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운동정치가 정치권력 퇴행 가져와
시민단체 운동정치가 정치권력 퇴행 가져와
  • 박동원 정치평론가, 폴리콤 대표
  • 승인 20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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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 후 노동, 빈민, 농민 등 전위운동서 분화한 시민운동은 자연스레 ‘대정부 투쟁’ 겸해

-광우병 촛불과 MB정권의 정치 퇴행들. 그 뒤 국정원댓글공작, 문화계블랙리스트가 그 트라우마

-시민단체 전위운동의 일방성이 권력마저 퇴행하게 해. 운동정치, 전쟁정치 위한 진영화 사라져야

과거 내가 살았던 도시에서도 시민단체에서 문제들이 생기고는 했다. 시민단체도 사람 사는 곳인데 왜 문제가 없겠나. 그들도 사람이고 실수도 하고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잘못도 할 수 있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성추문을 일으킨 사람이 단체의 대표를 맡기도 했고, 또 어떤 단체 대표는 이해관계에 있는 업체에 돈을 받기도 했다. 그땐 그냥 뭉개고 넘어갔다. 시대가 그랬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반은 우리나라 시민단체의 태동기였다. 87년 6월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와 더불어 열린 공간 속에서 시민단체가 하나 둘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노무현 전대통령 수사도 정권 위기 돌파구 차원에서 이루어졌고, ‘명박산성’으로 대변되는 이명박 정권의 배타적 수세도 시민단체의 공세를 막아내기 위해서였다.

기존의 노동운동이나 빈민, 농민 운동과 같은 전위운동에서 시민운동이 분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시민’의 개념조차 제대로 논의되거나 정립되지 않은 시기의 시민운동은 결국 운동의 한 형태였다.

87년 이전에는 YMCA나 흥사단 같은 일종의 계몽단체가 시민단체의 초기 형태로 존재하며 권리보호와 같은 시민 대변 역할을 해왔으나 87년 이후부터는 운동의 일부가 되었다. 학생운동 출신이 주축이 되었고 종교, 학계 등의 사회적 명망가들을 대표나 고문, 이사 같은 상징성 있는 자리에 모셔 단체의 공신력을 높였다. 시민운동은 자연스레 ‘대정부 투쟁’도 겸했다.

◇시민단체와 민주당, 인적·정서적·가치적 공동체

그러다 보니 시민단체와 민주당은 자연스럽게 인적, 정서적, 가치적, 이념적 공유체가 되었다. 실제 수많은 시민단체 출신들이 정당과 정부로 유입돼서 이해와 이익 공동체로 발전했다.

권력을 감시해야 할 시민단체가 권력과 한 통속이 된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보수진영의 시민단체를 촉발시켰다. 특히 2008년 진보진영 시민단체들이 일으킨 ‘광우병 촛불’은 보수 시민단체를 호명했다.

광우병 사태로 인해 보수 정권도 수세적으로 변해 갔다. 중도실용을 표방하며 출발했던 이명박 정부는 광우병으로 인해 정권이 넘어갈 위기에 처하면서 퇴행적으로 변했다.

노무현 전대통령 수사도 정권 위기 돌파구 차원에서 이루어졌고, ‘명박산성’으로 대변되는 이명박 정권의 배타적 수세도 시민단체의 공세를 막아내기 위해서였다.

국정원 댓글공작도 문화계 블랙리스트도 광우병 촛불 트라우마 때문에 시작되었다. 시민단체의 전위운동 일방성이 권력마저 퇴행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 권력의 퇴행은 보수 몰락의 근원이 되었다. 운동적 관점에서 보면 ‘성공’을 거둔 셈이지만, 국가공동체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 우리 사회는 큰 퇴행과 실패를 겪고 있다.

◇견제와 균형 무너진 권력 반드시 오만해져

민주주의는 과거 운동방식의 권력 헤게모니로 바라보면 안된다. 견제와 균형이 무너진 권력은 반드시 오만해진다. 특히 ‘선의’와 ‘정의’로 정신무장한 권력이 가장 무섭다. 집단의 지적 능력과 민주주의 이해도가 낮은 사회는 선의와 정의에 잘 현혹된다. 그래서 늘 우리 권력은 ‘정의’를 내세운다. 희대의 악법 가능성이 농후한 ‘공수처법’도 그래서 생겨났다.

정권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국가경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보다 민족통일, 역사바로세우기, 정의사회구현 같은 일에 더 몰두하고 있다. 더 나아가 한명숙 사건 번복 시도처럼 자기 진영의 이익을 위해 스스럼없이 권력을 활용하고 있다. 윤미향을 옹호하는 것도 진영의 이익과 이해를 앞세우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흔들리지 않고 세운 나라가 어디에 있으며, 집단 간의 이해갈등 없는 나라가 어디 있겠나. 그걸 해결하는 게 정치의 목적과 역할이다. 목적을 오도하여 운동정치, 전쟁정치를 위한 진영화를 강화한다면 미래는 차치하고 당장 눈앞의 현실마저 제대로 대처해나가지 못한다.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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