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와 전염병9] 스페인감기는 제2차대전 원인
[인류와 전염병9] 스페인감기는 제2차대전 원인
  • 데마치 유즈르(出町譲, 경제저널리스트・작가)
  • 승인 2020.0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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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In-depth 2020/4/22

 

파리강화회의。사진 左로부터 데이비드 로이드조지(영국),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오를란도(이탈리아), 조르주 클레망소(프랑스), 우드로 윌슨(미국)
출처)퍼블릭 도메인

 

【요약】

・1차대전 파리강화회의 중 미국 윌슨대통령이 스페인감기에 감염

・미국이 없는 상태서 회의는 독일에 거액 배상을 요구하기로 합의

・스페인감기가 사회역사를 컨트롤 제2차 대전을 유발했다

스페인감기는 제1차 대전의 종결을 앞당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원인이 되었다. 이번에는 그 배경을 그려보려고 한다.

1차대전 전승국들이 상의하는 파리강화회의에서 거액의 배상금을 독일에 부과하게 되었다. 그래서 독일국내에서 불만이 높아져 히틀러가 나타났다. 이것은 많은 역사가들이 일치하는 견해다. 그 역사에 실은 스페인감기가 깊이 관여되어 있다.

한 중요인물이 회의가 한창인데 감염되었던 것이다.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었다. 당시 윌슨 대통령이라고 하면 이상주의를 내걸고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제연맹 창설을 제창하고 있었다. 미국만이 아니고 유럽에서도 열광적인 지지자들을 가지고 있었던 정치가였다.

「철학자이면서 전 세계의 군주들을 통괄할 수 있는 무기를 지닌 비길 데 없는 인물」(영국의 경제학자、메이나드 케인스)이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현대로 말하면 오바마 대통령 같은 존재로 보는 사람도 있다.

사진)윌슨 대통령
출처)퍼블릭 도메인

 

윌슨대통령에게 이변이 일어난 것은 1919년 4월 3일 파리강화회의가 한창 열리고 있던 중이었다. 프랑스의 클레망소 수상과 영국의 로이드조지 수상 등 소수가 밀실회담을 하고 있었다.

『사상최악의 인플루엔자』(미스즈書房)에 의하면 이 날 오후3시 윌슨 대통령의 목소리가 갑자기 쉬었다. 오후 6시가 되자 윌슨 대통령이 기침을 하기 시작하여 숨도 겨우 쉬는 모습이었다. 이윽고 거의 걸을 수가 없게 되었고 체온이 39.4도나 되었다. 심한 복통을 동반한 설사도 닥쳤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였기 때문에 대통령과 동행하고 있던 의사는 독극물에 의한 것으로 생각했다. 윌슨대통령은 그날 밤사이 병세가 매우 무거운 상태가 되었다. 생사를 헤매면서 4일을 절반을 침대에서 보냈다. 의사의 진단결과는 스페인감기였다.

윌슨대통령은 간신히 살아 돌아왔다. 그러나 스페인감기의 감염은 회의의 결론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때까지의 격렬했던 대립구도가 일변했다.

대립구도란 무엇인가? 윌슨대통령은 당초 독일에 배상금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이상주의 정치가로서는 독일에 부담을 너무 주게 되면 세계 평화질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었다.

한편 프랑스의 클레망소 수상、영국의 로이드조지 수상은 함께 독일에 강경한 자세였다. 특히 클레망소 수상은 준엄했다. 독일과 국경을 접하여 큰 피해를 입은 만큼 이 때 완전히 때려눕히자. 그런 생각이었다. 독일에 거액의 배상을 요구했다. 더욱이 군사력도 제한할 것을 주장했다. 두번 다시 독일이 군사대국이 되지 못하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사진)클레망소 수상
출처) Archives fédérales allemandes

 

당시는 파리강화회의 출석이라고 해도 미국에서 파리로 가는 것은 선박이었다. 윌슨 대통령은 3월 14일 파리에 도착하여 연달아 클레망소 수상, 로이드조지 수상 등과 회담을 했다.

그러나 쌍방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었다. 논란만이 아니고 서로 매도하게 되었다. 클레망소 수상은 윌슨대통령이 하는 것을 ‘독일의 앞잡이’라고 부르면서 방을 박차고 나갈 정도였다.

윌슨대통령은 파리강화회의를 중단하고 귀국할 자세도 보였다. 그런 가운데 발생한 것이 앞서 말한 4월 3일 회의의 이변이었다. 즉 윌슨 대통령의 감염이었다. 연일 회의 때문에 피로해 있었을지도 모른다. 또 몸 컨디션이 좋지 못했던 클레망소 수상으로부터 옮았다는 견해도 있다.

그 주에는 파리에서 한 주일 동안 52명이 인플루엔자와 폐렴으로 죽었다. 예년을 대폭으로 웃돌았다. 스페인감기가 유행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그 후 윌슨 대통령은 회의에 불참했다.

결국 프랑스・영국 의견으로 정해졌다. 윌슨 대통령은 병상에서 완전히 기력을 잃고 받아들인 것이다. 그는 4월 8일 오후 회의에 다시 참석했지만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다.

“그때까지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지금 같은 대통령을 과거에 본적이 없었다. 침대에 누워있을 때조차 그는 괴상한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윌슨의 비서관, 길버트 클로즈 『사상최악의 인플루엔자』 P243). 윌슨 대통령의 좌측 눈과 얼굴 좌측 절반이 실룩실룩 경련을 일으키기도 하고 아래 눈꺼풀이 처진 채였다는 증언도 있다.

스페인감기에 걸려 스스로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에 의하면 증상이 회복되어도 뇌에 피해를 주어 1∼2개월 동안 우울한 상태가 지속되고 건망증이나 결단력 결여 같은 상태가 일어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사진)워싱턴의 스페인감기 치료 모습
출처)Photo by Harris & Ewing via Library of Congress

 

그리고 6월을 맞이했다. 연합국과 독일 간에 강화조약인 베르사유조약이 맺어졌다. 독일에 거액의 배상을 요구하기로 되었다. 그것은 독일에 대한 프랑스의 보복을 선명히 하는 내용이었다.

윌슨 대통령은 그만큼 반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깨끗이 조약에 조인했다. 자신의 신조를 굽힌 모양새였다. 장기에 걸친 파리 체재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는 ‘조지 워싱턴호’를 타고 귀국했다. 이상주의가 완전히 패배한 것이었다. 어느새 정치가로서 넋이 나간 것일까? 스페인감기 바이러스가 세계최강 정치가 몸으로 들어가서 내부에서 철저하게 파괴한 것이다.

그 후 역사는 주지하는 그대로다. 독일에 거액의 배상을 부과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독일에서는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져 불만이 높아졌다. 그것이 결국은 히틀러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스페인감기 바이러스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토양을 만든 것이다.

여기까지 조사하면서 나는 깜짝 놀랐다. 스페인감기 바이러스는 감염시켜 직접 사람들을 살해할 뿐만 아니라 간접적인 ‘살인귀’이기도 했다. 인간사회의 역사를 컨트롤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유발했다.

무서운 바이러스다. 100년만의 팬더믹이라고도 말하는 이번의 신형코로나를 스페인감기처럼 폭주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먼 훗날까지 화근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인류는 지혜를 모아서 모아서 이 ‘살인귀’ 바이러스와 싸워나가야만 한다.

<계속>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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