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식
김정식

며칠 전까지 일본은 일본 영토가 다른 나라의 공격을 받아서 실제로 파괴되거나 일본 국민이 살상당하기 전까지는,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 그 어떤 적극적인 대응도 할 수 없었다. 작전 및 전투는 일본의 영토·영해·영공에 한정됐다. 공격한 상대 국가로의 진입이나 군사기지에 반격하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었다. 태평양전쟁 패전 후 70여 년 동안 유지해 온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 때문이었다.

지난 16일 일본에서는 북한·중국·러시아 등 사실상 적국(敵國)의 미사일 기지를 직접 타격하는 ‘적(敵) 기지 공격 능력(반격 능력)’ 보유를 결정한 3대 안보 문서의 개정안이 의결됐다. 전수방위 원칙을 폐기한 것이다. 기시다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현재 자위대의 능력으로, 위협이 현실이 됐을 때 이 나라를 지켜낼 수 있는지 매우 현실적인 시뮬레이션을 했다. 솔직히 말하면 충분하지 않았다", "반격 능력은 상대방에게 공격을 단념시키는 ‘억제력’이 되는 만큼,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국방에 대한 자화자찬을 늘어놓으며, 최전방 초소를 파괴하고 적국과 협력하는 듯했던 직전의 대한민국 대통령과 상당히 비교되는 모습이다.

좌편향됐거나 일본에 대한 막연한 적대심을 가진 우리나라 일부 언론은 이를 두고 일본이 ‘전쟁 가능 국가’로 변모했음을, 나아가 대한민국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으로 예단하고 있다. 특히 이번 정책 발표에서 독도 영유권에 대해 부당한 주장을 반복하면서 국내 여론은 좋지 않다. 하지만 일본이 추구하는 것은 한일합병,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던 그런 침략 국가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전까지 일본 자위대가 채택하고 있었던 전수방위 개념 자체가, 중국·북한의 존재로 인해 더 이상 실현 불가능한 상황이 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북한에 대해 ‘종전보다 한층 중대하고 임박한 위협’으로, 중국에 대해 ‘투명성이 결여된 채로 광범위하게 증강하는 군사력, 대만에 대한 무력행사 가능성’ 등을 적시하며 ‘지금까지 없었던 최대의 전략적인 도전’이라고 규정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반면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매우 중요한 이웃’으로 규정했다는 것은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다. 이러한 인식은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역시 이번 전환에 대해 환영의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 사회에서 ‘지난 일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라’라는 식의 조언은 꽤 현실적인 조언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적어도 한일관계만큼은 과거사 청산의 시각만 조명되며 예외로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독도 영유권 주장 등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큰 틀에서 일본의 이러한 변화는 필자에게 ‘전쟁광(戰爭狂)’보다는 ‘전쟁을 각오한’ 모습으로 보인다.

북한 등 세계적 불량 국가에 대응하는 미국·일본의 변화에 발맞춰 우리나라 역시 동북아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국가로 한층 성숙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대한민국을 ‘다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드는 길일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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