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은 내년 10월부터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 등 6개 품목 수출 기업에 탄소배출량 보고 의무를 부과하기로 했다. 경북 포항시 남구 포스코 포항제철소 4고로(용광로)에서 연기가 나오고 있다. /연합
유럽연합(EU)은 내년 10월부터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 등 6개 품목 수출 기업에 탄소배출량 보고 의무를 부과하기로 했다. 경북 포항시 남구 포스코 포항제철소 4고로(용광로)에서 연기가 나오고 있다. /연합

유럽연합(EU)이 내년 10월부터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전기·수소 등 6개 수입 품목에 ‘탄소 국경세’를 물리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본격 시행하기로 하면서 관련 산업에 비상등이 켜졌다. 탄소국경조정제도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수입품의 탄소 배출량이 EU 기준을 초과할 경우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EU 내 수입 기업이 기준을 초과하는 양만큼 탄소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 예컨대 철강 1톤을 생산하면서 발생하는 탄소량이 2톤일 경우 철강 1톤을 팔기 위해서는 배출권 2개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EU 회원국에 1년 동안 철강 100톤을 수출한다면 탄소배출권 200개를 구매해야 하는 것이다. 세액은 현재 시행 중인 탄소배출권거래제(ETS)와 연동돼 결정된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은 EU에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량뿐만 아니라 생산 과정에서 사용된 에너지의 발전원에 대해서도 탄소배출량을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마찬가지로 세계 최대 탄소 배출국인 중국을 겨냥한 조치로 해석되고 있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산업을 중심으로 수입량을 통제해 EU 회원국들을 보호하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불똥’은 국내 기업들에 튀는 모양새다. 탄소 국경세 대상인 6개 품목은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이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탄소국경조정제도 적용 품목의 EU 수출 규모는 철강 43억 달러, 알루미늄 5억 달러, 시멘트 140만 달러, 비료 480만 달러 수준이다.

이에 따라 EU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 기업들의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환경정책 싱크탱크인 샌드백과 E3G에 따르면 탄소국경조정제도 시행으로 우리나라가 부담해야 할 금액은 2026년 1322억6000만원, 2035년에는 47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EU 수출이 많은 철강업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철강 제품을 수입하는 EU 업체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연간 339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다만 과세 대상이 수입 기업이기 때문에 우리 기업이 직접 이 금액을 부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를 우리 기업에 전가할 가능성 크다. 더구나 규제 품목이 플라스틱, 유기화학품, 수소, 암모니아 등으로 확대되면 우리 기업의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EU가 기후위기를 명분으로 새로운 무역장벽을 쌓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탄소국경조정제도가 EU의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한다는 취지에서 추진됐지만 국제통상 규범을 위반하는 일종의 보호무역 조치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미국도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와 유사한 규제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6월 미 상원은 청정경제법안(CCA)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석유화학제품 등 12개 수입품에 대해 탄소 1톤당 55달러씩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EU와 미국에서 탄소 국경세가 본격 시행되면 우리나라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EU가 탄소 국경제 도입시 연간 0.5%(약 4조1700억원), 미국의 경우 0.6%(약 5조원)씩 우리 수출이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의 중요 수출시장인 EU와 미국에서 탄소 규제가 본격화되면 우리 기업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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