재인 정권에 대한 수사를 막기 위함이었다면, 이상민 장관 파면 요구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수사를 막기 위함이라는 의심이 강하게 들 수밖에 없다.

터무니없는 의심이 아니다. 여야가 이미 국정조사에 합의한 이상 국정조사를 통해 진상을 밝혀내고 그에 따라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 올바른 절차다. 그런데 민주당은 그 절차를 무시하고 어떻게든 처벌을 먼저 하자고 우기면서 스스로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방탄’도 아니라면 이는 민주당 내에 만연한 ‘대선불복’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대선에서는 패배했지만 국회 다수당의 권력은 여전히 민주당이 쥐고 있으니 국정조사 결론도 민주당 마음대로 정하겠다는 속내다.

그런 오만과 법치주의 훼손이 민주당의 대선 패배와 지방선거 패배를 불러왔음을 왜 아직도 인정하지 않는 것인가. 내후년 총선까지 패배해 모든 권력을 다 잃고 나서야 뒤늦게 후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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