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가 박원순, 서울시장 박원순
시민운동가 박원순, 서울시장 박원순
  •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 승인 2020.0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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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이 10억 원 상당의 아현동 집을 박원순에게 기부하고 자신은 무주택자로 살다가 생 마감

-시민운동가 박원순은 공칠과삼, 서울시장 박원순은 공삼과칠. 사람은 지적, 윤리적 한계로 변해

-자유·보수·애국을 부르짖는 자에게 없고 민주·진보·시민 부르짖는 자에게 있는 도덕적 헤게모니

박태준 포스코 창업자가
박태준 포스코 창업자

2000년대 초반 쯤 10억 원 상당의 아현동 집을 당시 아름다운 재단 이사장이었던 박원순에게 기부하고, 자신은 무주택자로 살다가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그 집은 박정희 대통령이 사 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도 서울시장 시절 박원순을 꽤 많이 배려하고 후원했습니다.

박원순이 서울시장이 되고 난 이후 행보와 최근 결말을 안다면, 박태준 회장은 정말 기막혀 할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박원순을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빨간 사람으로 규정하는데, 적어도 2011년 가을 서울시장이 되기 전까지는 한국을 대표하는 불편부당한 시민운동가였습니다.

시민운동가 박원순은 공칠과삼, 서울시장 박원순은 공삼과칠 정도로 생각합니다. 박원순이 집을 팔아 후원했던 ‘역사문제연구소’를 거악의 본산 내지 편향된 역사해석의 양산해내는 공장 정도로 규정하지만, 초창기에는 너무 은폐되거나 왜곡된 역사적 진실을 조명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 중평입니다.

2006년 5월 희망제작소를 만든 이후, 2007년 12월에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에 도움을 주기 위해 <인수위 67일이 정권 5년보다 크다>는 책을 출간했을 때, 저는 이 시도에 감탄했습니다.

2007년 12월 27일 대한상공회의소 강당에서 심포지엄을 했는데 이명박 정부(인수위) 관계자가 아무도 참석하지 않아 박원순이 인사말에서 약간 섭섭한 소회를 피력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때까지는 민주당이나 한나라당과 불가근불가원 관계였습니다.

◇이명박 정부, 희망제작소 돈줄 좨

▲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당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2009 2009년 12월 29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오마이뉴스-휴머니스트 공동 특별강좌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에서 '민주주의, 시민의 일상에서 시작하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당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2009 2009년 12월 29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오마이뉴스-휴머니스트 공동 특별강좌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에서 '민주주의, 시민의 일상에서 시작하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권우성

이명박 정부는 2008~9년에 희망제작소의 돈 줄을 심하게, 그것도 꽤 야비한 방식으로 죄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당시 130명을 넘던 실무자가 1년 만에 50명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박원순의 리더십도 꽤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박원순 상임이사가, 희망제작소 소장으로 세우고 싶어 하던 서00선배랑 자주 만나서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박원순이 ‘고난의 행군’을 하던 2009년 가을 당시 재야 시민단체들은 2010년 지방선거 때 박원순을 서울시장 후보로 밀기 위해 ‘희망과 대안’을 만들었습니다.(저는 기획팀에 좀 관여 했습니다) 그는 단호하게 거부 했습니다. 출마 요구가 빗발칠 무렵 해외로 출국한 것으로 압니다. 재야 시민단체들은 무책임하다고 꽤 심한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때 저는 박원순이 정치와 거리를 두고 시민운동에 인생을 바치려는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한 단계 더 올라갔지요. 그랬기에 2011년 초에 낸 박원순-지승호 인터뷰 책을 아들에게 선물했던 것입니다.

물론 박원순을 저 보다 잘 아는 사람들은 저를 비웃었을 것입니다. 그의 가식에 속아 넘어 갔다고… 그랬기에 박원순이 서울시장이 되고 난 뒤의 행보가 저로서는 정말 당혹스러웠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탄압과 대권병 내지 대권욕이 사람을 변화시킨 측면이 있을 것입니다. 여의도 참새들은 박원순을 권력의지가 가장 강한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평가합니다. 권력의지는 권력을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희생할 의지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그의 억눌려져 있거나 숨겨져 있던 어떤 나쁜 속성이 좋은 여건을 만나 발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이번 성추행과 위선적 행태에 분노합니다. 저 역시 분노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외에도 박원순 서울시정(가치, 정책, 사업, 인사, 홍보 등) 전반에 대해서 분노해왔습니다. 희망제작소와 참여연대 활동에 대해서는 분노 정도는 아니지만 실망해왔습니다. 시민운동가 박원순은 공칠과삼, 서울시장 박원순은 공삼과칠 정도로 생각합니다.

◇서울시장 박원순 공삼과칠

항상 느끼지만 사람은 지적, 윤리적 한계와 취약성으로 인해 변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울, 다윗, 솔로몬, 히틀러처럼 시간에 따라 사람이 달라집니다. 본질이 바뀐 것이 아니라, 숨겨져 있던 악마적 속성이 전면에 나타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평가하는 사람 역시 지적 한계가 뚜렷합니다.

그러니 박태준이 박정희가 사준 집을 박원순에 쾌척하고, 저는 박원순을 한국을 대표하는 탁월한 시민운동가로 생각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자유, 보수, 애국을 부르짖는 사람들에게는 없고 민주, 진보, 시민을 부르짖는 사람들에게는 있는 ‘도덕적 헤게모니’를 실감합니다. 전자가 강력하게 형성되든지, 후자가 무너지든지 하지 않으면 지금 지옥도를 연출하는 1987체제는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을 빨갱이라고 비난 하는 사람도, 친일부역자나 독재부역자로 비난하는 사람들도 참 철부지로 느껴집니다. 누구나 박태준처럼 어이없는 헌신을 할 수도 있고, 저처럼 오판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탁월한 수완가가 박원순처럼 몰락할 수도 있습니다.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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