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웅
전경웅

정부가 민노총에 대한 정부 지원금 규모를 파악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덕수 총리가 지난 18일 "노조 재정 운용의 투명성 등 국민이 알아야 할 부분을 정부도 과감성 있게 적극적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밝힌 뒤다.

정부가 민노총의 예산집행 투명성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을 두고 좌파 내에서도 "민노총 개혁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오랜 기간 급진좌파 정당인이었던 한 언론인은 "민노총의 회계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윤석열 정부 방침을 지지했다. 지난 20년 동안 민노총과 산별노조의 예산 집행이 ‘주먹구구식’이었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는 "금속노조 예산 집행 문제만 들춰도 화물연대 같은 불법 파업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알려지기로 지난해 민노총과 산하 16개 산별노조가 사용한 예산은 1000억 원대다. 그 중 금속노조 예산은 550억 원에 달한다. 이 돈은 113만 민노총 조합원이 냈다. 민노총 소속 노조들은 조합비로 통상임금의 1%를 걷는다. 전임자 임금은 0.2~0.6% 정도 따로 걷는다.

민노총은 정부지원도 받는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3억 원을, 올해 서울시는 9억 원, 경기도는 18억 원을 민노총에 지원했다. 울산시는 민노총 사무실 임차료 2억4000만 원을 지원했다.

민노총은 이렇게 얻은 돈을 쓰면서도 내역을 조합원들에게 상세히 공개하지 않는다. 내부 회계 감사 결과를 대의원 회의에서 공개하고 확인하는 과정이 있지만 대부분 구두 보고다.

노조 및 노동관계 조정법에 따르면 노조 조합원은 회계 결산 결과에 대한 자료 열람을 청구할 수 있지만 회계 감사를 하거나 회계장부 등을 내놓으라고 할 권한이 없다. 즉 예산을 제대로 집행했는지 꼼꼼하게 확인할 길이 없다. 이렇다 보니 민노총이 예산을 집행할 때 구체적인 근거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일이 빈번하다는 게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소식통 이야기였다.

민노총의 ‘주먹구구식’ 회계 관리는 실제 사고로도 이어졌다. 현대차 비정규직 지회 사무국장이 노조 조합비 7500만 원을 횡령해 생활비와 도박 자금으로 쓴 사실이 드러나 지난해 5월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올해 4월에는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아시아나에어포트지부장이 노조 조합비 3억7000만 원을 유흥비로 썼다가 징역 2년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앞서 언급한 좌파 언론인은 "윤석열 정부가 특히 금속노조 회계 내역에서 문제를 찾아낸다면 완성차 노조들이 금속노조를 탈퇴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민노총은 한동안 대정부 투쟁을 할 동력을 잃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그는 "민노총이 회계 문제로 휘청거리고 대정부 투쟁을 할 힘을 잃는다면 그건 자업자득"이라며 "이번 기회에 민노총과 금속노조 등의 회계 투명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진보 진영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민노총이나 금속노조의 회계 불투명성은 젊은 세대의 노조 이탈 원인이다. 포스코 지회는 최근 금속노조를 탈퇴하면서 포항지부에 "그동안 우리에게 받아간 조합비 사용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어쩌면 정부가 이번 일을 기회로 노조법을 개정하려 할 수도 있다. 해외 선례도 있다. 미국의 경우 연간 25만 달러(약 3억2200만 원) 이상의 예산을 운영하는 노조는 노동부에 의무적으로 회계 보고를 해야 한다. 영국 또한 주무 관청에 노조 운영비 사용 내역을 보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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