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부를 돌파한 김호연의 장편소설 <불편한 편의점>, 금년 독서시장에서 소설 판매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소설’로 빛났다. /교보문고

지난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었을까. 교보문고에 따르면, ‘불안’을 키워드로 한 도서출간이 작년 219종에서 올해 308종으로 늘어났다. 판매신장률은 작년 대비 37.2% 증가다. 국방·군사 관련 도서 증가세도 눈길을 끈다. 전쟁과 북한 도발의 여파로 관심이 쏟아져 판매가 작년 대비 13.9% 늘었다. 불안감이 본격적으로 고조되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듯 제목 또는 부제목에 ‘불안’ 키워드를 담은 책이 증가했다.

올 한해 가장 많이 팔린 책은 김호연의 장편소설 <불편한 편의점>이었다. 2020년대 들어 <달러구트 꿈 백화점> <아몬드>에 이어 한국 소설로는 세 번째로 100만 부 판매를 돌파했다. 다양한 레저가 가능해진 현대인에게 여전히 소설이 읽힌다는 게 주목된다. ‘이야기’ 없이 살 수 없는 인류 본연의 속성을 엿보게 한다. <불편한 편의점>을 필두로 소설 분야가 올해 서점가의 절대 강세, 베스트셀러 ‘톱10’의 절반이 소설이었다. 김훈의 <하얼빈>이 3위에 오른 가운데 김영하의 <작별인사>(5위), 이미예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7위), 황보름의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10위) 등이다.

불편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는 듯 ‘위로’를 주제로 한 소설이 두드러지는 것 또한 눈길을 끈다. 11위에 진입한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키워드 역시 ‘위로’다. 제목에 ‘위로’를 담은 도서출간 종수가 지난해 158종에서 올해 257종으로 크게 늘었고, 판매신장률 역시 28.5% 증가했다. 한편 올해 도서시장 키워드로 교보문고는 ‘낭중지추’(囊中之錐)를 뽑았다. 주머니 속에 있더라도 송곳의 뾰족함을 감출 수 없듯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알려진다는 비유다. <불편한 편의점>이 작가의 유명세나 마케팅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이야기의 힘’만으로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점도 고려했다고 한다.

‘소설 인기’ 현상을 교보문고 관계자는 ‘K문학’의 부상과 함께 설명하기도 했다. 이수지 작가가 아동문학의 노벨상 격인 안데르센상을 받고, 정보라·박상영 작가가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맨부커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등 그간 큰 조명을 받지 못했으나 내실을 다졌던 ‘K문학’이 올해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점을 그 배경으로 꼽았다. 한국문학 뿐만 아니라 한국영화·웹툰 인기 등 한류 전반에 대한 관심이 한국문화 관련 번역가(家) 증가로 이어졌다.

‘2022 한국문학번역상’ 번역대상에 고은지(미국)와 마시 카라브레타 칸시오 벨로(미국) 유신신(대만) 잉리아나 탄(말레이시아)이 선정됐다. 수상자들은 K팝과 드라마 등 한류 열풍으로 한국문학의 인지도가 높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부터 번역대상 3개 언어권 수상자 모두에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여한다. 한국문학번역상 공로상은 일본 쿠온(CUON) 출판사 김승복 대표가 받았다. 쿠온 출판사는 2007년 설립 이래 박경리·황석영·한강·박민규·정세랑 등의 한국문학 작품을 출간하며 일본에서의 한국문학 붐을 선도해왔다.

그 외 도서시장 상황은 어떨까. 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인상에 따른 투자위축 분위기가 도서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게 교보문고 분석이다. "재테크 도서는 시차를 두고 반응했다"며 "주식·증권 도서가 올해 초부터 작년 대비 동월 기준으로 판매량이 줄곧 감소한 데 반해, 부동산 도서 판매는 올해 8월까지 증가하다 9월부터 감소세로 전환됐다"고 한다. 지난해 주식투자와 가상화폐 투자 등 투자 호황에 힘입어 급증했던 경제·경영 분야 책들도 올해 불황의 직격탄을 맞았다. 경제·경영 분야는 작년 대비 13.7% 판매가 줄었고, 특히 주식·증권 도서는 판매량이 작년보다 43.8% 급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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