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광
장석광

1962년 10월 14일, 미국의 첩보기가 쿠바에 건설 중이던 소련의 탄도 미사일(MRBM) 기지와 쿠바로 미사일 부품을 운반 중이던 소련 선박을 촬영했다. 10월 16일, 미국 정보당국은 소련 미사일의 쿠바 배치를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10월 22일, 케네디는 ‘소련이 쿠바에서 미사일 기지 공사를 강행한다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10월 28일, 흐루쇼프가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소련이 군사적으로 대치했던 13일 간은 인류 역사상 핵전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쿠바 미사일 위기(Cuban Missile Crisis)라고 불리는 이 사건이 사실 축구(soccer)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1962년 9월 어느 날, 어느 CIA 요원이 쿠바 해안을 따라 여러 개의 축구장이 갑자기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쿠바인들은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데 누굴 위해 저 축구장들이 만들어졌을까?’ 고민을 거듭하던 CIA 요원은 근처에 소련군 캠프가 있을 것으로 추론하고, 축구장 상공에 첩보기를 띄워 줄 것을 요청했다. 일촉즉발 3차 대전의 위기는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대다수 국가가 축구를 국가적 스포츠로 즐기는 것과는 달리, 쿠바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야구다. 쿠바의 모든 중등학교에서 야구를 가르치고, 야구장 다이아몬드는 쿠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자연스런 풍경이다. ‘오직 그만이 막을 수 있다!’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란 찬사를 받고 있는 ‘레프 야신’은 소련의 축구 영웅이었다. 월드컵과 더불어 전 세계 축구팬들을 열광시키는 유러피언 챔피언십의 1960년 초대 우승국도 소련이었다. 쿠바는 야구에 빠졌고, 소련은 축구에 열광했다. 냉전시대 스파이들은 소련과 쿠바의 군사 주둔지를 축구장과 야구장으로 식별했다.

1970년 쿠바 시엔푸에고스에서 해군 기지 건설이 진행되고 있었다. 미국은 8년 전 미사일 위기의 악몽을 떠올렸다. 몇 달 뒤, 국가안보 보좌관 키신저(Kissinger)가 시엔푸에고스 상공에서 첩보기가 촬영한 사진 한 장을 제시했다. 사진에는 쿠바인들이 축구장을 짓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키신저는 공사 중인 기지가 소련을 위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CIA 국장 헬름스(Richard Helms)도 "건설 중인 기지에 축구장·테니스 코트·배구 코트·농구 코트는 있는데 야구장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아직까지 야구장 없는 쿠바군 캠프는 본 적이 없다"며 키신저의 판단에 동의했다. 키신저는 소련 대사를 만났고, 쿠바에서의 해군 기지 건설 공사는 중단됐다.

1975년 11월, 쿠바가 앙골라 좌익정당 앙골라인민해방운동(MPLA)을 지원하기 위해 2만5000명이 넘는 군대를 비밀리에 앙골라에 파견했다. 그러나 미국은 정찰위성을 통해 쿠바가 앙골라에 군대를 파견했음을 어렵지 않게 추적할 수 있었다. 쿠바인들은 가는 곳마다 야구를 했기 때문에, 야구 다이아몬드의 존재와 숫자는 쿠바군의 위치와 규모를 추론케 했다. 당시 탄자니아 주재 미국 대사도 탄자니아 대통령에게 앙골라에 쿠바 군대가 주둔하고 있음을 확신시키는 방법으로 야구 다이아몬드의 항공사진을 전달했다.

오동나무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가을이 왔음을 알고, 항아리 물이 어는 것을 보고 천하의 추위를 안다. 가까운 것으로 먼 것을 알고 작은 기미로 큰 변화를 짐작하는 사람, 그들이 바로 스파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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