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광주
손광주

참 기분 좋은 새벽이었다. 우루과이의 2대0 승리 포함, 대한민국 16강 진출을 확률로 계산하면 ‘기적의 0.73%’가 아닐까 싶었다. 곧이어 고개를 드는 상념. 언제쯤이면 우리도 2400만 북한주민들과 얼싸안고 월드컵 16강 진출을 함께 기뻐할 수 있을까. 언제쯤 평양의 김일성대·김책공대 학생들도 김일성광장(7만5000㎡)에 모여 "세습독재 타도!"를 외칠 수 있을까. 그럴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앞으로 1~2년 내 평양에서 민주화 시위가 일어날 확률이 0.73%보다 높을까, 낮을까.

최근 김정은은 딸 주애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장 등지에 데리고 나타났다. 주애는 허리를 굽힌 별 넷 대장과 능숙하게 악수했다. 북한 선전당국의 수작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 외신들까지 이 모습을 ‘후계자’ 운운하며 호들갑이다. 김정은이 주애를 ‘후계자용’으로 데리고 나온 게 아니다.

북한체제를 쉽게 설명하면, ‘김일성가(家)에서 국가의 3대 요소(국민·영토·주권)를 모두 독점 소유한 형태’로 보면 된다. 조선노동당은 김일성패밀리를 위한 ‘집사’일 뿐이다. 따라서 김정은이 딸 주애를 데리고 ICBM 발사장에 나타난 의도는, ‘이 나라는 대대손손 김일성가(家)가 지켜갈 것이고, 김일성가의 핵무기 덕분에 이 나라의 새 세대들은 대대손손 안전해졌다’는 메시지를 선전하려는 것이다. 주애는 그런 선전을 위한 하나의 ‘상징물’(symbol)이다. 지금 김정은이 후계를 거론할 때가 아니다. 후계를 거론하는 순간 김정은의 절대권력은 후계자와 나눠야 한다. 그런 바보짓을 김정은이 왜 하겠는가.

1974년 김정일과 본처 김영숙 사이에 첫딸 설송이 태어났다. 김일성은 첫손녀 설송을 한 살 일찍 인민학교에 입학시키고 학업을 제대로 따라가는지 살폈다. 당시 남한 인구의 절반 수준이었던 북한은 한 살이라도 먼저 인민학교에 입학시켜 성인 노동력 사회 진출 시기를 앞당기려 했다. 설송이 학교수업을 잘 따라가자 김일성은 인민학교 입학연령을 만 6세로 한 살 낮추었다. 설송이 ‘학업성취도 실험용’이었던 셈이다.

좀더 두고볼 일이지만, 북한정권이 주애를 이른바 ‘핵강국 시대 새 세대의 상징’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지금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적’(敵)은 두 가지다. 외부 요인은 미국이다. 북한 내부 요인은 뭘까? 다름아닌 청년세대의 비사회주의 현상이다. 북한주민들이 한류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지 20년도 넘었다. 최근 북한민주화운동단체 ‘통일미디어’가 조사한 ‘2022 북한주민의 외부 정보 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오징어게임’ ‘사랑의 불시착’ 등 한국 드라마와 해외 제작 콘텐츠를 소비했다는 응답자가 무려 96%다. 대부분 청년층이다. 이 때문에 북한은 2020년에 ‘반동문화사상배격법’을, 2021년 ‘청년교양보장법’을 잇달아 제정했다. 한류 드라마를 유포하면 최대 사형이다. 실제로 북한당국은 지난 10월 한국 드라마를 유포한 죄로 고중(고교)생 3명을 처형하는 만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소라’ ‘수미’ 같은 남조선식 이름은 안되고 혁명성 있는 이름으로 바꾸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같은 조치는 청년세대 비사회주의 현상의 ‘싹을 자르겠다’는 뜻이다. 중국·북한은 80·90년대 소련·동구권 붕괴 요인을 오랫동안 분석해왔다.

따라서 김정은의 딸 주애는 ‘핵강국의 새 세대’로서 앞으로 청년세대를 이끌어가는 ‘혁명적 백두산 군사문화’의 아이콘으로 활용될 수 있다. 지금 북한정권이 가진 통치수단이 ‘핵’과 ‘거짓선전’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촌 세상은 변하고 있다. 이란 여성들이 히잡을 반대하며 죽음까지 무릅쓰는 시기가 왔다. 드디어 베이징 학생들이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을 외친다. 지금 북한에도 수많은 반체제 성향의 개인 ‘점’(點)들이 있다. 이 무수한 ‘점’들이 ‘선’(線)으로 연결(networking)되어 어느날 ‘면’(面)으로 밀고 나가면, 그것이 ‘민주화 운동’이 되는 것이다. 이 날은 반드시 온다. 그것이 인류 역사의 본류(main stream)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이 할 일은 ‘대북전단금지법’ 같은 악법을 조속히 폐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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