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박테리아 ‘클로스트리듐 디피실균(C. diff)’이 유발한 중증 장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대변을 이식받는 ‘대변 이식술’이 미국 식품의야국(FDA)의 관문을 통과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계기로 암 환자의 백혈구감소증, 비만, 자폐증 등의 치료에도 대변 이식술의 적용이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변은 대장균을 비롯해 4800여종 이상의 세균이 득실거리는 감염의 온상이다. 그런데 이런 대변이 다수의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다제내성균)를 잡을 인류의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미 식품의약국(FDA)이 병·의원 내 2차 감염의 주요 원흉 중 하나인 ‘클로스트리듐 디피실균(C. diff)’에 맞서 대변 미생물 치료제의 판매를 승인한 것이다.

최근 스위스의 다국적 제약사 페링제약은 자사가 개발한 재발성 C. diff 감염병 치료 신약 ‘레비오타(Rebyota)’가 바이오 혁신 치료제로서 FDA로부터 정식 승인을 획득했다고 밝혔다. 레비오타는 건강한 사람의 대변에서 추출한 미생물 제제로, FDA가 ‘대변 미생물 이식술(FMT)’ 기반 치료제를 승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C. diff는 발열·설사·경련 등 치명적 장(腸) 질환을 일으키는 슈퍼박테리아다. 여타 질병 치료를 위해 투여한 항생제의 부작용으로 장내 유용 미생물이 사멸하면서 면역체계가 무너진 65세 이상 고령자나 만성질환자, 입원 환자들이 주로 감염된다.

특히 C. diff는 노인 감염자 11명 중 1명이 1개월 내 사망에 이를 만큼 치사율이 높기로 유명하다. 미국 내 사망자수만 매년 1만5000~3만명 수준이다. 또 감염 원인도, 약도 항생제인 탓에 치료가 어렵고 재발률까지 높아 감염자의 20%는 완치 후 2~8주 내에 재감염된다.

레비오타는 건강한 기증자의 대변 속에 살아 있는 미생물을 환자의 항문을 통해 장에 1회 직접 주입(이식)함으로써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정상화하는 방식으로 C. diff를 치료한다. 균과 싸워 이길 수 있도록 장을 리셋하는 것이다. 페어 포크 페링제약 대표는 "복수의 임상시험 결과, 8주 안에 피실험자 70.6%의 증세가 치료됐고 그중 90%가 6개월 동안 재발하지 않았다"며 "장내 미생물 군집(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해 치료 선택지를 넓힌 중요한 이정표"라고 강조했다. 참고로 C. diff 표적 항생제의 완치율은 40% 미만에 불과하다.

사실 대변 이식술은 갑자기 등장한 치료법이 아니다.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의 발전에 힘입어 미국 의사들 사이에선 10여년 전부터 C. diff 감염 재발 방지 옵션으로 인정받아 왔으며 대변을 공급하는 대변은행도 여럿 운영되고 있다. 일례로 미국 첫 공공 대변은행 오픈바이옴은 2013년 10월 이후 총 6만5000여건의 대변을 제공해 78%의 완치율을 기록 중이다.

하지만 FDA는 지금껏 이를 규제하지 않았다. 대변 이식술을 단순 시술로 보고 집행 재량(enforcement discretion)을 발동해 규제를 면제했다. 의사나 대변은행은 기증된 대변의 세균 감염 여부만 확실히 검사하면 됐다. 남의 대변을 이식한다는 심리적 거부감에 더해 신뢰성에서도 다소 흠집이 있었던 셈이다. 폴 포이어슈타트 예일대 의대 교수는 "레비오타의 승인으로 대변 이식술이 FDA가 공인하고 표준절차를 가진 치료제로 격상됐다"며 "앞으로 더 많은 환자가 안심하고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따라 내년초 레비오타의 시판을 계기로 대변 미생물 이식제제 시장이 꽃을 피울 것이라는 게 제약업계의 관측이다. 미국 바이오벤처인 세레스 세러퓨틱스가 88%의 C. diff 감염 재발 방지 효과가 확인된 대변 미생물 이식 경구약 ‘SER-109’를 개발해 올 9월 FDA에 생물의약품 품목허가(BLA)를 신청한 상태라 페링제약과 함께 시장성장을 이끌 전망이다. 여기에 지난달 C. diff용 대변 미생물 관장약 ‘바이오믹트라(BIOMICTRA)’의 호주 정부 승인을 획득한 호주 생명공학기업 바이옴뱅크도 FDA에 도전할 채비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C. diff 감염병 외의 질환을 대상으로 한 대변 미생물 기반 신약 개발 역시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궤양성 대장염, 과민성 대장증후군, 크론병 등 다양한 염증성 장 질환이 1차 타깃이다. 아울러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 상실이나 유익균 결핍으로 야기되는 동종조혈모세포이식 환자의 혈류감염(BSI)과 급성이식편대숙주질환(aGvHD), 암 환자의 백혈구감소증, 비만, 자폐증 등에도 대변 이식술을 적용하려는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대한소화기기능성질환·운동학회(KSGM) 관계자는 "대변 이식술이 많은 국가에서 주목받으면서 지난 1월 의료계 전문가들과 함께 국내 실정에 부합하는 임상 가이드라인 권고안을 마련했다"며 "미국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도 난치성 C. diff 감염환자가 상당수 나오고 있어 식약처를 포함한 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클로스트리듐 디피실균(Clostridium difficile)’ 배양 배지. 면역체계가 약해진 노인이나 환자들이 이 균에 감염되면 치료가 어렵고 재발률도 높아 치명적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미국에서만 매년 1만5000~3만명이 이 균에 감염돼 목숨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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