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찬
이범찬

지금 다시 반도의 지정학 위기가 몰려오고 있다. 한국은 핵무기를 보유한 미국·중국·러시아·북한 등 4개국과, 마음만 먹으면 1개월 내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일본에 둘러싸여 있다. 일본은 핵물질을 생산할 수 있는 재처리 및 농축 공장을 보유하고 수천 톤의 핵물질을 생산해 비축하고 있다. 실제 핵 국가들에 포위돼 있는 것이다.

한반도는 배와 등 양쪽에서 적을 맞는 복배수적(腹背受敵)의 불리한 지정학이나, 중국의 뒷통수를 칠 수 있는 망치가 되고, 일본의 가슴을 찌르는 단도가 되는 유리한 공세적 지정학적 위치로 바뀔 수도 있다. 지금은 남북으로 분단되어 자루 없는 망치요, 부러진 단도이나 우리 하기에 따라서는 정반대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우리는 후손들에게는 공세적 지정학으로 바꿔서 물려줘야 한다.

역사속 한반도의 지정학 위기를 살펴보자.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에서 힘의 이동(power shift)이 일어날 때 우리의 어떤 잘못이나 실책과 무관하게 힘의 교체기 불똥이 튀어 전장(戰場)이 되곤 했다. 그 때 우리 정치지도자들은 외부 정세에 밝지도 못하고, 전략적으로 기민하지도 못했으며, 내부적으로 권력다툼에 몰두하다가 사전에 대비도 못했다.

고려말 원명 교체기에 원의 지배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한족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원나라 군대의 진압에 밀려 한족이 만주로 피난하게 되고 거기서 다시 압록강을 건너 고려로 쳐들어온 것이 홍건적의 침입(1359∼1360)이다. 2차례 홍건적의 침입으로 개경이 함락되는 등 고려왕조 멸망을 재촉하는 원인이 되었으며, 이성계는 이들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큰 전공을 세우면서 영웅으로 떠오르면서 조선왕조 개창의 단초가 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유연하고 탄력적인 외교적 감각으로 능동적으로 국제정세 변화에 대응했으나, 중기로 들어오면서 성리학이 사변론으로 흐르면서 나라가 문약해졌고, 주변 정세의 변화에 둔감해졌다. 16세기 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총으로 무장하고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하면서 일본의 힘이 확 커졌다. 그런데도 조선의 왕실은 애써 힘의 이동을 무시했다. 히데요시는 정명가도(征明假道)를 내걸고 한반도로 침공해 왔고, 선조는 의주로 도망가면서 명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했다. 명이 자신의 땅이 전장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파병하면서 7년간 한반도가 유린 되는 임진왜란(1592∼1598)을 겪게 되었다.

임진왜란으로 명나라가 쇠퇴하면서 만주지역에 권력의 공백이 생기자 두만강과 압록강 건너 여진족(후금)이 부상하는 권력의 이동이 일어났다. 이를 제대로 파악하고 균형외교를 펼치던 광해군이 반정세력에 의해 쫓겨나고, 국제정세에 무지한 사대부들이 명분론에 입각해 망하는 명나라에 올인하는 친명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이에 후금의 누르하치가 괘씸하게 생각하고 명나라 정벌 때 후환을 없애기 위해 쳐들어온 것이 병자호란(1636∼1637)이다. 다급하게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가 40일만에 삼전도로 나와 9번 땅에 머리를 찢고 항복했다. 그 후 50만의 백성들이 청나라로 끌려가 갖은 수모를 다 당하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조선의 정치지도자들은 정신차리지 못하고 정파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정쟁을 계속했다. 반면 일본은 중국이 아편전쟁(1842년)에서 영국에 패하는 것을 보고 서구 열강의 힘을 인식하고 화혼양재(和魂洋材)의 기조하에 서구문물을 도입하고 개혁하는 메이지 유신(1868년)을 단행해 근대화로 나아갔다.

서세동점하는 19세기 국제질서는 영국이 패권국이었고, 이에 도전국은 러시아였다. 영국은 러시아가 부동항을 찾아 남하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일본 등과 합종연행하는 세칭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을 하고 있었다. 조선의 고종과 민비는 이런 국제정세의 큰 흐름을 읽지 못하고 러시아를 끌어들여 왕권을 보호하려다 망국을 초래했다. 영국과 미국은 러시아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일본을 끌어들이고, 영일동맹과 까쓰라·테프트 밀약을 맺어 일본의 조선 지배를 인정했다. 조선은 청나라, 일본, 러시아 등 외세에 휘둘리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전쟁터가 되었고, 양 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위정자들이 국제정세에 눈이 어두워 동맹을 잘못 선택함으로써 결국 망국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21세기 들어 중국의 부상으로 힘의 변동이 보이자 좌파세력은 미국을 멀리하고 중국에 가까이 가려고 무진 애를 쓴다. 국제질서가 탈냉전에서 신냉전으로 전이되면서 北·中·러 삼각관계가 다시 결속되고 있는데도 거기에 끼어보려고 대통령이 혼밥하면서 기웃거렸다. 무지해도 이렇게 무지할 수 없다. 지난 정부의 원미친중(遠美親中) 정책이 구한말 고종의 끝없는 친러정책과 겹쳐보이지 않는가. 21세기의 패권국인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으면서 친북친중(親北親中)하면 북핵이 해결되고 자유통일이 이루어지는가. 삼척동자도 안된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핵을 가진 북한·중국·러시아의 위협을 뚫고 반드시 생존을 담보해야 한다. 다시는 한반도가 전장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국제사회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는 정글임을 명심하고 북핵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우선 미국의 신뢰 속에 확장억제전략을 강화하되, 일본·호주 등과 아시아판 핵공유 협정 체결을 추진하는 한편 자위적 핵 균형 전략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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