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ICIJ와 프로퍼블리카는 푸틴 대통령이 임명한 세계 각지의 러시아 명예영사들이 민간외교관이 아니라 사실상 스파이라고 주장했다. /연합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ICIJ와 프로퍼블리카는 푸틴 대통령이 임명한 세계 각지의 러시아 명예영사들이 민간외교관이 아니라 사실상 스파이라고 주장했다. /연합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임명한 외국인 명예영사들이 ‘민간외교관’이기 보다는 ‘사실상 스파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일부는 러시아 마피아와 교류하거나 러시아제 순항미사일을 중국과 이란에 넘기려다 적발되기도 했다.

국제탐사보도기자연맹(ICIJ)와 미국 탐사보도 매체 ‘프로퍼블리카’는 지난 7일(현지 시각) 푸틴 대통령이 임명한 세계 각국의 명예영사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민간 외교활동 범위를 벗어나 현지에서 여론선동을 하는 등 사실상 러시아 스파이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ICIJ와 ‘프로퍼블리카’는 2014~2018년 몬테네그로의 명예영사를 지낸 ‘보로 듀키치’의 사례를 소개했다. 듀키치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정당을 창당한 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탈퇴를 요구하는 활동을 벌였다. 러시아는 대신 그에게 호화저택을 제공했다. 올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자 그는 러시아에 유리한 여론몰이에 나섰다. 몬테네그로의 한 정치인은 듀키치를 가리켜 "그는 몬테네그로 사회를 손상하려 했고 성공했다"며 "그는 공식 외교관이 할 일을 훨씬 뛰어 넘는 일을 벌였다"고 비판했다.

매체들은 ‘군사정보 보고서’를 인용해 다른 러시아 명예영사 가운데도 문제가 있는 인사들이 있다고 전했다. 멕시코의 호텔과 나이트클럽을 소유한 러시아 명예영사는 자신의 저택에서 그의 개인 경호원과 러시아 범죄조직 두목이 만나도록 도왔다.

적도 기니의 한 사업가는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러시아제 순항미사일을 이란과 중국에 판매하도록 도운 혐의로 투옥됐음에도 2011년 러시아 명예영사로 지명됐다고 매체는 전했다. 매체는 푸틴 대통령이 취임 후 10년 동안 명예영사를 20명 미만에서 80명으로 늘렸다며 이와 유사한 사례가 더 있을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러시아 명예영사가 있다. 그러나 매체들이 주장한 정·재계 인사들과 거리가 멀고 러시아 대학에서 오랜 기간 교수를 지낸 학자다.

명예영사는 임명한 나라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지는 않지만, 직업 외교관에 준하는 특권을 갖는다. 1963년 비엔나 협약에 따라 외교관 여권, 차량 번호판 등을 사용할 수 있다. 또한 공식 업무로 일어난 일에 대해 현지 정부가 기소할 수 없고 서신·가방은 현지 사법당국의 수색을 받지 않는다. 대신 명예영사는 명예영사로 임명한 나라와 자신의 거주국 사이의 우호 관계를 증진하는 민간외교관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세계 각국의 명예영사 500명 이상이 범죄 혐의로 기소돼도 명예영사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ICIJ와 프로퍼블리카는 보도했다. 매체는 "이 가운데는 영리를 위해 지위를 악용하거나 범죄 활동에 가담한 사람도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에도 이런 사례가 있다. 지난 10월 SBS는 주한 엘살바도르 명예영사, 주한 헝가리 명예영사가 각각 사문서위조 혐의와 세금 포탈 혐의로 유죄를 받았음에도 명예영사직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임명한 명예영사가 현지 사회에서 물의를 빚으면 즉각 해임했다. 2012년 11월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불륜 스캔들 당시 애틀랜타 총영사관은 이에 연루된 여성 질 켈리에게 명예영사에서 해임한다는 통보를 즉각 보내고 미국 국무부에도 이 사실을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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