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윤석열 정부 들어 장관 해임안 상정 및 의결은 박진 외교부 장관에 이어 두 번째다. 대통령실은 사실상 거부 의사를 내비쳤고,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이 장관을 파면하지 않으면 이 장관 탄핵소추까지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예산안 통과를 앞두고 정국은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여야는 지난달 말 어렵게 ‘선(先)예산안 통과, 후(後)국정조사’에 합의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예산안도 처리하기 전에 해임안 카드를 밀어붙여 국회 의석 절대다수의 힘으로 통과시켰다. 다수의 횡포이자 국회 운영에 필수적인 상호 신뢰와 존중의 정신을 짓밟은 것이다.

여야는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에 합의한 상태다. 이상민 장관 해임은 그 조사 결과가 나온 뒤에 추진해도 늦지 않다. 조사 결과 이상민 장관에게 비극을 막지 못한 책임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 야당이 요구하기 전에 윤 대통령이 먼저 이 장관의 사표를 받을 것이다. 정치적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서둘러, 여야 합의까지 무시하며 해임건의안을 통과시켜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대로 가면 국정조사 자체가 공전할 수밖에 없다. 사고의 진짜 원인을 밝히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민주당은 혹시 국정조사 결과 사고의 진짜 원인이 다른 데 있는 것으로 밝혀질 것이 두려운 것 아닌가. 이번 해임안 통과의 진짜 목적이 국정조사 무산에 있는 것 아닌지 묻고 싶다.

이상민 장관은 민주당과 좌파 진영에게 미운 털이 박힌 상태이다. 정국 현안과 관련해 야당에게 고분고분하지 않고 원칙적인 대응을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경찰국 신설과 관련한 그의 강경 자세는 좌파들에게 공포로 다가왔을 것이다. 총경 항명 사태를 주도한 류삼영이 경찰국 신설을 이태원 사태의 원인으로 꼽은 것은 시사하는 바 많다.

민주당과 좌파 진영은 화물연대 파업의 좌절로 받은 타격을 이태원 참사의 정쟁화로 만회하려고 한다. 그를 위해 여러 이슈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도발해올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흔들리지 말고 원칙을 지켜야 한다. 특히 선제공격으로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중요하다. 화물연대나 민노총과 타협하지 말고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최상의 공격이 최상의 방어라는 말은 여기서도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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