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 청년을 만나다] 서울대 트루스포럼 학부생 대표 권영찬 형제

“예수께로 돌아오니 평생 한가지 '영혼구원' 목적으로 살겠단 다짐"
초등학교때 예수믿는 친구가 4분의1 밖에 안 되는 것 보고 충격 받아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서 모태신앙과 다른 정치적 가르침 받으며 혼란
진리 찾아 여정...사탄숭배자 회심 간증 듣고 예수님이 완전히 믿어져

대학입학 후 선교단체도 공산주의 물들어 참복음 전하지않는 모습 봐
“자유주의 신학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 듣고 트루스포럼 일원 돼
‘성유토피아’ 세력이 장학한 대학가 판 바꾸기 위해 ‘새학생회’ 만들어
“연설 등 공개 활동...‘감옥 가더라도 영혼들 전도하면 되지’라고 생각”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달란트 가진 화를 잘 안 내는 하나님의 청년
극렬한 반대에도 감사로 나아가...오히려 핍박자들 위해 눈물로 기도
아이들을 좋아하는 청년의 꿈은 ‘무엇을 하던 전도의 무대’로 삼는 것
“여기까지 인도하신 주님이 앞으로도 인도하실 것 믿으니 삶이 기쁨”

[편집자주] 현재 한국교회의 다음세대는 큰 변화와 위기에 놓여 있다. ‘차별금지법’과 ‘교육과정 개정안’ 등이 이슈화되며 한국사회는 더욱 반성경적이고 불안정한 상황으로 변해가고 있고, 전교조가 장악한 공교육에서 학생들은 좌경화된 교사들에 세뇌당하며 점점 더 ‘미전도 종족’이 돼 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대 가운데서도 젊은이들에게 모범이 될만한 신앙과 삶을 살아내며 시대를 바꿔갈 ‘예수 믿는’ 기독교 청년들이 있다. 자유일보는 이런 기독 청년들을 한명씩 직접 만나 그들이 어떻게 신앙을 가지게 됐고, 그 신앙을 바탕으로 어떻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직접 들어보려 한다.

지난달 30일 자유일보 사무실에서 만난 권영찬 형제(25)는 “평생 영혼구원의 목적을 더욱 강력히 간직하며 나아가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김석구 기자

“예수님께로 돌아오니, 제가 그동안 고민하던 문제인 ‘사람은 죽어서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도 확실한 답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죄사함을 입은 사람은 천국에 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어요. 답을 확실히 안 순간, 저는 평생 무엇을 하든 한 가지 목적만 가지고 살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것은 영혼의 구원입니다. 평생 직업이 뭐가 됐든, 무슨 일을 하든, 만나게 되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꼭 예수님을 믿어서 천국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드름이 아직 가시지 않은 얼굴의 순진무구(純眞無垢)해 보이는 20대 중반의 청년의 마음은 ‘예수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난달 30일 광화문 자유일보 사무실에서 만난 서울대 트루스포럼 학부생 대표 권영찬 형제(25)는 고등학교 시절 한때 하나님을 의심하다 다시 신앙을 회복한 후 확고해진 자신의 삶의 목표를 이야기하며 눈을 빛냈다. 그는 “현재까지 이 목적(영혼구원)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고, 평생 더욱 강력히 간직하며 나아가길 원한다”고 말했다.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신앙의 가르침을 받고 성경 만화책을 읽으며 자랐다.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의 죽음, 그리고 부활은 그에게 당연한 역사적 사실이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당연히 예수님을 믿는 줄 알았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때 선생님이 ‘교회 다니는 아이는 손 들어보라’고 했을 때 손 든 친구가 반의 4분의1 밖에 되지 않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초등학교 시절 교회 다니는 친구가 반의 4분의1 밖에 되지 않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권 형제. /김석구 기자

“갑자기 인생에 처음으로 이런 질문들이 들었어요. ‘진짜로 저 많은 사람들이 다 지옥에 갈까?’ ‘나는 기독교가 참이라는 걸 어떻게 알지? 나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그냥 그렇게 가르침을 받아온 게 아닐까?’ 처음으로 의심이란 걸 해본 거죠. 그렇지만 가끔씩 툭툭 올라오는 수준의 의심이었고, 제 일상을 방해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중학교 다니면서도 매일 아침 성경을 조금씩 읽으며 하루를 시작했고, 친구들을 전도하려고 했었던 기억도 나요.”

고등학교를 기숙사가 있는 곳으로 입학하게 되면서 부모님과 떨어져 학교에서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가르침과 분위기에 노출되며 많은 고민이 생기게 됐다. 시작은 정치 영역에서였다. 어릴적부터 공산주의 체제가 기독교를 얼마나 박해하는지, 우리나라의 속칭 진보 세력은 그런 악랄한 북한 정권의 옹호자이자 그 하수인 세력이며, 기독교 신앙과 절대 함께 갈 수 없다는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그에게 보수 세력은 절대 지지할 수가 없다는 분위기가 주를 이루고 있던 학교 분위기는 큰 내적 혼란을 줬다.

“그 때부터 진리를 찾아 헤매는 저의 여정이 약 1년 정도 이어졌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정확히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질문의 답을 알 수 있다면 문제가 해결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임사체험, 사후세계 경험 등의 수기를 열심히 검색해 읽고, 종교를 초월한 신비주의를 추구한 사람들의 글이나 책을 읽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진리를 찾아 헤매도 진리에는 이를 수가 없었어요.”

인터뷰 중 잠깐 기도중인 권 형제. /김석구 기자

그러다 어느 날 유튜브에서 어느 목사의 간증을 듣게 됐다. 고위급 사탄숭배자 출신이었다가 회심한 간증이었다. 권 형제는 그 간증을 듣다가 자신이 그 동안 마귀의 미혹에 속아 넘어가 유일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는 바로 영원히 죄로 인해 죽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나 때문이라는 것이 확실히 와 닿게 됐다. 그는 두 번 다시 미혹되어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는 기도를 드렸다.

“서울대에 입학하고 나서 놀란 것은, 대자보나 동아리 모집글 등의 상당수가 맑시즘 동아리나 사회변혁노동자당과 같은 조직들에 의해 게시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대학의 분위기 자체를 어둡게 만드는 느낌이었고, 서울대 학생들이 이런 조직들에 들어가서 공산주의자가 된다는 사실이 슬펐습니다. 특히 더 슬펐던 건 선교단체들이 자유신학과 공산주의에 물들어 참된 복음을 전하지 않고 오히려 일반 학생들보다도 기독 학생들이 더욱 공산주의자가 되기 쉬운 환경에 처해있는 것이었어요.”

그러다 기독교 보수주의 연구·활동·교육 단체인 트루스포럼을 만나게 됐다. “트루스포럼의 궁극적인 목적 중 하나는 자유주의 신학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한국 교회를 살려내는 것”이란 말을 듣고 권 형제도 트루스포럼의 일원이 됐다. 그리고 그 안에서 너무나 귀한 신앙의 동지들을 만났다.

“특별히 연설 등 공개적인 활동을 했을 때 혹시나 당시 집권 정부에 찍혀 보복을 당하거나 하면 어떡하지란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러나 제 마음에 주님을 위한 것이니 혹시 최악의 경우 나를 감옥에 집어넣더라도, ‘감옥 가서 만난 영혼들 전도하면 되지. 어디서나 전도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아직 학생인 20대 중반 청년이 어떻게 이런 생각까지 했을까. 기특하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한 그의 진심어린 말이 기자의 가슴에 큰 울림과 도전을 줬다. 대한민국 기독 청년들의 밝은 미래가 보이는 듯 했다.

다음은 이날 권영찬 형제와 자유일보의 일문일답 인터뷰 전문이다.

◇모태신앙 소년, 신앙의 위기를 맞다

-언제 처음 예수님을 믿게 되셨나요.

“모태신앙입니다. 아버지가 목사님이셔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신앙의 가르침을 받고 자랐습니다. 어린시절 성경 만화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특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의 죄, 나의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대신 저렇게 십자가에 달리셨구나라는 것에 대해 참 감사하다고 느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그래서 저는 어릴 때 모든 사람이 당연히 예수님을 믿는 줄 알았어요. 저에게 있어 예수님을 믿는 것은 믿음의 도전을 요구하는 영역이 아닌, 당연한 사실의 영역이었거든요. 

어떤 의미냐면, 우리가 보통 어릴 적에 책이나 교과서 등으로 역사를 처음 배운 기억을 떠올려보면, 책을 읽고 ‘아 나는 그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걸 이제 믿어’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죠. 그냥 책에서 가르쳐주니까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흡수하지 않습니까? 저는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의 죽음, 그리고 부활을 당연한 역사적 사실로 어릴 때부터 받아들였던 것이지요. 그래서 전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고 신앙생활을 하는 줄 알았어요.”

-언제 처음 그런 믿음에 의문이 들었습니까.

“초등학교 4학년 때 제가 크게 충격을 받은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교회를 다니시는 분이셨는데, 반에서 교회 다니는 아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셨는지, 아니면 뭐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느 날 수업 중간에 갑자기 교회 다니는 아이는 손을 들어보라고 하셨어요. 저는 당연히 손을 들었지요. 근데 주변을 돌아보는데, 저는 진짜 아무리 적어도 절반 이상은 당연히 교회에 다닐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교회 다니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너무 없는 거예요. 딱 둘러봤는데 한 4분의 1이 될라나? 그 정도가 손을 든 거에요. 제가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그렇게 적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권 형제는 "중학교 시절 매일 아침 성경을 조금씩 읽으며 하루를 시작했고, 친구들을 전도하려고 했었던 기억도 난다"고 했다. /김석구 기자
권 형제는 "중학교 시절 매일 아침 성경을 조금씩 읽으며 하루를 시작했고, 친구들을 전도하려고 했었던 기억도 난다"고 했다. /김석구 기자

그 때 즈음부터였던 것 같아요, ‘저 많은 친구들이 저대로 죽으면 다 지옥에 간다니.. 대부분 사람들이 예수님을 모르고 있고 영원한 지옥에 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이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제 인생에 처음으로 이런 질문들이 들었어요. ‘진짜로 저 많은 사람들이 다 지옥에 갈까?’ ‘나는 기독교가 참이라는 걸 어떻게 알지? 나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그냥 그렇게 가르침을 받아온 게 아닐까?’ 처음으로 의심이란 걸 해본 거죠. 그렇지만 가끔씩 툭툭 올라오는 수준의 의심이었고, 제 일상을 방해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중학교 다니면서도 매일 아침 성경을 조금씩 읽으며 하루를 시작했고, 예수님 꼭 믿어야 하는데라는 마음으로 친구들을 전도하려고 했었던 기억도 납니다.”

-이후 대학때까지 신앙의 방황은 없었나요.

“그러다가 가장 크게 신앙적으로 방황했던 것은 고등학교 1-2학년 때였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를 기숙사 고등학교로 들어갔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만 주말에 집에 갈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상태로, 학교에서 이전에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가르침과 분위기에 노출되며 많은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 시작은 정치 영역에서의 고민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어릴 적부터 북한 공산주의 체제가 기독교를 얼마나 박해하는지, 그리고 우리나라의 속칭 진보 세력은 그런 악랄한 북한 정권의 옹호자이자 그 하수인 세력이며, 기독교 신앙과 절대 함께 갈 수 없다는 가정교육을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와보니, 그런 식으로 정치 영역을 바라보는 시각은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대한민국의 공교육을 이수한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독재를 옹호하고 자국민을 탄압하는 보수 세력은 절대 지지할 수가 없다는 분위기가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며 내적으로 큰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근원적인 질문에 부딪혔습니다. ‘내가 어릴 적부터 믿어왔던 것들이 부모님이 그렇게 가르쳐주었다는 것 말고 진정으로 올바른 관점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제게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인 신앙의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기독교가 진짜 참이라는 걸 내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거 말고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을 대하며, 저는 독자적인 공부를 통해 답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앙의 의문을 회복한 소년, 영혼구원을 삶의 목적으로 삼다

-어떻게 답을 찾아 나가셨나요.

“당시 진리를 찾아 헤매는 저의 여정, 다르게 말하면 방황의 여정이 약 1년 정도 이어졌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정확히 어떻게 되는 걸까?’ 라는 질문의 답을 알 수 있다면 문제가 해결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임사체험, 사후세계 경험 등의 수기를 열심히 검색해 읽고, 종교를 초월한 신비주의를 추구한 사람들의 글이나 책을 읽었습니다. 

점차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믿음은 희미해지고, 성경은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특정 종교를 초월한 더 ‘심오한 진리’의 한 단편을 표현한 책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도 인류가 서로 사랑하는 모델의 표본이 되는 행동이지,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종교를 초월해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품으며, ‘더 심오한 진리’를 언젠가는 확실히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계속해서 더욱 다양한 책들과 글들을 찾아 읽으며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진리를 찾아 헤매도 진리에는 이를 수가 없었고, 시간이 갈수록 궁금증만 더해질 뿐이었습니다.”

-정말 답답하셨을 것 같습니다. 결국 해결책을 찾았나요.

“그러다 어느 날, 유투브에서 어느 목사님의 간증을 듣게 되었는데요, 본인이 고위급 사탄숭배자 출신이었다가 회심했다고 이야기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 분의 간증에서는 영적인 세계에서 마귀가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전략에 대한 내용도 들어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간증을 듣다 보니, 제가 그 동안 마귀의 미혹에 속아 넘어가, 유일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 있었다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는 바로 영영히 죄로 인해 죽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나 때문이라는 것이 확실히 와 닿게 되었습니다. 

방황하는 기간 동안에 예수님의 십자가 죄사함을 부정했던 주장에 미혹되었던 제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며 무릎을 꿇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번 다시 미혹되어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다시 신앙이 회복됐군요.

“그때 회개의 기도를 드리고 오랜만에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때서야 깨달았는데, 제가 방황하는 동안 온갖 책과 글을 읽으면서도 정작 성경을 찾아 읽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성경을 펼쳐 창세기 1장 1절을 읽는데, 제가 그동안 찾고 있었던 것을 찾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진리를 찾은 것이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가장 가까이에 있던 진리였는데, 제가 미혹되어 눈이 가려져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성경을 차근차근 처음부터 읽는데 한 절 한 절이 깊숙이 흡수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신약 성경을 읽으며, 이미 성경에서는 미혹을 주의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육체로 나타나신 것을 부인하는 적그리스도의 영이 무엇인지도 다 기록해놓은 것을 발견하며, 놀라움과 기쁨을 느끼면서, 절대로 다시는 미혹되지 않겠다는 굳게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삶의 목적도 분명해 졌겠군요.

“예수님께로 돌아오니, 제가 그동안 고민하던 문제, 즉 ‘사람은 죽어서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도 확실한 답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죄사함을 입은 사람은 천국에 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을 확실히 하는 순간, 저는 평생 무엇을 하든 한 가지 목적만 가지고 살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것은 영혼의 구원입니다. 

권 형제는 "평생 전도에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한 후, 마태복음 6장 33절이 깊이 와 닿았다"고 말했다. /김석구 기자
권 형제는 "평생 전도에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한 후, 마태복음 6장 33절이 깊이 와 닿았다"고 말했다. /김석구 기자

평생 직업이 뭐가 됐든, 무슨 일을 하든, 만나게 되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꼭 예수님을 믿어서 천국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오고 저의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한 때가 고2 여름방학이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돌아 보건데 현재까지 이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고, 이 목적을 평생 더욱 강력히 간직하며 나아가길 원합니다.

평생 전도에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한 후, 마태복음을 읽어나가는데,  마태복음 6장 33절이 깊이 와 닿았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이 깊이 믿어졌습니다. 그 뒤로는 앞날에 대한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 언제나 전도에 마음을 두고 사람들을 만날 때에, 주님께서는 늘 길을 열어주시는 것을 경험해왔고, 앞으로도 더욱 풍성히 열어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화를 잘 안 내는 하나님의 청년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인간관계에 있어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달란트를 주신 것 같아요. 저랑 있으면 사람들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굉장히 감사해요. 제 앞에 있는 사람이 평안하다는 것 자체가 제게 큰 기쁨이고, 또 제가 평안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요. 주님께서 관계의 축복을 주셔서 사람들이 저랑 있을 때 편안해하고 저를 좋아해주시는 경우가 많아서 참 감사합니다. 

아직 어린 나이이지만, 사람을 대할 때에 원칙을 세운 것이 있습니다. ‘사심 없이 돕는다.’는 원칙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그 영혼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며,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최대한 사람들을 사심 없이 도우려 할 때, 오히려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저를 좋아해주시고 호의를 베풀어주시는 것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 중에 한 가지는, 저와 대화를 하기만 해도 그 평강의 기름부음이 흘러가 예수님의 살아계심, 예수님의 평강이 느껴지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치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과 대화를 하다가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마시게 되고, 그 생수를 전하는 사람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영을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할지요. 제가 더 기도하길 원합니다.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달란트를 받았다는 권 형제는 인터뷰 중에서도 편안한 모습을 보여줬다. /김석구 기자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달란트를 받았다는 권 형제는 인터뷰 중에서도 편안한 모습을 보여줬다. /김석구 기자

비슷한 맥락에서, 화를 잘 안낸다는 성품적인 면의 달란트를 주신 것 같아요. 화를 잘 안 내는 것도 있겠지만, 화 자체가 잘 안 나는 편이에요. 다른 사람들에게 맞춰주는 것에서 기쁨을 느낄 때가 많고, 또 영혼들이 사랑스럽게 보일 때가 많습니다. ‘각 영혼을 바라보는 주님의 마음을 주세요.’ 라고 기도를 자주 하는데요. 주님께서 기도응답으로 부어주시는 마음이라고 생각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외의 기능적인 면의 달란트를 생각해보면, 사람들에게 어떠한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 그리고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공부하는 것 등에서 주님이 달란트를 주시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좌경화된 대학사회에 충격을 받은 청년, 트루스포럼에서 신앙의 동지들을 만나다

-서울대 입학후 대학생활에서 다시 충격을 받으셨다구요.   

“저는 고등학교 때 신앙을 다잡고 나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를 고민을 하던 중, 그 열매를 보고 판단을 할 때에, 공산주의는 절대 신앙과 함께 갈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서는 신앙이 핍박을 당하고, 국민들이 살육당하고, 위선이 판을 치는 일들이 예외 없이 나타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학교의 분위기는 아직도 그러한 공산주의 사상이 유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실제로 서울대에 입학하고 나서 놀란 것은, 대자보나 동아리 모집글 등의 상당수가 맑시즘 동아리나 사회변혁노동자당과 같은 조직들에 의해 게시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대학의 분위기 자체를 어둡게 만드는 느낌이었고, 서울대 학생들이 이런 조직들에 들어가서 공산주의자가 된다는 사실이 슬펐습니다. 특히 더 슬펐던 것은, 선교단체들이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에 물들어, 참된 복음을 전하지 않고 오히려 일반 학생들보다도 기독 학생들이 더욱 공산주의자가 되기 쉬운 환경에 처해있는 것이었습니다.”

-선교단체가 좌경화 됐단 것은 크리스천 청년들에게 더욱 심각한 영향을 끼치겠군요.

“제가 고3 때였습니다. 고등학교에서 같이 뜨겁게 신앙생활을 하던 선배들 중 서울대에 들어간 1년 선배들이 대학교에 들어가 선교단체 활동을 하면서 오히려 신앙에 회의와 불신이 생기고, 우울감에 빠져 혼란과 고민에 치이는 모습을 보며 도대체 대학교 선교단체가 뭐하는 곳인가 고민이 많았었습니다. 

제가 직접 대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그 참상을 마주보니 왜 선배들이 그렇게 되었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선교단체가 간사들부터 공산주의, 민중신학, 페미니즘, 자유주의 신학에 물들어 신앙 좋은 학생들이 오히려 선교단체 활동을 하면서, 예수님을 향한 신앙과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에서부터 벗어나고, 세상과 타협하며 얼렁뚱땅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구별된 삶을 사는 것보다 훨씬 ‘서로 사랑하는 삶’이라고 권장되는 분위기였습니다. 
   
제가 새내기였을 때, 서울대 기독인연합이라고 서울대 기독인들의 연합체가 주최하는 개강 예배 때에는 실제적으로는 노동운동가인 자를 강사로 모셔와 설교를 듣기도 했습니다. 저는 설교를 듣다가 너무나 화가 나서 중간에 뛰쳐나와 꼭 서울대의 상황을 바꿔달라고 기도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가 트루스포럼을 만나게 되신 건가요.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사상으로부터 학생들을 지켜내야 할 선교단체들이 오히려 그러한 사상을 기독학생들에게 보급하는 통로가 되었다는 현실에 분노하고 있을 때에, 제1회 트루스포럼 강연 홍보물을 학교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강연자 이동호 : 좌파의 불편한 진실 - 촛불주동세력의 전략과 전술 그리고 실체) 학교에서 본 홍보물 중, 처음으로 들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듣게 되었습니다. 

강연자 본인이 간첩활동을 하시던 분으로, 대한민국에 얼마나 간첩들이 곳곳에 침투하여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를 바꿔 놓았는지에 대한 강연이었습니다. 강연자께서는 특별히 연세대 신학과 출신으로, 신학 담당 침투를 맡았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기독교계에 많은 간첩들이 침투해서 들어가 있다고 말하셨습니다. 

이후에 더욱 자세히 알게 된 것은, 기독교계에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침투해서 신학을 의도적으로 민중신학으로 오염시키는 자들이 있어왔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죄사함을 없애버리고, 노동운동으로 기독교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움직임이었습니다. 강연의 내용을 들으니 기독 학생들이 꼭 들어야 할 강연들이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가끔씩 트루스포럼 강연 중 흥미로운 것들이 있을 때마다 들으러 갔었습니다.

강연을 몇 개 들어보며 트루스포럼이라는 단체가 궁금해졌고, 김은구 트루스포럼 대표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게 되었는데요, 만나서 이야기해보니 대표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란 것이 느껴졌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근본적인 캠퍼스의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이 단체를 시작하신 것이라는 것이 느껴져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함께 하게 된 트루스포럼은 어떤 단체였나요.

“트루스포럼은 기독교 보수주의 연구, 활동, 및 교육 단체인데요. 김은구 대표님께서는 특히 트루스포럼의 궁극적인 목적 중 하나는 자유주의 신학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한국 교회를 살려내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인상에 남았습니다. 트루스포럼을 시작해보니, 그 안에서 너무나 귀한 신앙의 동지들을 만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트루스포럼의 이름으로 연설 등의 공개적인 활동을 했을 때에, 혹시나 당시 집권 정부에 찍혀 보복을 당하거나 하면 어떡하지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요. 그러나 제 마음에, 주님을 위한 것이니 혹시 트루스포럼 활동을 하다가 그럴리는 없겠지만 최악의 경우 무언가 트집을 잡아 나를 감옥에 집어넣더라도, 감옥 가서 만난 영혼들 전도하면 되지. 어디서나 전도를 하겠다는 그 마음으로 살면 인생은 항상 가치 있다는 마음을 다잡고, 트루스포럼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트루스포럼 활동을 통해 저는 많은 만남의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극렬한 반대와 핍박에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청년

-트루스포럼 활동들을 하면서 반대진영에서 공격도 많이 당하셨죠.

“트루스포럼은 공격을 많이 받았지요. 특히 트루스포럼에 적대적인 학생들이 포진되어 있던 총학생회나 총학생회 산하 동아리연합회 등에서 공격을 심하게 받았습니다. 동아리연합회를 이끌던 학생이 QIS(Queer in SNU) 소속 학생이었을 때에 우리를 강하게 공격했어요. 원래 동아리연합회는 매년 서울대의 단체 소개 책자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배포해 주는데, 트루스포럼은 동아리연합회 회칙인 차별금지 사유를 어기고, 총학생회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단체 소개 자체를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큰 공격은 동아리연합회의 트루스포럼 중앙동아리 등록 거부 사건이었습니다. 트푸스포럼은 중앙동아리 등록 시도 여건(학부생 20명 이상)을 충족했었습니다. 실제 등록 여부는 동아리연합회 주관 회의에서 기존 중앙동아리 대표들의 투표(과반 이상 찬성)로 결정됩니다. 등록 시도 동아리들 중에서 트루스포럼을 향해서만 질의응답이 집중되었습니다. 사전에 모의를 한 몇몇 동아리 대표자들이 트루스포럼을 악의적으로 프레이밍할 목적으로 질문들을 던지고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트루스포럼 대표자를 회의에서 퇴장 시킨 후에, 해당 동아리들에서 트루스포럼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며 분위기를 몰아가, 아무것도 모르는 나머지 동아리 대표자들에게 트루스포럼은 마치 비상식적 반사회단체인 것처럼 보이게 하여, 전체 동아리 대표 투표 결과 등록이 거부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트루스포럼은 이에 대응하여 동아리 등록 거부 취소를 요구하는 제소를 내기도 했습니다.

위 사건들을 통해 한국의 대학 사회에서 ‘성적 지향’ 차별금지 조항의 불공정한 적용 사례가 실제적으로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간접적인 공격도 있었다구요.

“트루스포럼을 직접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트루스포럼의 주변 단체들을 공격하는 악랄한 방법을 쓰기도 했습니다. 트루스포럼이 모임을 교내 기독교 동아리 방 중 하나에서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요, 동아리연합회 측에서 이를 문제 삼아 해당 기독교 동아리를 징계하고 중앙동아리에서 퇴출시키려고 했습니다. 중앙동아리에서 퇴출되면 해당 기독교 동아리는 동아리방 자체도 반납을 해야 되는 상황이었죠. 다행히, 동아리대표자 회의 투표 결과 아슬아슬하게 퇴출되지는 않았지만, 아주 악의적인 공격이었습니다.

학생회 뿐 아니라 조국 교수는 트루스포럼을 극우 단체로 매도하기도 하고, 오세정 총장은 극우나 극좌 단체는 학생사회에 편입될 수 없다고 말하며, 트루스포럼이 학생사회에 발 붙여서는 안 될 단체인 것처럼 인식하는 발언을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이 외에도 사실 트루스포럼을 향한 공격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도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단체가 겪었던 어려움에 비해 제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애초에 주님을 보고 시작한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한 것이 아니었고, 트루스포럼 활동을 탐탁지 않게 여길 사람들이 많을 것도 이미 각오하고 했기에, 뭔가 다른 사람들의 공격으로 인해 힘들었거나 하는 그런 기억은 거의 없어요. 

애초에 최악의 경우 감옥에 가서 전도하는 그런 상상을 하는 각오로 시작했기에, 개인적으로 어떤 공격이 오든 크게 신경 쓰이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저에게 직접 와서 뭐라고 하는 사람도 한 명도 없었습니다. 뒤에서 뭐라고 했을 수는 있어도요. 

다만, 반대진영의 공격보다도 신경 쓰였던 것은 동료 크리스챤 친구들이 트루스포럼을 향해 거리를 두는 모습이었습니다. 트루스포럼 모임을 실제 해보면, 정말 귀한 신앙의 사람들의 모임이고, 기도와 찬양이 뜨겁고 분위기도 너무나 즐거운 모임인데, 모임을 한 번도 안 와본 친구들이, 특히 신앙이 있고 어느 정도 트루스포럼의 뜻에 공감을 하는 친구들도, 트루스포럼은 뭔가 가까이하기엔 꺼려지고, 뭔가 신앙이 중심이 아니라 정치에 함몰된 단체인 것 같고, 가까이하면 본인에게 피해가 갈 것만 같은 느낌에 거리를 두려 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한 번만 모임에 와보면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 텐데. 한 번 오면 또 오고 싶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 적도 많았지요. 지금은 사명이 있고 부르심이 있는 친구들은 어떻게든 연결된다라는 생각으로, 사람들의 평가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오히려 핍박자들 위해 눈물로 기도하게 된 청년

-반대 진영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도 부어졌나요.

“사실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반대진영에 있는 사람들, 자유주의나 민중신학에 경도된 학생들, 간사들, 트루스포럼을 거의 무슨 기독교의 수치, 이단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는 화가 나면서도 또 그들에 대한 불쌍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노방전도에는 엄청난 거부감을 가지고, 동성애 반대 이야기만 나오면 기독교가 소수자를 혐오하는 도구가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차별금지법을 앞장서서 지지하는 자칭 기독교인 학생, 간사들을 보며 화도 많이 났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게 그들을 향한 눈물의 마음, 찢어지는 아픔의 마음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포괄적 차별금지 인권헌장 제정 논란이 한창이던 때에, 서울대기독인들이 모인 단톡방에서 기독인 한 분이 서울대 인권헌장의 문제점을 그 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리는 글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요. 그 방에 있던 다른 기독인이라는 학생이 그 단톡 화면을 캡쳐해서 ‘에브리타임’이라는 교내 커뮤니티에 올린 일이 있었습니다. 

해당 학생이 캡쳐 화면과 함께 커뮤니티에 올린 글을 보면 서울대 기독인의 비참한 현주소를 반드시 외부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 에브리타임 글을 보고 도대체 어떻게 스스로 기독교인이라는 사람이 저런 가치관을 가지고 저런 행동을 할 수 있는가 생각이 올라오려하는 순간에, 갑자기 제 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찢어지도록 슬픈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그 때 제가 교내에서 버스를 타고 앉아있었는데, 앉은 그 자리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 내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스스로 생각하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계속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는데,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저들이 꼭 주님을 바르게 믿어서 주님께로 진정으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하는 마음과 기도가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겪기도 하며, ‘예수님의 마음으로 영혼들을 바라보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를 많이 해 왔습니다. 그리고 사심이 없이 오직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사람의 시선에 신경 쓸 필요도 없어지고, 신경이 쓰이지도 않게 된다는 것을 느껴오고 있습니다.”

◇‘성유토피아’ 세력이 장학한 대학가의 판을 바꾸기 위해 ‘새학생회’를 만들다

-서울대 ‘새학생회’도 만드셨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2020년 서울대학교를 뜨겁게 달군 주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서울대 인권헌장’입니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학교에 거의 오지 않는 틈을 타, 일부 교수와 학생들이 모여 서울대 인권헌장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작성하고 기습적으로 통과시키려 했습니다. 헌장이란 대학 구성원 전체에 적용되는 가장 상위의 규범을 말합니다. 인권헌장에 포함된 내용 대부분은 이미 개별적인 학내 규약들을 통해 보장된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굳이 인권헌장을 제정하려 했던 숨은 의도는 바로 ‘차별금지’ 조항이었습니다. 

차별금지의 항목에 성적 지향을 포함시키고, 괴롭힘 조항을 통해 동성애 비판 발언이 듣는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독소조항을 숨겨 놓은 것입니다. 게다가 오세정 총장님의 발언을 통해, 이번 인권헌장 제정의 목표는 이를 어기는 자들에게 실효적 처벌을 가할 수 있다고 공언해 놓은 상황이었습니다. ‘인권헌장’은 사실 서울대의 ‘포괄적 차별금지법’이었던 것입니다.

-기습적으로 통과 됐더라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겠는데요.

”다행히 지각 있는 교수님들이 인권헌장의 기습적인 통과 시도를 미리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인권헌장 내용의 공론화 필요성을 제기했고, 학교에서는 패널과 방청객의 발언으로 구성된 공청회를 열었습니다. 공청회에 참여한 패널들은 대부분 인권헌장을 지지하는 인물들로 구성되었지만, 무작위로 선정된 방청객의 절대다수는 인권헌장의 문제점을 효과적으로 제기했습니다. 결국, 그날 서울대 인권헌장의 제정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인권헌장’ 대응차원에서 단체를 조직하게 된 것인가요. 

”그때 인권헌장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인권헌장의 제정을 반대하는 학교 구성원들이 모여 ‘진정한 인권을 위한 서울대인 연합’이라는 단체를 조직했습니다. 그리고 인권헌장에 반대하는 서명 운동을 벌이며 학교 본부에 반대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또 ‘자유와 인권을 위한 서울대인 모임’이라는 단체도 조직해 인권헌장의 문제점을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포럼을 열었습니다. 

인권헌장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학내 단체 중에는 인권센터와 단과대학 연석회의(학생회가 공석인 상태에서 학생회를 대체하는 학생 조직)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인권헌장의 독소 조항을 교묘히 감추고, 학내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인권헌장 지지 서명을 받았습니다. 2021년 단독 출마한 학생회 ‘퍼즐’ 선본 역시 인권헌장을 통과시킨다는 공약을 정책집에 내걸었었습니다. 

서울대학교의 학생회는 ‘민중해방의 불꽃’이라는 구호가 20년 이상 계속되어 오고 있습니다. 구호부터 좌익운동권의 영향력이 현저히 드러납니다. 극좌 조직인 사회변혁노동자당 등의 구성원들이 학생회에서 중요 직책을 맡으며 서울대학교의 정책 결정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단과대학 연석회의의 주요 직책을 맡은 학생이 탈동성애자들의 인권 문제를 제기한 대자보를 훼손하는 등의 사건은 여전히 서울대학교 안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느낀 것은, 차별금지법이라는 사회주의 법률 혁명을 통해 기존의 체제를 파괴하고 성유토피아를 추구하는 세력이 대학가를 장악해왔으며, 특히 학생회에서 대대로 그 세력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문제의식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학생회 조직까지 새로 만들 생각을 하게 된 것이군요.

“이런 상황에서 서울대 학생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짚고 일어나 기존 학생회를 견제하고 대체할 ‘서울대 새학생회’를 조직했습니다. 서울대에 입학하는 신입생들이 자신의 의사에 상관없이 노골적인 사회주의 구호를 달고 있는 ‘운동권’ 학생회에 자동 가입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총학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은 크게 보면 두 가지 방안이 있는데요. 첫째는 총학선거에 직접 출마하는 것이고, 두 번째 방안은 복수 학생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학생회의 역사를 보면, 특정한 세력의 뜻에 맞지 않게 행동한 학생회장이 당선되었을 때에 다른 트집을 잡아 기존의 학생회를 운영하던 간부들이 모여 학생회장을 탄핵해오던 관례가 있었습니다. 결국 학생회의 판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느껴 학생회 자체의 문제점을 들고 나오는 방안으로 새학생회라는 복수 학생회를 조직하는 방안을 들고 나오게 된 것이죠.

‘민중해방의 불꽃’ 총학생회 자동가입은 부당하여 복수 학생회의 인정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총학생회의 문제점 자체를 이슈화하는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학생회의 고질적 병폐에 대해 조직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었기 때문이었어요. 동문 선배님들께 총학생회 탈퇴하는 학생들을 위한 장학기금 설립을 요청하기도 하였습니다.”

-트루스포럼과 새학생회는 최근엔 어떤 활동들에 주력하고 있나요.

“최근 서울대 오세정 총장님께서 복수 학생회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답을 해 오셔서 후속대응 방안을 논의 중에 있습니다. 현재도 오세정 총장님이 포괄적 차별금지 인권헌장의 제정을 본인의 임기를 마치기 전까지 밀어붙이려 하는 상황입니다. 

인권헌장, 그리고 총학생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졌던 사람들이 계속 교내외의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인권헌장의 문제점을 알리려 합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총학생회 선거에서 새로운 선거 본부가 뽑히게 되었는데요. 임기를 시작하는 총학생회 대표 및 간부들에게도 서울대 인권헌장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민중해방의 불꽃’이라는 구호의 잔재 등 총학생회의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알리는 목소리를 내려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청년의 꿈은 ‘무엇을 하던 전도의 무대’로 삼는 것

-현재 하나님 안에서 꾸는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으시다면.

“저는 고등학교 때에 어떤 일을 어디에서 하던지 ‘그곳은 곧 전도의 무대다’란 생각으로 평생 살아가자는 삶의 태도를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던지 상관없이 오직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영혼을 사랑하고 전도하려하는 마음으로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길을 인도해주실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특히 아이들을 향한 마음을 주님이 주신 것 같습니다. 교대가 가고 싶기도 했습니다. 특히 어린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너무 행복하고, 왠지 눈물이 날 것 같고, 저 아이들의 순수함과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망가지지 않게 꼭 지켜주세요 기도가 나옵니다. 지금도 교회에서 초등부 교사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릅니다.” 

-대학 전공과 관련해서 생각해 본 진로는 없으신가요.

“종교학 전공, 그리고 영어영문학 복수전공을 했는데, 아이들을 향한 마음이 있었기에, 두 전공 모두 교직 과정을 이수했고, 졸업하면 종교교사, 영어교사 자격증이 나옵니다. 직접 교육계에 나아갈 수도 있고, 교육 관련 사업을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공부를 더해서 학계에 있으면서 교육을 할 수도 있고, 지금 확실히 어느 하나의 방향으로 쭉 나아가려 정한 것은 없고, 다 해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혼을 향한 주님의 그 불타는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는 한, 제 삶의 방향은 어디로 가든 무궁무진하게 열려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던, 대한민국이 주님께 돌아오고 부흥을 불러오는 데에 도구가 되길 원합니다. 저는 산책을 아주 좋아하는데요. 특히 해질녘 공원을 혼자 산책하며, 공원에 산책 나온 가족들의 모습을 구경하곤 했습니다. 공원에서 산책하는 행복한 가족의 모습들을 보며, ‘하나님, 대한민국의 가족들이 행복하게 해주세요. 아빠, 엄마, 아이가 손을 잡으며 산책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나라를 지켜주세요. 그리고 진정한 행복을 얻으려면 꼭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에 정말 온전히 주님께 바쳐져 참된 행복을 누리는 가족들이 넘쳐나게 해주세요. 대한민국을 지켜주세요.’ 이렇게 기도를 자주 드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무렵에 꿈을 하나 꾸었는데요. 제가 꿈을 그렇게 잘 꾸지는 않는 편이고, 또 꿈을 꾸어도 ‘이 꿈은 주님이 주신 꿈이다’ 하는 내용의 꿈을 꾼 적은 거의 없는데요. 그렇게 느껴지는 꿈을 꾸었습니다. 여기서 자세히 나누기는 어렵지만, 꿈을 꾸고 나서 자주 그 꿈을 생각해보며, 우리나라를 향한 마음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진 대한민국,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데에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영어를 복수전공 했는데 혹시 미국에 대한 마음도 있나요.

권 형제는 "어디서 무엇을 하든, 주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기 원한다”고 말했다. /김석구 기자
권 형제는 "어디서 무엇을 하든, 주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기 원한다”고 말했다. /김석구 기자

“왜인지 모르겠지만 미국을 보면 뭔가 마음이 아립니다. 신앙을 바탕으로 세워진 나라, 망가진 것들이 너무나 많은 나라, 보석과 같은 신앙의 사람들과 마음 아픈 일들이 함께 있는 나라, 그 나라를 생각하면, 갑자기 눈물이 나기도 하고, 주님이 미국을 회복시키고 싶어 하시는 마음이 부어지기도 합니다. 정확히 어떻게 일지는 저도 지금 모르겠지만, 미국의 회복을 위해서도 주님께서 저를 써주실 계획이 있으시다면, 순종하며 기쁘게 나아가길 원합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주님의 은혜에 항상 감사하고 날이 갈수록 겸손함으로 나아가며, 다만 주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로 만한다면, 형제님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나와 늘 함께하는 사랑의 인도자입니다. 저는 그 분 앞에 늘 부족하고 약한 것들 투성이 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언제나 부드럽게 저를 사랑으로 감싸 안아주시고 이전보다 더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며 저를 인도해주셨습니다. 에벤에셀, 여기까지 인도하신 주님이 앞으로도 그렇게 인도해주실 것을 믿으니 삶이 기쁘고 감사합니다.

주님을 생각하면, 동산이 떠오릅니다. 아가서에서 전체적으로 풍겨지는 아름다운 동산에서,  그 동산에서 예수님과 단둘이 거닐며 사랑의 대화를 나누는 그러한 그림을 자주 그려봅니다. 마음속에서 그리는 그 상상이 점점 이 땅에서 살면서도 뚜렷한 실체가 되기를 기도하며 매일을 나아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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