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금융중심지 여의도. /서울시
서울의 금융중심지 여의도. /서울시

최근 기업어음(CP)의 금리 상승세가 주춤하고, 일반 회사채 수요예측도 흥행에 성공하면서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 이후 2개월여 만에 자금시장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모양새다. 두 차례에 걸친 정부의 자금시장 안정대책이 일정 부분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전일 CP(91일물,A1) 금리는 연 5.54%를 기록했다. 지난 1, 2일과 같은 수준의 금리다. CP는 자금조달을 목적으로 발행하는 어음 형식의 단기 채권이다.

올들어 지난 1월 4일 1.55%였던 CP 금리는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가 발생하기 전인 9월 27일 3.24%까지 올랐고, 사태가 가시화한 10월 19일에는 4.02%로 4%선을 넘었다. 11월 9일에는 2009년 1월 14일의 5.17% 이후 13년 10개월 만에 5%선을 넘은 5.02%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CP 금리의 상승세가 멈추지 않으면서 9월 21일부터 12월 1일까지 49거래일 연속 오르다 최근 주춤한 상황이다. CP 금리가 사흘 연속 오르지 않은 것은 지난 9월 19일부터 21일까지의 연 3.13% 이후 처음이다.

정부는 10월 23일 50조원 플러스 알파(+α) 규모의 긴급 자금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했고, 한 달여 만인 지난달 28일 추가 자금시장 안정대책을 내놓았다. 채권시장안정펀드를 추가로 5조원 더 늘리고, 12월 국채 발행 물량도 9조5000억원에서 3조8000억원으로 줄이는 것이 주요 골자다. 최근 CP 금리가 보합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잇따른 자금시장 안정대책에 따라 신용등급이 높은 우량물이 우선 소화되고, CP에도 점차 온기가 퍼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회사채 발행시장 역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하이투자증권(AAA)이 지난달 29일 실시한 수요예측에 5410억원이 몰린 게 대표적이다. SK(AA+)도 지난달 30일 진행한 수요예측에서 8600억원을 접수했다. 각각 1800억원과 2300억원 모집이 목표였지만 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한 것이다. 수요예측은 기관투자자가 채권 발행을 주관하는 대표주관회사에 매입희망 수량과 가격을 제시하는 것을 말한다.

회사채 발행시장이 살아나면서 6개월 만에 10년 만기 회사채도 등장했다. SK텔레콤이 6일 진행한 25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수요예측에 10년 만기 회사채 200억원이 포함된 것이다. 회사채 시장에서 10년 이상 장기물을 발행하는 것은 지난 6월 KB금융지주(AAA) 이후 처음이다. SK텔레콤의 회사채 수요예측은 10년 만기 회사채와 함께 2년 만기 회사채 1000억원, 3년 만기 회사채 900억원, 5년 만기 회사채 400억원으로 구성돼 있다.

그동안 회사채 시장에서 장기물은 씨가 마른 상태였다. 금리 인상 기조로 기관투자자들이 5년 이상의 중·장기물을 외면하고 단기물만 선호한 탓이다. 특히 장기물의 ‘큰손’인 보험사들이 채권 매수에 소극적으로 돌아서면서 어려움이 가중됐다.

최근 물가 오름세가 한풀 꺾이고 있는 가운데, 내년 1분기에 미국과 국내 기준금리가 정점을 찍는다면 회사채 발행시장의 안정이 비우량물로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시중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란 비판이 제기됐던 한전채도 한국전력이 채권 발행을 줄이고 은행 대출을 늘리면서 안정을 찾아가는 분위기다. 한국전력은 지난달 28일과 30일 2년물과 3년물 총 9700억원어치를 연 5.20~5.35%의 금리로 발행했다. 지난 10월 17, 18일 낙찰 금리인 연 5.9%보다 대폭 낮아진 것이다.

다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금리는 변곡점을 맞고 있다. 건설사 보증 PF ABCP 금리는 20%대에서 4~8%대까지 낮아졌지만 유동성 우려가 여전한 증권사 보증 PF ABCP 금리는 12%까지 올라 경계심이 여전한 상태다.

실제 증권사 보증 PF ABCP 금리는 연일 오름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중소형 증권사 보증의 PF ABCP는 아예 거래가 되지 않으면서 부도설이 나돌고 있다. 연말 자금수급 변동성이 높아질 수 있는 가운데 15조7000억원 규모의 증권사 CP 등 대규모 만기 도래에 따른 원활한 차환 여부도 관건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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