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의 ‘법치’, 개인의 자유 보호할 ‘신의 선물’
루소의 ‘법치’, 개인의 자유 보호할 ‘신의 선물’
  • 강 량 주필, 정치학 박사
  • 승인 20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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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의 법치파괴자들, 하나같이 법조인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년 6월 28일 ~ 1778년 7월 2일)는 스위스 제네바 공화국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사회계약론자이자 직접민주주의자, 공화주의자, 계몽주의 철학자이다.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년 6월 28일 ~ 1778년 7월 2일)는 스위스 제네바 공화국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사회계약론자이자 직접민주주의자, 공화주의자, 계몽주의 철학자이다. 사진 : https://ko.wikipedia.org/wiki

루소(J. Rousseau)자신이 그렇게도 경계했던 인민이라는 이름의 ‘우민’들이 루소 자신을 전체주의자의 화신으로 만들어 놓았다. 프랑스혁명 이후 자코뱅의 로베스피에르 (M. F. M. Robespierre)가 단순하게 해석해 놓은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21세기 현재에도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로베스피에르는 위대한 사상가 루소가 ‘대의제’를 부정하고, ‘삼권분립’도 부정하며, 국가와 인민을 연결해 주는 그 어떤 시민사회의 결사체들도 부정했다고 강조하며, 그 어떤 집회도 인원이 28명을 넘어서는 안된다는 ‘칙령’을 내렸던 바 있다.

전 인민이 하나가 되는 전체주의혁명의 위대함을 외쳤던 감성적인 한 혁명가에 의해서, 그의 일생을 통해 시종일관 ‘인간의 자유’와 ‘시민의 자유’의 중요성을 주장해 왔던 루소라는 한 철학자가 전체주의와 독재를 옹호하는 삼류 이념가로 전락하게 되었다.

◇문정부의 얼치기 삼류 이론가, 루소 논리 악용

현재 대한민국을 장악하고 있는 얼치기 삼류 이념가들도 자신들의 모든 행위의 근거와 자신들의 무결점적인 도덕적 타당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위한 최고의 이념적, 철학적 명분으로 루소의 논리들을 거들먹거리면서 악용하고 있다.

이념의 도그마에 빠진 자들은 이념에 대한 접근을 학문적으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끊임없는 ‘회의’와 ‘사유’, 그리고 학자로서의 자신에 대한 ‘성찰’을 인간의 덕목으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도그마란 절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교리문답처럼 강령으로 주어진 내용들을 달달 외워서, 잘 알지도 못하는 깊은 철학적 내용을 담은 고유명사들을 보통명사화해서, 그저 자신들의 행동강령으로 또는 깃발로 내세우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들은 회의도, 성찰도, 그 어떤 후회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무결점의 교리’대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설사 인간이기 때문에 이들도 조금의 실수와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고 보지만, 이 또한 얼마든지 인민들이 참아내어야 할 역사적, 인민적 의무로 여긴다. 그래서 이들은 결코 교화되지 않는다.

루소의 일반의지는 공동체에 의해 취해진 결정들의 총체이다. 공동체와 공동체 성원들의 자아를 동일시함으로써, 일반의지에 대한 복종이 곧 자신에 대한 복종이 된다. , 이는 바로 공동체성원들의 ‘자유’를 의미한다.

일반의지는 인민들의 개별적 의지를 포함시킬 경우, 그 본질이 바뀌기 때문에, 개별적 의지의 총합인 ‘전체의지’와는 반드시 구분되어야 한다.

사회계약은 시민들 사이에서 평등을 수립하고, 동일한 계약조건에서 동일한 권리를 향유하게 만든다. 따라서 이 계약의 본질에 의거해서 인민들의 일반의지에 따른 모든 행위들은 모든 시민들에 대해 평등한 의무와 권리를 부여한다.

◇루소가 말한 ‘법 앞의 평등’

이 말의 의미는 주권자로서 한 ‘국민체’ (Corps de la Nation)에 속한 모든 성원들이 사회적 계급이나 빈부격차와 관계없이 모두 법 앞에서 평등함을 의미한다.

루소는 일반의지가 진정 일반적이 되기 위해서는 ‘전체’로부터 나와서 ‘전체’에게 바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기실 이 부분에 대한 시대적 오해가 많지만, 루소의 철학 전반을 이해한다면, 이는 일반의지야말로 법의 입법과 집행에 있어서 필히 따라오는 ‘이중의 일반성’, 즉 ‘의지의 일반성’(법철학)과 ‘대상의 일반성’(법 앞에 평등)을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또 그는 법이 좋은 인민들을 만들기도 하지만, 인민들 또한 좋은 법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인민들이 무지몽매해서 개별적인 대중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고 말한다. 또 인민집회에서 능동적이어야 할 시민들이 수동적인 정념에 사로잡힌 ‘신민’으로 존재할 경우, 언제든지 무법천지인 ‘자연상태’ (State of Nature)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루소의 사회계약이 취약한 것은 ‘자유’보다는 ‘질서’개념을 앞세운 홉스의 사회계약론과 달리, 일관되게 ‘인간자유’의 원리를 끝까지 관철시키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인민 스스로 ‘자유를 거부할 자유’까지 루소는 인간의 자유를 허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루소가 평생토록 갈구했던 바람직한 일반의지의 실현은 바로 ‘시민적 덕성’과 ‘시민적 자유’의 결합형태로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인간을 시민으로 만들기 위한 효과적인 ‘탈자연화’ 과정, 다시 말해 인간의 감성적 본성을 뛰어넘는 일들은 현실적으로 너무나도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루소는 언제든지 개별적 ‘특수의지’가 ‘전체의지’로 대변되는, 소위 엉망진창이 되는 사회, 결과적으로 전체주의적 사회로 회귀하는 상황을 항상 경계했다.

◇루소, 전체주의적 사회를 항상 경계

루소의 대표작 ‘에밀’(좌)과 ‘신 엘로이즈’에 수록된 삽화
루소의 대표작 ‘에밀’(좌)과 ‘신 엘로이즈’에 수록된 삽화

루소는 어릴 적부터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는 자연을 벗 삼아 방랑했던 일종의 자생적 철학자였다. 그리고 그가 처했던 정치사회적 환경은 작금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정형화되지 못한 불안정한 환경이었다.

그러므로 루소가 대의제와 국가와 개인을 연결하는 시민사회적인 중간매개체들을 부정한 것은 이런 제도들이 당시 미숙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루소는 선출직 대의원들이 선출자들과 짜고 그들의 이익만 대변하며 늘 사리사욕에만 빠져있다면 이는 몸을 파는 창녀와도 같다고 말했다. 루소는 당면한 시대적 상황을 굉장히 부정적인 관념으로 바라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듯이 한 철학자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당면했던 개인적, 시대적, 사회문화적 환경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이를 충분히 고려한다면, 루소에 대한 현재의 ‘몰이해’(Misperception)는 상당부분 줄어들 것이다.

결국 루소도 법철학과 법 앞에서의 평등을 강조했듯이, 근대국가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반영되는 계몽주의철학자들의 가장 큰 '철학적 화두'는 바로 ‘법치’였다. 이 법치야말로 공동체속의 주권자인 개인의 가치와 생명, 행복추구권을 가장 잘 보호해 준다.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위대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추미애, 조국, 최강욱, 한상혁, 김명수, 이성윤

작금의 대한민국체제를 흔들고 있는 추미애, 조국, 최강욱, 한상혁, 김명수, 이성윤 등등 보이지 않는 악령들이 시키는 대로 인생이란 무대 위에서 역겨운 춤을 추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들은 역설적으로 모두 법조인출신들이다.

대학운동권 출신들로 이념의 도그마에 빠진 이들의 정신세계에는 ‘법철학’과 ‘법치’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과거 유신시대나 자유당 시절에서도 보지 못했던 법관들의 진영논리에 빠진 ‘자의적인 정치적 판단’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저 기가 막힐 뿐이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공동체와 개인을 파멸시키는 바로 ‘법치의 파괴’다. 이런 명약관화한 사실들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자유시민들이 이에 저항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루소가 그렇게 우려했던 무지몽매한 우민들로 인해 전체주의로 흘러가는 국가의 운명을 막아내지 못할 것이다.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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