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와 전염병 8] 스페인감기, 일본에서는 최초에 ‘스모감기(相撲風邪)’로 불렸다.
[인류와 전염병 8] 스페인감기, 일본에서는 최초에 ‘스모감기(相撲風邪)’로 불렸다.
  • 데마치 유즈르(出町譲), 경제저널리스트・작가
  • 승인 20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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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In-depth 2020/4/20

【요약】

・스페인감기의 발생원(源)이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설이 있음

・신형코로나의 최악을 상정한 추계(推計) 사망자수가 스페인감기 때와 같은 수준

・치사율도 흡사하다. 심대한 피해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지금 최대한 경계가 필요하다

1차대전 무렵 스페인감기가 전 세계에 맹위를 떨쳤는데 일본에서는 어떠했던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전례가 없을 정도의 피해가 나왔다. 감염자수가 2천300만 명을 넘었고 사망자수는 38만6천명에 이르렀다.

빼닮은 숫자가 있다. 이번의 신형코로나에서 추계(推計)된 최악의 사망자수다. 후생노동성의 클러스터대책반이 대책을 강구했던 경우의 추계였다. 거기에 의하면 최악으로 41만 명의 사망자가 나온다. 어째서일까 우연히도 똑같을 만큼의 숫자였다.

▲사진 신형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 클러스터대책 전문가 기자 의견교환회」(2020년4월15일)。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경우、최악 41만 명의 사망자가 나온다는 추계를 공표했다。출처:신형코로나바이러스 클러스터 대책전문가 트위터
▲사진 신형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 클러스터대책 전문가 기자 의견교환회」(2020년4월15일)。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경우、최악 41만 명의 사망자가 나온다는 추계를 공표했다。출처:신형코로나바이러스 클러스터 대책전문가 트위터

신형코로나는 최악으로 스페인감기와 같은 시나리오를 고려하게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 진다. 그러면 스페인감기가 일본에는 언제 어떻게 일어났던가? 최초는 1918년 4월이었다.

▲사진) 환자의 사체에서 발견된 게놈에 의하여 복원된 스페인감기 바이러스출처:CDC (Public domain)
▲사진) 환자의 사체에서 발견된 게놈에 의하여 복원된 스페인감기 바이러스출처:CDC (Public domain)

3명의 일본씨름꾼(리키시[力士])이 대만을 순회 흥행 할 때에 수수께끼의 감기에 감염되어 사망했었다. 대만은 당시 일본의 통치아래에 있어서 씨름대회의 순회처였다. 다른 씨름꾼 20명 이상도 동일한 병으로 쓰러졌다. 전에 없던 이상한 사태였다.

그 후 수수께끼의 감기는 (일본)본토로 돌아온 씨름꾼들로부터 확산되었다. 더욱이 군대 등에서도 환자가 늘어났다. ‘스모감기(相撲風邪)’로 불리면서 화제가 되었다. 그것이 스페인감기였다.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이전에 전해진 바와 같이 스페인감기의 발생원(源)은 미국의 캔자스주의 군기지라는 것이 정설로 되어있다. 그것이 1918년 3월이었다. 그렇다면 불과 1개월 사이에 대만까지 감염이 확대되어 일본 씨름꾼에게 옮겼다는 것인가? 비행기가 보급되어 있지 않던 시대인데 그것은 지나치게 빨랐다.

▲사진 Volunteer nurses from The American red cross during flu epidemic (1918).출처:public domain CC0 image/ Original image from Oakland Public Library
▲사진 Volunteer nurses from The American red cross during flu epidemic (1918).출처:public domain CC0 image/ Original image from Oakland Public Library

그래서 전문가들 간에는 다른 가능성을 지적했다. 중국기원설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대륙횡단철도가 건설 중이어서 많은 중국인노동자들이 미국으로 들어왔다. 그 가운데에 감염자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

또 『전염병(感染症) 세계사』(石弘之)에 의하면 미국의 캔자스주에서 발생하기 이전에 스페인감기로 보이는 호흡기 질병이 중국 국내에서 돌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진행 중이던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국·프랑스군이 9만6천명의 중국인노동자들을 서부전선에서 활용했다는 사실(史實)도 있다고 한다.

또 중국인가하는 생각을 하면 신물이 나겠지만 여하튼 ‘스모감기(일본씨름감기)’는 4월에 발생하여 7월 하순에는 수습되었다. 그렇게 화제가 되는 일도 없이 비교적 단 기간이었다. 그것은 전에 언급했던 스페인감기의 ‘전조(前兆)’였다.

그런데 9월말부터 10월 상순에 걸쳐 스페인감기가 일본에 본격적으로 상륙했다. 그 ‘제1파’가 어금니를 드러냈다. 이번에는 군대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고 학교와 기업으로 확대되어 나갔다.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일본 국내의 철도망이 이미 정비되어 있어서 단기간에 전국각지로 퍼졌다.

당시의 일본 상황에 대하여 상세하게 분석한 것이 게이오(慶応)대학 명예교수인 하야미 아키라(速水 融, 1929- 2019)씨다. 하야미(速水)씨가 집필한 『일본을 덮친 스페인・인플루엔자 』(藤原서점)는 전국의 지방신문 보도를 인용하여 스페인감기의 실태를 묘사했다.

시가현(滋賀県)의 소학교에서는 보병부대를 시찰한 후 아동 반수이상이 감염되어 사망자도 속출했다. 소학교와 중학교가 일제히 휴교로 들어갔다. 기업도 결근자가 급증하여 사회 전체가 기능부전에 빠졌다. 화장터도 큰 혼란이 일어났다. 오사카시에서는、사체를 처리할 수가 없게 되어 오사카역에는 관(棺)을 실은 열차가 대폭으로 늘어났다. 카가와현(香川県) 마루가메시(丸亀市)에서는 화장이 따르질 못해 토장(土葬)으로 바꾸었다.

덧붙이면 하야미(速水)씨가 일본국내에서 스페인감기 사망자수에 대해 독자적으로 계산했다. 거기에 의하면 사망자수가 45만 명으로 정부발표의 38만 명을 웃돌았다. 관동대지진의 5배에 가까운 희생자가 나오게 되었다.

스페인감기는 증상이 나타나면 40도에 가까운 고열이 나고 며칠간 호흡곤란이 일어나 사망하는 케이스가 많았다. 특징은 15세부터 35세의 건강한 젊은이들의 감염이 많았다는 것이다. 보통의 인플루엔자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였다.

▲사진) 「치료가 빠르면 바로 치유된다」 내무성의 예방선전 포스타 출처:20세기 2001대사건
▲사진) 「치료가 빠르면 바로 치유된다」 내무성의 예방선전 포스타 출처:20세기 2001대사건

이 전염병의 맹위에 사람들이 손을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사람이 붐비는 데에 나가지 말라기도 하고 손 씻기를 권장할 정도였다. 공공장소에서의 마스크 착용도 장려했다. 집에 액막이 팻말을 붙이는 사람도 있었다.

1918년 가을에 발생한 스페인감기는 해를 넘겼다. 1919년 2월의 아사히(朝日)신문은 ‘입원 모두 사절, 의사도 간호부도 모두 쓰러졌다’는 제목으로 전했다. 지금과 빼닮은 의료붕괴의 위기였다.

그러나 그 해 봄부터는 조용히 가라앉았다. 기온이 상승했기 때문일까.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위기는 갔다’는 낙관론이 떠올랐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그 해가 저물 때에 다시 크게 날뛰었다. 그것이 스페인감기의 ‘제2파’였다. 이번에는 독성이 강해져 사망률이 높았다. 당시 상황을 <東京日日新聞>은 이렇게 전했다.

“무서운 유행성 감기가 또다시 전국에 만연되어 최성기로 들어가 사망자가 속출하는 공포시대가 온 것 같다. 기침 한 번이라도 나오는 사람은 외출하지 말라. 그런 사람 때문에 많은 감염자들이 나올지 모른다”(1920년1월11일자)

스페인감기는 수습되었다고 생각하면 다시 어금니를 드러냈다. 공포의 전염병이었다. 일본에서도 전에 없던 수의 희생자를 냈다. 그러나 오래 동안 역사상 잊혀져온 질병이었다.

그 이유는 일본을 둘러싼 시대적 환경에 있었다. 당시는 다이쇼(大正)중기였다. 大正데모크라시도 한창이었다. 공업생산고가 농업생산고를 웃돌았다. 더욱이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이 되었다. 신변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던 시기인 만큼 스페인감기가 경시되었다고 한다.

더구나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치사율이다. 2%정도였다. 페스트나 콜레라 등과 비교하면 훨씬 낮다. 대단한 전염병이 아니라는 시각이 뿌리 깊었다.

하지만 치사율이 낮다고 해도 낙관해서는 안 된다. 스페인감기의 공포는 그 감염력에 있었다. 치사율이 낮아도 감염자수의 증가에 제동이 걸리지 않으면 희생자가 계속 늘어나게 된다. 나는 이러한 역사를 바탕으로 재삼 신형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을 통감했다. 신형코로나의 치사율이 나라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하면 2-3%정도였다. 스페인감기와 다르지 않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감염이 확대되면 희생자 그 자체가 증가할 수 있다. 사람에서 옮아가지 않도록 최대의 경계가 필요하다. 스페인감기처럼 심대한 피해가 나올까 어떨까? 우리는 지금 최대한의 경계가 필요하게 되었다.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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