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과 분열의 정권에서 세상 떠난 백선엽과 박원순
갈등과 분열의 정권에서 세상 떠난 백선엽과 박원순
  • 장자방 논설위원
  • 승인 2020.07.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백선엽 장군. 국방부 페이스북 공식페이지 제공
▲ 백선엽 장군. 국방부 페이스북 공식페이지 제공

1950년 6월 25일, 북한 괴뢰군의 기습 남침으로 인해 백척간두에 섰던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은 누가 뭐라고 해도 백선엽 장군이다, 백선엽 장군이 나라를 구한 데 대한 보은을 받아서인지 천수를 누리다 하늘의 부름을 받아 저세상으로 떠났다.

6.25 전쟁, 개전초기 국군은 무방비로 밀려 낙동강 인근까지 후퇴했다, 백선엽 장군이 이끈 제1사단은 북한군의 8월 대공세에 맞서 1950년 9월 1일부터 18일 동안 경북 칠곡군 가산면 일대에서 대구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여 북한군 3개 사단을 궤멸시켰다, 이 전투에서 북한군 2만 4천여 명과 국군 1만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백선엽 장군의 휘하 부하도 3400여 명이나 희생되었다.

이 전투가 6·25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다부동 전투였다, 이 전투 승리로 인해 낙동강 방어선이 지켜졌고, 인천상륙작전을 전개할 수 있었으며, 북진을 계속하여 평양에 입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백선엽 장군은 6,25 전쟁 70주년을 맞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그 당시 장병들은 계속된 주야 격전으로 지친 데다 보급이 끊겨 이틀째 물 한 모금 못 마셨다. 그때 내가 후퇴해 오는 병사들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곤 병사들을 땅바닥에 앉히고 ‘내가 선두에 서겠다. 내가 물러서면 너희들이 나를 쏴라"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그 당시를 술회했다, 그러자 병사들은 전선을 향했고 전력과 수적 열세에도 결국 승리를 이끌어냈다,

만약 이 전투에서 국군이 승리하지 못했다면 우리나라의 운명은 크게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세간에서는 백선엽 장군을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과 오버 랩 시키기도 한다, 백선엽 장군이 세상을 떠나자 주한미군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애도 성명을 내고 주한미군을 대표해 백 장군 가족과 친구에게 진심 어린 애도와 위로를 표했다.

◇주한 미국대사도 애도하는데 청와대 논평 한 줄 없어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도 미국 정부를 대신하여 백선엽 장군의 별세에 대해 애도의 뜻을 밝혔다. 하기야 영웅 칭호를 미국이 먼저 붙여주었을 정도로 미군에게 있어 백선엽 장군은 신화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백척간두에 선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전쟁의 영웅이 별세했는데도 미국과 달리 청와대와 민주당은 한 줄의 논평조차 내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체면치레용 조화만 보냈고, 이해찬 대표, 정세균 국무총리, 이낙연 전 총리, 노영민 비서실장 등은 비등하는 여론과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마지못해 뒤늦게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는 6.25 전쟁 때 태어나지도 않아 전쟁의 원인과 실체를 알지도 못하면서 현충원에 잠들어 있는 호국영령 중에 친일파를 가려내어 파묘를 하겠다며 ’파묘법‘를 발의한 이들도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김대중의 아들 김홍걸과 이수진 등과 같은 의원들이다, 이들은 백선엽 장군의 생애 100년 동안 20대 초반의 불과 몇 년간, 만주 군관학교를 나와 간도특설대에 배치되었다는 것을 꼬투리 잡아 검증도 없이 친일 운운하고 있는 자들이다,

정권 세력 중에 이런 얼치기들이 설치고 있으니 응당 동작동 현충원에 가야 할 장군의 영령이 대전현충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참으로 비겁하고 치졸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유가족들이 먼저 동의했다고 했지만, 정부의 대전현충원 안장 결정은 전쟁 영웅을 극진히 예우하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절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어쩌면 불필요한 논란과 갈등을 피하기 위한 유가족의 대승적 차원의 결정이었을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그러자 정부의 홀대에 맞서 애국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섰다, 애국시민들은 분향소를 마련하는 등, 영웅이 가는 마지막 길이 외롭지 않도록 동행에 나서자 일반 국민들도 줄지어 분향소를 찾아 애도를 하고 있다.

◇국가가 안 만든 백선엽 분향소, 일반 국민이 만들어

광화문광장 백선엽 장군 분향소

 

반면 박원순 서울시장은 하늘이 내려준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이름으로 운명을 역천(逆天)했다, 그만큼 자신의 일탈 행위가 떳떳하지 못했기에 선택한 수단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시민의 세금으로 서울특별시장(葬)으로 결정했고 서울시청 광장에 별도의 분향소까지 설치했다, 박원순이 근무 중 순직하였거나 불의 의 사고로 인해 생을 마감했다면 얼마든지 서울특별시장(葬)으로 할 수 있을 것이고 시민들도 용인해 줄 것이다, 그러나 박원순의 죽음은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정권 실세들은 앞다투어 조문하면서 마치 영웅이 죽은 것처럼 각색하고 미화하고 있다. 민주당은 전직 여비서가 당한 불미스러운 일을 기억하라는 의미인지 ’님의 뜻 기억하겠습니다“라는 현수막까지 내걸어 논란과 갈등을 유발했다,

그러자 강성 지지자들은 조국 사태와 윤미향 사태에서 목격한 바와 마찬가지로 죽음을 촉발한 원인과 배경을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소한 전직 여비서에게 돌리며 신상털기에 광분하고 있다. 이러니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온 ’박원순씨 장례를 5일장, 서울특별시장으로 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글에 50만여 명의 국민이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안철수마저도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하면서 조문도 안 한다고 했다, 안철수의 이 결정은 그가 정치에 입문한 이래 처음으로 보여주는 가장 시의적절한 판단으로 보이기도 한다,

백선엽 장군과 박원순 시장은 하루걸러 세상을 떠났다. 분명한 것은 나라를 구한 전쟁 영웅의 죽음과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어 자살을 선택한 사람의 죽음은 너무나도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런데도 정권 실세들은 박원순의 죽음은 거룩하게 묘사하고 구국의 영웅을 홀대하고 있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정권 차원의 죄업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jayooilbo@jayoo.co.kr

더 자유일보 일시 후원

“이 기사가 마음에 들면 후원해주세요”

  • ※ 자유결제는 최대 49만원까지 가능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