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와 전염병7] 스페인감기, 서부전선 이상 있다
[인류와 전염병7] 스페인감기, 서부전선 이상 있다
  • 데마치 유즈르(出町譲(데마치 유즈르, 경제저널리스트・작가)
  • 승인 2020.0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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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In-depth 2020/4/20

【요약】

・스페인감기는 서부전선으로 내보낸 미군병사들이 계기였다

・스페인감기의 대유행은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앞당겼다

・전염병은 인간사회가 대립하고 있을 때에 유행한 역사가 있다

나의 뇌리에 유명한 영화의 한 장면 떠나지 않고 있다. 그 곳은 남자학교로 보이는 독일의 고등학교다.

“제군들은 독일의 철의 사나이들이다.”

“적을 격멸하고자 하는 위대한 영웅들이 되는 것이다.”

“조국에 바치는 죽음은 감미로운 것이다.”

“대의명분 아래서는 개인적인 야심을 버려야 한다.”

교사가 생도들 앞에서 역설했다. 전쟁을 고무시키는 연설이다. 그 가운데 영화는 생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비추었다. 괴로운 표정을 한 젊은이들도 있다. 교사는 마지막으로 지원병으로 나서도록 촉구하자 젊은이들이 차례차례 호응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여기에 머무를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은 독일군 병사가 되었다. 교사가 젊은이들을 부추겼다. 그것이 전쟁의 현실인 것이다. 나는 광기의 사회 뿌리를 보는 듯 했다. 젊은이들을 내보낸 데가 프랑스 북부의 서부전선. 독일군이 영국·프랑스·미국 연합군과 대치하고 있던 전쟁터였다. 이 영화는 제1차 세계대전 전쟁터의 젊은이들 모습을 그린 ‘서부전선 이상 없다’다.

서부전선은 3년 반이나 교착상태가 계속되었다. 참호(塹壕)내에서 병사들이 상대를 습격했다.적병에 대해 총탄을 발사했다. 총을 지녔으면서도 양측의 병사들은 땅위에서 뒤얽혀 싸우는 상태가 되었다. ‘밀폐’는 아닌데도 그야말로 ‘밀집’과 ‘밀접’이였다. 그런 장소가 전쟁터였다.

이런 장렬한 싸움이 되풀이 되는 가운데 어떤 이변이 일어났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적(敵)’의 내습이였다. 그것이 스페인감기였다.

환경저널리스트인 石弘之씨의 『감염의 세계사』(角川文庫)에 의하면 양군 모두 병사들의 절반 이상이 스페인감기에 감염되었다. 독일군에서는 이 병으로 20만명이나 되는 병사들을 잃었다. 英佛美 연합군도 그러했다.

미군에서는 인플루엔자로 죽은 병사들이 5만7천명에 이르렀다. 이것은 전사자 5만3천500명을 웃도는 숫자다. 영국군은 200만명의 대군을 내보냈는데 6월1일부터 8월1일까지 사이에 120만 명이 감염되었다.

어째서 유럽 전쟁터에 스페인감기가 출현한 것인가? 애초의 계기가 미군병사였다는 견해가 유력했다. 유럽전선으로 들여보낸 미군병사들 가운데에 감염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미군은 제1차 세계대전 말기 병사들을 대량으로 서부전선으로 내보내 종전까지 2차례 총공격을 감행했다. 거기에 수많은 감염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연재에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스페인감기의 제1 파가 9월에 미국에 상륙했다. 최초로 감염이 확대된 곳은 미군기지였. 。

▲사진 제1차 세계대전・서부전선 모습  출처:IMPERIAL WAR MUSEUM
▲사진 제1차 세계대전・서부전선 모습  출처:IMPERIAL WAR MUSEUM

감염은 프랑스군, 영국군, 더구나 적이었던 독일군으로도 파급되였다. 바이러스는 연합군과 독일군의 싸움에는 관계하지 않았다. 쌍방에 사정없이 덤벼들었다. 피곤에 지친 병사들의 몸은 안성맞춤의 ‘표적’이 되었다. 참호를 파놓고 싸우는 지상전인 만큼 감염이 쉬웠다.

스페인감기가 덮친 전쟁터는 비참한 상황이었다. 『사상최악의 인플루엔자』(P203)에는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500명 정도가 되는 미군부대에서는 이동 중에 인플루엔자 때문에 차례차례 대원을 잃어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에는 불과 278명만이 남았다. 전선 병원에는 부상병들에 더하여 스페인감기로 보이는 병사들이 6만8천760명이나 입원하고 있었다.

스페인감기는 감염되는 것만으로 취급이 아주 곤란했다. 의료관계자와 구급차 운전수가 부상병과 구별되도록 지시는 받았지만 그것은 무리였다. 구급차의 뒤쪽 짐받이에 부상한 병사를 태울 때 스페인감기인가 어떤가 물어볼 여유가 없을 것은 명백하다.

1918년 외과의로서 이동병원에 근무했던 의사의 말이 남아있다.

“병실이라는 병실은 기관총에 당한 부상병으로 꽉차 있었다. 비, 진흙, 인플루엔자, 그리고 폐렴. 몇몇 병원에서는 너무 혼잡해서 작업하는 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사상최악의 인플루엔자,P209,조지 워싱턴 크라일 박사)

“모든 종류의 전염병 환자가 있고 그들은 무언가의 감염방어 처방도 받지 못하고 정어리통조림처럼 빽빽하게 병실에 처넣어졌다. 단 한 사람의 안과의사가 수백 명의 절망적인 상태의 폐렴환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同)

의료현장도 또한 전쟁터처럼 장렬했다. 모 독일군 장군은 “병사들이 모조리 인플루엔자에 의해 약해진 끝에 무기를 나를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니 전쟁할 처지가 못 되었다. 스페인감기의 대유행으로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이 빨라져 1918년 11월을 맞이했다.

여하튼 병사들의 괴로움은 아랑곳 하지 않고 국제사회의 권력구조는 변했다. 미국은 유럽 대신에 세계의 ‘맹주’가 되었다. 국제협조의 골격을 리드하는 자세를 보이면서 국제연맹 창설을 제창했다. 윌슨대통령은 의기양양해 있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해 “전쟁을 없애기 위한 전쟁”이라고 잘라 말했다.

▲사진 윌슨 대통령 출처:Flickr; The Library of Congress
▲사진 윌슨 대통령 출처:Flickr; The Library of Congress

사람과 사람의 전쟁은 일단 끝났다. 미국의 힘을 세계에 보란 듯이 드러냈다. 그러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부터가 바로 본 방송 프로였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전선으로부터 자기나라로 돌아가서 스페인감기를 각국으로 확산시켰다. 무서운 감염력으로 전 세계를 석권했던 것이다. 미국, 아시아, 게다가 일본에도 파급되었다.

스페인감기는 제1차 세계대전의 종료와 같은 타이밍에서 세계로 확대되었다. 희생자가 5천만명에나 이르렀다. 제1차 세계대전은 역사상 경험하지 못했을 정도의 수많은 병사들이 배를 이용해서 대이동했다. 바이러스로서는 최고의 ‘탈 것’을 획득한 셈이다. 인류의 첫 세계전쟁이 제1차 대전이였다. 전쟁의 글로벌화였다.

스페인감기를 둘러싸고 국제정세를 언급했는데 지금 우리는 꼭 빼닮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 코로나 전까지는 세계가 글로벌화를 누리고 있었다. 일본정부는 방일 외국인 수를 2020년, 즉 금년까지 4천만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었다.

중국만이 아니고 동남아시아 중산층의 대두로 일본으로의 여행객이 급증하고 있었다. 방일외국인의 증가야말로 일본경제 부활의 으뜸패였다. 그 야망이 신형코로나로 어이없이 박살이 났다.

또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도 터졌다. 제1차 대전처럼 실탄은 난무하지 않지만 초대국들이 티격태격하는 상태가 계속되는 것은 이상하다. 불가사의한 것은 전염병은 인간사회가 대립하고 있을 때 유행했다는 사실이다. 역사를 근거로 하자면 우리들이 고립화시킨다든가 대립을 부추기거나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역사상 아주 드물게 보는 광폭한 바이러스에 세계가 단결해서 대항해야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톱 사진:스페인감기 환자로 넘치고 있는 병원 출처:PLOS

gw2021@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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