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
이인철

오늘의 미디어 환경은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풍요로운 문화를 제공한다.

문화를 뜻하는 영어 culture는 라틴어 ‘경작하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자연을 개발한다는 뜻이다. 예술을 뜻하는 영어 art는 그리스어 테크네(techne)에 어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기술적 측면을 포함한다. 기술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문화는 콘텐츠를 만드는 기술인 동시에 그 기술로 만들어진 콘텐츠다.

고대의 공연장 아레나가 도시 중심에 있던 것처럼 문화는 생활 중심에 있다. 로마의 콜로세움은 정교하게 연출된 공연을 선사하는 기술이다. 작품을 만들어 공연하는 연출은 문화를 만드는 기술의 총아(寵兒)다.

연출은 주목(注目)을 목적으로 하는 작업이다. 문화는 연출과 주목, 그리고 관심을 기울이는 시간으로 이어지는 현상이다. 관심이 모아지는 콘텐츠는 모두에게 시간을 요구한다. 이러한 시간이 거래되는 관심의 시장에서 콘텐츠 산업이 움직인다.

콘텐츠를 만드는 작업이 연출이다. 공연자는 연출된 정체성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관객은 연출로 만든 공연이 시연되는 무대를 본다. 그리고 공감으로 재구성된, 공연 전과는 다른 세계 속의 자신을 체험한다. 연출이 만든 정체성을 공감으로 함께 나누는 것이 공연이다.

공연을 통해서 만들어진 정체성은 삶을 풍요롭게 하지만 바깥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누구나 자기 삶을 연출하고자 하는 유혹에 이끌린다. 연출과 주목의 기술에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연출과 주목의 기술이 만든 가상세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무한 시간 소비의 쳇바퀴에 올라타면 현실을 잊게 된다. 다양한 매체에 둘러싸인 환경은 점차 실제 세상을 살아가는 이웃과 멀어지고 생각하는 자리를 빼앗아 간다. 그래도 지금은 한해 동안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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