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영화시장은 대체로 블럭버스터들의 한판승이다. 하지만 올해는 좀 싱겁다, 언론뿐 아니라 영화도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다. 최강 블럭버스터 ‘아바타:물의길’이 한쪽 무게중심을 내려잡고 있다. 대적할 영화가 없다. 이럴 때는 맞불작전보다 틈새작전이 유효하다. 쏠쏠하게 입소문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작은 영화들. 크고 울창한 소나무 저 아래 있는 듯 없는 듯 자라난 송이버섯은 그러나 그 향이 짙고 강해 멀리서도 찾아갈 수 있다.

아바타:물의 길: 기대는 만랩, 남은 건 관객 평가

‘아바타’가 제이크와 네이티리의 사랑과 평화였다면 13년 만에 제작된 ‘아바타:물의 길’은 그들이 꾸민 가족 지키기다. 모험도 위협도 이번엔 물속에서 벌어진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또다른 대히트작 ‘타이타닉’에서 바다는 온갖 부서진 것들을 온전히 품었다. 이번 바다는 어떤 모습으로 꾸며질까. 전 세계 최초 한국 개봉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개봉 전 예매율이 이미 상당하다. 상영시간이 3시간12분이므로 특히 ‘몸의 준비’를 하고 입장해야 한다. 아이맥스로 보면 가장 좋겠지만 이미 예매가 가득차 있을 터. 적어도 3D로는 보길 권한다. ‘아바타:물의 길’은 제80회 골든 글로브상 작품상·감독상 부문 후보에 올랐다. 전작 ‘아바타’가 제6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을 수상한 지 꼭 13년 만이다.

페르시아 수업: 유대인 수용소, 엉터리 말로 살아남기

1942년 유대인 질은 포로 수송 차량에서 만난 남자에게 갖고 있던 샌드위치를 주는 대신 페르시아어 책을 얻는다. 이들이 끌려간 곳은 나치의 집단 총살 현장. 질은 자신이 유대인이 아니라 페르시아인이라는 거짓말로 목숨을 건진다. 그 일을 계기로, 독일군 장교 코흐에게 페르시아어를 가르치게 된다. 질은 가짜 페르시아어를 만들어내고 이를 코흐에게 가르치기 시작한다. 생존을 위한 질의 절박함이 긴장과 웃음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 중 가짜 페르시아어는 실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프랑스인 희생자들 이름을 기반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독일의 전설적인 작가 볼프강 콜하세의 실화 기반 단편 소설 ‘언어의 발명’(Erfindung Einer Sprache)이 원작이다.

메모리아: 기억은, 존재의 소리를 낸다

새벽, ‘쿵’하는 소리에 제시카는 잠에서 깬다. 콘크리트가 빠른 속도로 금속에 부딪히는 것 같은 소리. 그녀에게만 들리는 이 소리에 잠을 못 이룬다. 병원에서도 병명을 모른다. 소리의 근원을 찾기 위해 떠나는 제시카. 바람소리 가득한 숲속에서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에르난을 만난다. 인간의 기억에 대한 고민을 그린 영화로 환청, 불안과 긴장을 고조시키는 사운드들이 귓가를 맴돈다. 감독은 분명 우리와 함께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공존자들에 대해 얘기한다. 태국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 틸다 스윈튼 주연으로 제74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대부분 관객에게는 낯설지만, 위라세타쿤 감독은 ‘정오의 낯선 물체’(2000) ‘열대병’(2004) 등으로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주목받고 있다.

코르사주: 머리에 이고, 허리에 감은 속박

오스트리아 초대 황후 엘리자베트(1837-1898)는 당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왕족이었다. 키 173cm, 몸무게 46~49kg, 시씨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시씨는 평생 다이어트를 했으며 하루 1시간 이상 코르사주(몸매 보정을 위해 허리를 조이는 옷)를 입었다. 영화는 시씨의 삶을 담는다. 1㎏가 넘는 머리카락을 이고 코르사주에 갇혀 살던 시씨는 결국 스스로 머리를 자르고 황실을 걸어나간다. 실제로 시씨는 1898년 9월 암살당했다. 스위스 여행 중 한 무정부주의자가 가는 송곳으로 시씨 가슴을 깊이 찌르고 도망쳤다. 시씨는 찔리고 나서도 한동안 그 사실을 몰랐다. 검은 옷을 입었고 코르사주로 조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코르사주를 풀었을 때는 이미 과다출혈. 마지막 남긴 말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였다고 한다.

이태석: 아름다운 사람, 다시 만나다

이태석(1962-2010) 신부를 처음 본 것은 KBS1‘인간극장’을 통해서였다. 그는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의술을 펼치던 의사 겸 신부였다. 의료 행낭을 꾸려 직접 차를 몰고 외지 마을 아픈 사람들을 찾아 다녔다. 아이들에게는 학용품을 나눠주고 브라스밴드를 조직해 함께 연주하던 친구였다. 프로그램에서 신부는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말하며 치료차 잠시 귀국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로부터 얼마후 그의 선종 소식을 들었다. 낫기를 바랐는데… 마음 같은 사람들이 많았는지 그의 생전 모습이 ‘울지마 톤즈’라는 다큐멘터리에 담겼다. 이태석 신부 선종 후 10년. 그곳 사람들은 아직도 그를 기억하고 있을까. 다큐멘터리 ‘이태석’은 기억하는 사람들을 통해 듣는 그의 마지막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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