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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연 20%를 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법정 최고금리를 시장금리에 따라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고리대금을 막기 위해 대출 이자를 20% 초과해 받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최근 시장금리가 급등하면서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대출을 받지 못한 채 불법 사채시장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19일 대부업계에 따르면 지난 2002년 10월 대부업법이 제정된 이후 대부업체들은 법으로 정해진 이자율 상한을 적용받고 있다. 연 66%에서 출발한 법정 최고금리는 현재 20%까지 떨어진 상태다.

대부업법상 법정 최고금리는 연 27.9% 이내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돼 있는데,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7월 시행령 개정을 통해 연 24%에서 20%로 낮췄다. 하지만 이처럼 낮아진 법정 최고금리는 서민들의 급전 창구인 대부업체의 대출 문턱을 높이는 주범으로 작동하고 있다. 저소득자와 저신용자 등 금융 취약계층의 이자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제도가 오히려 이들을 제도권 금융 밖의 불법 사채시장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실제 법정 최고금리를 인하한 이후 서민들의 돈 빌리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대부업체의 대출 공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에 등록한 대부업체는 지난 2019년 1355곳에서 지난해 말 940곳으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이용자 수는 161만명에서 96만명으로 줄었다. 대출 잔액도 2019년 13조4507억원에서 지난해 말 10조9866억원으로 18.3% 쪼그라들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지난달 15일 열린 제13회 ‘소비자금융 콘퍼런스’에서 법정 최고금리가 20%로 고정되면 2조원 규모의 초과수요가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초과수요는 수요가 공급보다 많은 것을 말하는데, 1인당 평균 대출금액이 500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약 40만명이 대출을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의미다.

더구나 최근의 기준금리 인상은 저소득자와 저신용자를 제도권 금융에서 더욱 빠르게 밀어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통상 대부업체는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한 다음 이를 다시 소비자에게 빌려주는데, 조달금리 자체가 껑충 뛴 것이다.

대부업계의 한 관계자는 "시장 전체의 70%를 담당하는 21개 대부업체의 조달금리가 최소 연 7% 이상"이라며 "대손비용을 8~10%로 최대한 보수적으로 잡고, 광고비·인건비·임대료 등 원가만 따져도 신용대출 금리는 20%를 넘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대부업체 입장에선 신규 대출 취급을 중단 혹은 축소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법정 최고금리에 가까운 고금리를 적용받는 취약계층부터 밀려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시장 상황에 맞게 법정 최고금리를 탄력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시장금리 연동형 법정 최고금리제도를 도입해 지금 같은 금리 인상기에는 상향해 주자는 것이다.

여신금융협회가 최근 발간한 ‘시장금리 연동형 법정 최고금리 도입의 필요성’ 보고서는 조달금리 상승분을 반영해 법정 최고금리를 20%에서 23.5%로 올리면 현재 대출시장에서 배제된 106만명의 차주 가운데 96.9%인 102만명이 시장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란 시뮬레이션 결과를 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해 금융당국은 현재 20%로 고정된 법정 최고금리를 시장금리 변화에 연동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리 상승에도 법정 최고금리가 고정된 탓에 저소득자와 저신용자가 돈 빌릴 곳을 찾지 못해 불법 사채시장으로 몰리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차원이다.

금융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법정 최고금리를 시장금리 연동형으로 바꾸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며 "해외 사례를 검토하는 등 법정 최고금리제도 개선과 관련해 여러 가능성을 실무적으로 보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현재 영국, 독일 등 선진국은 일률적인 법정 최고금리의 부적절성을 고려해 이자율을 자율적으로 설정하도록 하되 폭리 행위에 대해서는 법원이 제동을 거는 방식으로 규제하고 있다.

대부업법 개정을 통해 제도를 바꾸려면 국회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여야(與野)를 불문하고 반대 기류가 강한 상태다. 국회의원은 정치를 하는 사람들로 ‘표’를 먹고 사는데, 법정 최고금리를 내리자는 것도 아니고 올리자는 것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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