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량
강량

대한민국이 왜 이렇게 됐나. 6·25전쟁의 피흘림 속에서 체제를 지켜냈다. 굶주리는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사막에서 정글에서 막장에서 몸부림쳐 조국 근대화를 실현시켰다. 그런데 지금, 왜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뼈빠지도록 일했는지 되묻게 된다.

대한민국은 선진국 클럽인 OECD 회원국으로 세계 11위 교역대국이 됐다. 그러나 풍요의 역습은 너무도 가혹하다. 역사의 교훈은 왜곡되고, 오로지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꾸려갈 현재만 중요해졌다. 디지털 세계 속에서 모든 현상은 현실이 아닌 자기 중심의 연극으로 변했다. 가치와 도덕 기준은 상실돼 버렸고, 자기 편 승리만 기원하는 확증적 팬덤사회가 됐다. 근대국가의 시민과 국민은 이성을 상실한 채, 사회현상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는 타자적 관중이 되어버렸다.

권위주의사회에서 철저하게 암약해 왔던 얼치기 좌파들은, 민중해방이든 노동혁명이든 간에 꾸준히 대중영합주의를 기반으로 사회변혁론을 밀어붙였다. 비리·부패·암수(暗數)와 공작을 가리지 않는 철저한 이익카르텔을 형성했다. 그 결과 주사파의 반대한민국 세력으로 확연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었다.

반면 얼치기 우파들은 이승만과 박정희라는 위대한 지도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구적 관료사회를 벗어나지 못했다. 좌파들의 넘쳐나는 부정·부패·인기영합주의에 대응하지 못했다. 규제 일변도의 무이념·무정책·무사안일주의에 빠졌다. 그 결과 국민들이 환호할 사회예방정책이나 통합의 치유정책을 내놓지 못했다.

물질적 풍요 속 첨예한 개인적 이기주의는 결국 국가공동체의 정신적 긴장감을 와해시켰다.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상황에서 필수적인 주적 개념이 사라졌다. 북핵을 이고 사는 당면한 안보위기를 타인의 문제로 폄하하는 관중의 사회가 됐다.

지금 대한민국이 당면한 총체적 난관을 넘어서는 것은 그 어떤 학문적·정책적 이론으로도 불가능해 보인다. 오로지 이승만과 박정희의 지도력에 버금가는 지도자의 압도적인 정치력만이 살 길이다. 그래서 윤 대통령에게 대통령만이 갖는 ‘혁명적 지도력’을 지속적으로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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