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협·정의연 진짜 목적은 ‘韓日이간’
정대협·정의연 진짜 목적은 ‘韓日이간’
  • 박두진 재일 코리아국제연구소소장 
  • 승인 2020.0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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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In-depth 2020/5/26

【요약】

・한국의 정의연(正義連), 용도가 불분명한 돈 때문에 위안부 피해자가 조직 해체를 요구

・윤미향 전 이사장은 금전뿐만 아니고 본래 역할에 대해서도 의문의 목소리

・정의련(正義連)의 전신인 정대협은 ‘日韓이간’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지금 한국에서는 정대협과 그 후속조직인 ‘정의련(正義連 =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의 전 이사장 윤미향씨의 기부금모금과 그 용도가 불분명하다는 의혹이 부각되어 여론의 혹독한 비난뿐만 아니라 검찰의 강제수사까지 진행되고 있다.

■전 위안부 이용수(李容洙)씨가 정대협 해체를 요구

5월7일 전 위안부피해자 이용수씨가 대구에서 단독기자회견을 열고 기부금의 불투명한 쓰임새를 지적하면서 수요집회 등 운동 본연의 자세도 비판하면서 정대협 해체를 요구하면서 시작된 이 사건들은 현재까지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윤미향씨와 정대협의 가장 큰 의혹은 자금을 원래 목적으로 쓰지 않고 유용한 혐의다. 이에 대해서는 현재 수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윤미향씨와 정대협의 또다른 의혹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서 윤씨가 수행한 역할에 관한 의혹이다.

지난달 25일 대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린 정의연 기부금 부성사용 의혹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5일 대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린 정의연 기부금 부성사용 의혹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시기인 2015년 12월말 한국정부와 일본정부는 ‘한일위안부합의’로 ‘위안부문제의 최종적이고도 불가역적 합의’를 약속하고 일본측이 ‘치유재단’설립을 위한 10억엔 갹출을 약속했다. 윤미향씨는 이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으면서도 당사자인 피해자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일본으로부터의 지원금을 수취하지 말도록 공작을 했다는 의혹이다.

실제로 당시 생존피해자 46명 가운데 12명이 일본으로부터의 지원금의 수취를 거부했다. 이것이 2017년에 발족한 문재인 정권이 ‘피해자 중심주의’를 내걸고 ‘한일 위안부합의’를 사실상 파기하는 주요명분으로 삼은 부분이다. 윤미향씨는 이런 지적에도 명확한 회답을 하지 않았다.

이용수씨가 지적한 문제점은 크게는 이상의 2가지지만 이용수씨가 지적하지 않았던 문제가 있다。그것은 정대협 운동의 정치목적이다.

■한일 이간을 위해 조직된 정대협

정대협 결성의 기원은 1987년 8월의 히로시마・나가사키에서의 ‘원수폭(原水爆) 금지 세계대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1987년 6월 한국에서 민주화선언이 나온 직후였다. 정대협의 창시자인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회장인 고 이우정(李愚貞)씨가 이 대회에 참가하여 일본사회당의 시미즈 수미코(清水澄子, 1928-2013)씨에게 북한과 제휴를 제안한 것에서 시작이 되었다.

그 자리에서 재일동포 출신의 모 여성인권운동가로부터 시미즈 수미코씨를 소개받은 이우정씨는 시미즈 수미코와 나가사키만의 배 위에서 비밀 회담을 갖고 ‘한국교회여성연합회’(정대협)결성 후에는 정대협과 일본사회당부인부(婦人部), 그리고 북한의 통일전선부 산하의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의 3자 연대를 실현할 것에 대하여 모의를 했다.

윤미향

그 때의 모습을 시미즈 수미코씨가 일본 조총련기관지인 <조선신보> 2002년 6월 6일자 기사 ‘이우정씨를 애도한다’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와 이우정씨가 직접 만난 것은 한국의 군정이 민정으로 전환하기 시작한 1987년 8월、한국으로부터 처음으로 그녀가 원수금세계대회(原水禁世界大会)에 참가했을 때다. 두 사람은 KCIA(한국 안기부)의 눈을 경계하여 나가사키만의 선상에서 상의를 했다.

그녀는 ‘김일성 주석에 관한 것, 북한의 동포에 관한 것을 들려 달라!, 일본에서 북한의 동포인 여연구(呂燕九)씨와 만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달라. 당신이라면 가능하다’며 나의 손을 잡았다. 나는 민족의 뜨거운 정에 흔들렸다. 그리고 두 사람이 지혜를 짜낸 것이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실행위원회’였다”라고 회고했다(注:그 때 북한의 여연구씨는 조국평화통일민주주의전선의장이었다)“

그리고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실행위원회’라는 두루뭉술한 명칭으로 한 이유에 대해 시미즈 수미코씨는 다른 회고문에서 “우리들의 목적(注:日韓좌파와 북한과의 제휴목적)을 위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 후 일본에서 가이후(海部)내각 발족 후인 1990년 9월26일에 북한의 조선노동당과 일본 자민당·사회당과의 ‘日朝3당 공동선언’이 발표되어 日朝 국교회복과 배상문제가 거론되는 가운데서 1990년 11월에 한국에서 ‘정대협(挺対協)’이 결성되었다.

그리고 1991년 5월에 가서 4년 전인 1987년 8월에 나가사키만의 선상에서 주고받은 이우정씨과 시미즈 수미코씨의 밀약이 실행으로 옮겨졌다. 일본사회당 산하의 ‘일본부인회의(日本婦人会議)’가 조직한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심포지엄’ 제1회가 동경에서 열렸다.

이 대회에 북조선대표로 여연구(呂燕九)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의장과 당시의 한국의 정대협(挺対協) 공동대표인 윤정옥(尹貞玉)과 이효재(李効再)가 참가해 남북공동투쟁에 합의했다. 이 합의 이후 정대협과 북한의 연계가 강화되었다.


1992년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평양 토론회. (왼쪽사진)당시 북한에 생존한 위안부 할머니, (오른쪽사진) 정대협을 설립한 것으로 알려진 이이효재 씨.   (사진=연합뉴스)

정대협의 실무자들은 이후 1992년 평양서 열린 제3회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심포지엄’에서 김일성 주석과 만난 후 위안부피해자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북한의 의향에 따라서 한일 이간전략을 적극적으로 실천해 나갔다.

이런 움직임은 윤미향씨가 정대협의 이사장이 되고부터 한층 명확해졌다. 이런 상황은 윤미향씨의 남편과 그 누이가 북한의 간첩이라고 해서 검거되어 유죄판결을 받은 것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윤미향씨의 남편 김삼석은 재심에서 일부 무죄로 되었으나 일본에 있는 이적단체와의 제휴한 부분은 유죄 그대로다.

윤미향 전 대표와 그의 남편 김삼석씨의 종북적 행동은 경기도 안성시의 정대협 시설에서도 드러났다. 중국 영파(寧波)시의 북한 레스토랑 유경식당(柳京食堂)에서 2016년 4월 탈북한 종업원들을 2018년에 초청하여 북한으로 돌아갈 것을 회유했다는 것이다.

또 이 부부는 위안부 출신 김복동씨의 지원금으로 장학기금을 만든 다음 김정은 칭찬 학생조직인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또 윤미향씨는 2013년 9월에 파리에서 있었던 ‘수요집회’에서 북한에 핵개발정보를 건냈다고 해서 프랑스의 정보당국에 체포되었던 인물과도 접촉했던 것으로도 밝혀졌다.

■ 정대협(挺対協)의 본질을 보기 좋게 지적한 주돈식 대표

정대협의 이러한 정치적 본질과 진짜 운동의 목적에 대하여 한국좌파출신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는、다음과 같이 예리하게 지적했다.

“모든 운동은、특정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에 있지만 윤미향과 정대협은 일본군 위안부문제의 해결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심각화와 악화이며, 만성화시켜 이 문제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커지는 것이다. 이것은 운동이 아니라 음모를 위한 기획에 있을 뿐이다.”

또 주씨는 “일본정부의 보상금을 위안부 할머니들이 거부하도록 별별 술수를 다 써서 그 돈을 수취한 할머니를 창녀, 매춘부로 매도했다”고 하면서 “(이러한 행동을 통하여 그들은)개인적으로는 다양한 종류의 후원금과 사회적 명성, 정치권력을 얻을 수 있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일, 한미 관계를 파탄시켜 대한민국을 金씨조선과 중국의 손에 맡기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주씨는 “이들의 불순한 의도 때문에、대한민국과 국민이 감수해야만 하는 피해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고 강조하면서 “역대정권이 이 문제에 대하여 통상적 인식을 지니고 있었더라면 이들은 모두 국사범(国事犯, 반국가행위를 범한 자)으로 처벌되었었다”고 지적했다.

위안부문제를 이용한 정대협의 한일 이간작전은 한일의 민족감정도 이용해서 지금까지는 보기 좋게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의 이권화와 성역화로 정대협과 정의연대가 부패하여 우연한 기회에 그 정체가 전세계에 드러나게 되었다.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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