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남공작 70년사] 5.16 군사혁명과 북한의 정세인식

민주당 정권과 남북연방제 담판 준비하던 중 5.16 혁명 소식
미국이 통일운동 꺾으려 소장파 군인 사주했다고 해석하기도
자체 혁명 파악 뒤 주도세력과 정치 협상 추진하려 성향 분석
박대통령 출신지 경북 선산 출신 황태성 등 간첩 후보 선발해

1961년 5.16군사혁명 한달여 뒤인 6월 22일 혁명 주역인 박정희 소장이 혁명에 참여한 공수부대의 철수식을 지켜보고 있다.
1961년 5.16군사혁명 한달여 뒤인 6월 22일 혁명 주역인 박정희 소장이 혁명에 참여한 공수부대의 철수식을 지켜보고 있다.

5.16 군사혁명을 미리 예견하지 못했던 중앙당 대남공작부서 내부에서는 물론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체 부서가 한국에서 일어난 군사혁명 때문에 혼란에 빠졌다. 5.16 직전까지도 북한은 4.19를 겪으면서 한국 민주화운동의 주도세력이 청년학생들이며 이들의 투쟁방향이 정권타도를 넘어 통일운동으로 선회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거기에 초점을 맞춰 대대적인 평화공세를 취할 준비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남북연방제를 실현하기 위해 당시 한국의 여당이었던 민주당 정권과의 담판을 준비하고 있었다. 또 남북 정당ᆞ사회단체 간의 협상을 위해 파견할 대표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1년 전인 1960년 8.15 기념연설에서 김일성이 남북교류를 제안했고 이에 기초하여 11월에는 최고인민회의 제2기 제8차 회의에서 남북교류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조국평화통일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처럼 북한은 1961년 전반기까지 평화통일 기반을 마련하려는 정치공세를 준비하고 있던 상황에서 5.16으로 하루아침에 정세가 급변했기 때문에 사전에 준비했던 평화공세가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미국의 식민지’인 한국에서 미군이 한국군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박정희 장군을 위시로 한 한국군부가 독자적으로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던 북한 대남정책 담당자들 입장에서는 상식밖의 일이 일어난 것이어서 그 어떤 판단도 쉽게 내릴 수가 없었다.

따라서 이들은 고작 4.19를 기점으로 통일운동이 거세게 일어나자 그 기세를 꺾어보려고, 통일운동에 대한 역공세를 펼치기 위해 미국이 소장파 군인들을 사주하여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 아니냐는 정도의 일반적인 해석을 내놓는 정도였다.

이러한 가운데 1961년 5월 17일에 열렸던 노동당 정치위원회 결정에 따라 5월 20일과 21일 양일간에 걸쳐 중앙당 본청사 회의실에서 5.16 군사혁명 관련 정책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중앙당 대남공작부서 책임지도원 이상 간부들과 중앙당 국제부, 내각 외교부의 중요 간부들을 비롯해 350여명이 참석한 토론회는 4.19 이후의 정세와 5.16 군사혁명 발발의 배경을 분석 평가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혁명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와 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에 원론적인 수준의 얘기만 오갔을 뿐 혁명 원인과 주도세력 등에 대한 명쾌한 분석과 평가도, 제대로 된 결론도 내릴 수 없었다. 물론 토론과정에 한국 군부의 군사혁명이 미국의 조종에 따른 것이냐, 아니면 독자적인 행동이냐를 놓고 갑론을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미국의 장악과 통제 하에 놓여 있는 ‘식민지’인 한국에서도 한국군 자체적으로 군사쿠데타가 가능하며 그것도 군부 상층부가 아닌 중하층 장교들이 주도적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성공시킬 수 있다는 점을 어느 정도 인식하는 계기가 된 것은 틀림없었다.

이에 따라 군사쿠데타의 주역들이 어떤 인물들인지, 미국과의 관계는 어떤지를 정확히 파악하여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와 관련하여 당시 한국군부에 나름대로 선이 있던 일본 조총련에 관련 정보수집 임무가 떨어졌다. 이와 함께 혁명 관련 정보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한국군부에 대한 공작을 강화하는 동시에 박정희 중심의 육사 2기와 김종필 중심의 육사 8기가 혁명 주도세력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밝혀짐에 따라 주도 인물들의 성향과 공작진행 여부를 분석 판단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5.16 주도세력에 대한 평가

북한 공작지도부에서는 무엇보다 먼저 5.16 군사혁명의 주역들인 박정희와 김종필ㆍ유원식 등의 성향을 조사하는데 착수하였다. 이를 위해 북한 내에 위 인물들과 친인척 관계에 있거나 학연, 지연 등 직간접적으로 연고가 있는 대상들을 찾아낸 다음 각 인물들에 대한 조사 및 분석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 박정희 장군이 과거 남로당 당원으로서 군 관계 조직에 몸담고 있었던 인물이며 그의 형 박상희 역시 남로당 출신으로 활동하다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유원식은 일본군장교 출신이지만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하며 전통적으로 그의 집안이 지조가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는 사실도 파악하게 되었다. 김종필과 관련해서는 북한에 들어온 김종필의 서울대 사대 동창들로부터 정보를 입수하였는데, 그가 학생운동에 관여하였고 민족지향성이 강한 편이나 남로당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지 잘 모른다는 모호한 내용이 전부였다.

이러한 가운데 일본 조총련을 통하여 미국이 군사정변을 반대했다는 내용과 함께 미국과 새로 출범한 한국 군사정권과 갈등 관계에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이와 같은 내용은 한국내에서 활동하는 간첩망(지하조직)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되었다.

이렇게 되자 북한 공작지도부는 ‘잘 하면 5.16 군사혁명 주도세력을 상대로 뭔가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고무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내용은 공작부서 책임간부들에 의해 김일성에게 보고되었다. 동 내용을 보고받은 김일성은 5.16 주도세력의 성향을 알았으니 앞으로 어떻게 공작할 것인지 대책을 세우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따라 북한 공작지도부에서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조총련에 5.16 주도세력에 대한 보다 심충적인 정보를 수집하라는 지시를 하달하는 한편 남파공작원들을 국내에 직접 침투시키거나 국내에서 활동하는 간첩들을 월북시켜 관련 정보를 파악했다.

북한 무역성 부상 황태성이 김일성의 밀사로 남파되었다가 간첩혐의로 처형된 뒤 2015년 유족들이 서울의 한 식당에서 출판기념회를 열고 있다.
북한 무역성 부상 황태성이 김일성의 밀사로 남파되었다가 간첩혐의로 처형된 뒤 2015년 유족들이 서울의 한 식당에서 출판기념회를 열고 있다.

그러나 북한 공작지도부의 생각처럼 조총련 조직을 동원하는 것은 물론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공작원을 직접 남파하거나 국내에서 활동하는 간첩들을 월북시켜 5.16 주도세력의 동향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공작방향 및 방법을 찾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따라서 한국의 방송이나 신문, 일부 조총련 조직선 및 해외 공작거점과 각국 대사관 등을 통한 일반적인 정보수집에 의존해 한국정세를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1961년 7월 정치위원회를 다시 소집하고 그때까지 수집 분석된 정보에 기초하여 향후 공작방향을 결정하였다.

북한은 5.16 주도세력들이 미국측이 반대하는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군사정권을 수립한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동시에 만약 군사혁명 주역들의 생각이 조금이라도 북한과 같은 부분이 있다면 과감하게 그들과 통일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적 협상을 추진시키는 것이 나쁠 것 없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박정희ㆍ유원식ㆍ김종필 등을 접촉하되 그들을 일반 포섭대상처럼 간첩망(지하당조직)에 무리하게 끌어들이는 포섭공작은 하지 말고 ‘연방제통일, 평화통일을 위한 비밀협상을 나설 것’을 제안하고 설득하는 것까지만 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러한 비밀임무를 띤 연락공작원(밀사) 즉 남북 최고지도자 간의 담판을 주선하는 임무를 띤 거물급 사절(간첩)을 파견하기로 하였다. 이와 같은 중요한 임무가 중앙당 대남공작부서에 부여되었고, 3호 청사에서는 서울에 파견되어 밀사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유능한 공작원 물색 작업에 들어갔다.

당시 북한 공작지도부는 서울에 파견할 공작원의 기준을 사상이 투철하고 실무적으로 잘 준비된 유능한 간부일 뿐만 아니라 담판대상인 한국의 군사정권 최고지도자와 직접적이고 깊이 있는 연고관계가 있는 인물로 정했다. 동시에 대화상대방과 대등한 입장에서 대화와 협상을 진행할 수 있고 정치적, 사회적 권위와 지위가 있어 그의 말에 무게가 실리고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한 선정기준으로 내세웠다.

이와 같은 선발기준에 따라 북한에 살고 있는 한국출신 고위급 간부들 가운데 박정희 장군의 출신지역인 경상북도 선산 출신을 중심으로 하여 공작원을 물색했다. 그 결과 황태성을 포함하여 박모, 김모, 이모 등 4명의 파견공작원 후보를 선발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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