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을 ‘녹색 사업’으로 분류 추진하는 유럽연합.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가동 중단이 임박한 독일 바이에른주 군트레밍엔 원자력 발전소의 냉각탑에서 수증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투자를 환경·기후 친화적인 ‘녹색’ 사업으로 분류하는 규정 초안을 제안했다. /AP=연합
원전을 ‘녹색 사업’으로 분류 추진하는 유럽연합.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가동 중단이 임박한 독일 바이에른주 군트레밍엔 원자력 발전소의 냉각탑에서 수증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투자를 환경·기후 친화적인 ‘녹색’ 사업으로 분류하는 규정 초안을 제안했다. /AP=연합

1973년 아랍의 석유 금수 조치 이후 최악의 에너지 위기를 맞은 유럽연합(EU)에서 원자력 발전이 환경·기후친화적인 ‘녹색’ 사업으로 재조명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탈원전과 크게 비교된다. 유럽연합(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가 2일(현지시간) 천연가스와 원자력 발전에 대한 투자를 환경·기후 친화적인 ‘녹색’으로 분류하는 ‘지속가능한 금융 녹색분류체계(Taxonomy)’ 초안을 최근 회원국들에 보냈다.

뉴욕타임즈 등 외신에 따르면, 초안은 27개 회원국과 전문가 패널의 면밀한 검토 후 이달 중 최종안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지난달 30일 ‘녹색분류체계’에서 원전을 완전 제외한 우리나라와 대조적이다. 모든 경제활동의 친환경·탄소중립 공헌 여부를 판단해 명시한 게 ‘녹색분류체계’다. 금융 투자 기준으로 작용한다. 우리나라의 관련 정책이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영국·독일·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에너지 위기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가스 가격이 1년간 800% 올랐으며 전기는 500% 인상됐다. 현재 프랑스는 원전을 통해 70%가량의 에너지 공급을 해결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 등 주변국의 압박에 원전 지원을 포기하면서 에너지 위기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2015년 ‘녹색 개발’에 관한 법률이 통과된 뒤 프랑스는 2025년까지 에너지 공급에서 원자력 비중을 70%에서 50%로 줄일 방침이었다. 그러나 원자로 3분의 1을 중단한 후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급등, 러시아가 석유·천연가스를 막자 큰 타격을 입었다. 프랑스는 최근 몇 년 독일·오스트리아·룩셈부르크 등 ‘반(反)원자력’ 동맹의 맹공에 21세기 들어 새로운 원자로 건설이 끊긴 상태다. 현재 운영되는 원전은 대부분 1970년 후반과 1980년 초반에 건설된 것으로, 노후화가 심각하다. 2022년말까지 원전 절반을 폐쇄하기로 한 독일의 상황은 훨씬 어렵다. 게다가 석탄 생산량마저 감소하는 중이다.

이에 EU국가의 3분의 1이상(27개국 중 10개국)이 원전 개발 지지로 돌아섰다. 원자력 재가동은 화석연료와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대폭 줄일 것이란 분석이다. 결국 EU 집행위원회도 원전이 다른 전력에 비해 인간 건강이나 환경에 더 해롭다는 과학적 근거를 찾지 못했다며, 분석결과 원전은 ‘녹색’으로 분류될 자격이 있다고 결정했다. 프랑스 역시 2030년 이후 원전을 통한 전력 생산을 두 배로 늘릴 계획이다. 네덜란드는 2개의 원전 건설을 확정했다. 폴란드의 최초 원전이 북부에 건설될 것이고, 핀란드 또한 세 번째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된다. 벨로루시는 러시아를 원전 건설 사업 파트너로 고려하고 있다. 카자흐스탄도 미국·프랑스·중국·러시아 기업의 제안을 고려한 뒤 원전 건설에 나선다.

유럽뿐만 아니다. 미국은 올해부터 차세대 고속원자로(고속로) 개발 사업에 뛰어든다. 미국 정부와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은 와이오밍주(州)에 출력 34만5000킬로와트(㎾)급의 소형모듈원전(SMR)을 지어, 2028년 운용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이 즉각 참여를 선언하면서 글로벌 프로젝트로 거듭났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정부 기관인 일본원자력연구개발기구와 미쯔비시중공업 민관 합동으로 참여한게 된다. 중국 시진핑 주석도 "러시아의 최신 원전기술을 도입해 새 원전을 짓겠다"고 말했다.

이렇듯 원전 이슈가 재점화 하면서 ‘원자력 르네상스’를 맞을지 모른다. 러시아의 기술력이 압도적 우위를 보이는 가운데, 빠르고 안전한 납 냉각술을 선보인 러시아 원전에 대해 환경친화적 원자력의 미래를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생성된 플루토늄은 선적 제조에 쓰이는 등 사용후핵연료 처리기술도 서방보다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탈원전 정책으로 사장될 위기에 놓인 세계적 수준의 우리나라 원전 기술력 역시 활로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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