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시벨.
데시벨.

아무런 정보 없이 영화 제목만 놓고 보면 소리에 관한 이야기로 상상하기 쉽다. 이를테면 ‘향수’에서처럼 매혹적인 냄새를 얻기 위해 살인을 불사한다든가 하는 이야기 말이다.

그러나 ‘데시벨’은 소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폭탄테러범 이야기다. 알다시피 데시벨(decibel)은 소리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다. 특이한 것은 폭탄의 기폭제가 일정 수치의 데시벨이란 점이다. 범인은 놀이터, 운동경기장 등 소음이 발생할 만한 장소에 폭탄을 설치한 뒤 수사기관과 세상을 조롱한다. 사상 최대 도심 폭탄테러. 막을 것인가 당할 것인가. 막기 위해서는 데시벨 기폭제를 설계한 범인을 찾아야 한다.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긴박한 사운드 테러. 창과 방패 중 어떤 것이 승리할 것인가.

잠수함이 지나가는 깊은 바다는 두려움 그 자체다. 거기다 높아만 가는 CO2 농도. 승조원 절반은 살고 절반은 죽어야 한다. 생사의 갈림길은 실뽑기, 긴 실을 뽑아야 하고, 뽑기라는 우연으로 생사가 갈린다. 그런데 그게 테러의 원인이었다. 그러니까 범인은 살아남은 승조원 중 한 명.

수압이 찍어 누르는 해저, 누가 살고 누가 죽을 것인가는 이 영화의 관점이 아니다. 잠수함의 협소한 공간과 인간심리도 아니다. 극한 속에서 살아남은 자의 트라우마와 극복 과정 또한 관점이 아니다. 오직 살아남은 자가 죽은 자를 대신해서 벌이는 지상에서 의 복수, 사운드테러만 있을 뿐이다.

모든 스토리에는 모티브라는 게 있기 마련다. 생각하건대 ‘데시벨’의 모티브는 ‘천안함 사건’과 영화 ‘유보트’가 아닐까. 1981년 독일에서 개봉된 ‘유보트’는 잠수함 영화의 고전이고 ‘천안함 사건’은 실제로 북한의 어뢰공격을 받아 침몰한 대한민국 해군함정이다. 북한 어뢰공격을 받아 함정과 함께 수장된 수병들과 살아남은 수병들. 동료를 수장시킨 원수가 코앞에 있건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수병의 감정이입이 감독으로 하여금 이런 영화를 만들게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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