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7.14 헬렌 켈러 Writing Desk' 등 태평로서 고미술상 운영한 사무엘 리 기록
30년간 한국문화재 1946점 수집·소장한 로버트 마티엘리가 국외문화재재단 기증

1936∼1958년 거래한 고객들 명단과 내역을 기록한 사무엘 리의 고객장부 모습. 펼쳐진 페이지의 왼쪽 상단 부분이 헬렌 켈러가 구입한 내역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1936∼1958년 거래한 고객들 명단과 내역을 기록한 사무엘 리의 고객장부 모습. 펼쳐진 페이지의 왼쪽 상단 부분이 헬렌 켈러가 구입한 내역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한국문화재 소장가인 미국인 로버트 마티엘리(97세) 씨로부터 우리문화재 관련 자료 3건, 총 60점을 기증받았다고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19일 밝혔다. 기증받은 자료 가운데 ‘고객장부’가 포함돼 있어 흥미롭다. 1930년대 중반부터 약 20년 간 국내에서 우리나라 문화재를 사 간 외국인 정보가 담겼고, 그 중 헬렌 켈러 같은 유명인도 들어 있었다. 그녀는 1937년 7월 당시 식민지 조선을 방문해 서울·평양 등지에서 강연했는데, 장부에 따르면 ‘7월 14일 Writing Desk’를 하나 구매했다. ‘서안’(書案)이라 불리던 평좌식 책상, 속칭 앉은뱅이 책상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마티엘리 씨는 도난당한 18세기 불화 ‘송광사 오불도’를 2016년 우리나라로 돌려보낸 인물이다. 그간 포틀랜드 미술관, 오리건대 조던슈니처 미술관, 시애틀 미술관 등에 소장품을 기증·기탁 해왔으며, 이들 ‘마티엘리 컬렉션’이 지금도 각 기관 한국전시실에서 주요 자료로 활용된다. 그는 1958~1988년 약 30년간 주한 미8군 사령부의 문화부 미술공예과장 등으로 일하며 한국의 병풍·자수·도자기·목공예품 등을 수집했다. 그렇게 모은 한국문화재만 1946점에 달한다.

이 과정에서 ‘사무엘 리의 외국인 고객장부’가 우연히 마티엘리 씨 손에 들어 온 것이다. 사무엘 리에 대해선 거의 알려진 게 없다. 다만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공부하고 서울 태평로에서 고미술상을 운영하던 인물로, 1936~1958년 자기 가게에서 한국미술품을 사 간 서양인·일본인 수백 명의 성명 및 주소, 판매일자·품목 등을 기록해 뒀다. 재단 관계자에 따르면, 사무엘 리의 고객장부는 "역대 최대 규모의 한국문화재 구입 외국인 명단"이다.

마티엘리 씨가 한국 체류시절 입수한 명함 58점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당시의 고미술상·표구상 등 주로 외국인에게 한국미술품을 취급하던 여러 상점 정보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 정보를 추적한다면 1960∼1980년대 우리 미술품 등 문화재들이 해외로 나가게 된 경위와 소재를 광범위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재단 관계자가 기대를 표했다.

또 마티엘리 씨는 1962년 미8군 SAC(Seoul Area Command) 도서관에서 개최된 박수근(1914~1965) 화가의 개인전 리플렛 1건도 기증했다. 알려지지 않은 작품 11점의 목록이 실린 리플렛이다. 그동안 미8군 SAC 도서관 개인전에 출품된 유화 45점 가운데 33번 목록까지만 알려져 있었다. 박수근의 전시회를 연구해 온 서성록 안동대 교수는 이 11점 목록의 역사적·사료적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재단은 지난 6월부터 마티엘리 씨가 소장한 한국문화재를 연구·조사하고 주요 자료의 기증을 이끌어 냈다. 향후 ‘마티엘리 컬렉션’ 관련 연구를 진행해 학술적 성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로버트 마티엘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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