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자유민주주의, 돼지목 진주목걸이였나?
사라지는 자유민주주의, 돼지목 진주목걸이였나?
  • 강량 주필, 정치학박사
  • 승인 2020.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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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보수인 ‘반동’으로 치닫는 文정권 과연 어디로 가나!

부패관료와 불법율사를 꾸짖지 않는 사회, 희망이 있나?
후쿠야마 (Francis Fukuyama)

후쿠야마 (Francis Fukuyama)는 20세기말 동구권과 소련이 무너지는 정치적 상황에서, ‘냉전종식’이야말로 파시즘적 전체주의에 대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 또 공산주의에 대한 시장경제와 자본주의가 승리한, 소위 역사발전 과정에서의 ‘종착점’이 완결되었다고 흥분했다.

인간의 심리적, 정신적, 물질적 욕구들을 충분히 만족시켜주는 자유민주주의야말로, 더 이상 다른 이념으로부터 도전받지 않고 영원히 존속될 이념이며, 그래서 앞으로의 역사는 그 어떤 대규모의 투쟁사도 기록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후쿠야마는 헤겔 (Georg F. Hegel)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예를 들었다. 즉, 인간은 인정받기위해 경쟁을 하는데, 경쟁자가 돌연 죽어버린다면 자신의 승리를 알아줄 상대가 없기 때문에, 경쟁상대를 ‘노예’로 만들고, 그 노예로부터 무한한 복종의 기쁨을 향유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쟁상대가 자신과 같은 재산, 지식, 권위를 갖고 있는 ‘자유인’이라면, 그와의 경쟁승리와 그 결과는 더욱 값어치가 있어진다. 인간관계에서의 ‘상호성’과 ‘존중’ (Respect)은 자유인들로 구성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결과적으로 크게 확대시키고, 그 속에서의 경쟁결과도 더 큰 의미를 갖게 만든다는 것이다.

후쿠야마의 주장은 다분히 서구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또 그가 주장했던 ‘역사의 종말’이란 말이, 채 식기도 전에, 헌팅톤 (Samuel Huntington)의 ‘문명충돌론’이 대두되었고, 현재 동양과 서양의 문명권을 달리하는, 미중 간 지역 패권전쟁이 날로 격화되고 있다.

공산주의의 창시자인 마르크스 (Karl Marx) 조차도, 관계 (Kwan-xi, Relations)와 양반계급 (Scholar Gently)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독특한 아시아적 ‘야만’에 대해 언급했던바가 있듯이, 서양의 관점에서 동북아 한미일 3국은 분명 ‘서양문명의 초점’으로부터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

그만큼 동양적 전통에서 유래되는 각 국가별 문화적 습속이 강하게 동북아국가들을 강타하고 있는데, 이는 전통과 민속, 민중 (Folks)을 중심으로 독특하게 창조되어진, 독일에서 유래된 ‘정치적 낭만주의’ (Political Romanticism)와 그 뿌리를 같이한다.

빨리 제국주의로 나선 서양제국을 따라잡고, 부국강병에 기반을 둔 근대국가를 형성하기 위해서, 일본은 황제를 중심으로 종족적 단결을 부르짖었던, 독일의 ‘법제도’와 ‘독일정신’ (German Geist)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왕국, 일본제국주의 삼국동맹 조약, 독일 대표와 이탈리아, 일본 대표가 조약에 서명 후 건배를 하고 있다

일본 명치철학자들의 '국가론'과 '종족적 민족주의' 사조는 1899년 ‘무술정변’으로 피신했던, 중국 근대사상가인 ‘캉유웨이’와 ‘량치차오’에 전파되었고, 이는 다시 한국의 민족주의자 ‘신채호’에게 전달되어, 전대미문의 5천년역사에 빛나는 ‘한민족’이 그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결국 한중일 3국간 편차는 있겠지만, 일본발 종족적 민족주의는 현재의 중국과 한국의 정치정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국가보다 ‘민족’을 앞세우는 文정권은 지난 73년간 유지해 왔던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역사 속으로 지우려고 안간 힘을 다 쓰고 있다.

돌이켜보건대, 시대 순으로, 최초의 민주적 통치계약자인 홉스 (Thomas Hobbs, 1588)를 비롯하여, 로크 (John Rocke, 1632), 흄 (David Humme, 1711), 스미스 (Adam Smith, 1722), 벤덤 (Jeremy Bentham, 1748) , 밀 (John S. Mill, 1806) 등으로 이어지는 영국의 경험주의에 입각한 계몽주의철학자 계보와 대륙의 합리주의 계보를 이어가는 파스칼 (Blaise Pascal, 1622), 몽테스키외 (B. Montesquieu, 1686), 루소 (J. J. Rousseau, 1712), 토크빌 (Alexis Tocqueville, 1805) 등으로 이어지는 프랑스 계몽주의철학자들의 문명적 철학계보가 칸트 (E. Kant, 1724), 헤겔 (G. F. Hegel, 1770), 마르크스 (Karl Marx, 1818)로 이어지는 독일 철학계보와는 그 내용과 규모, 그리고 사상적 영향력 차원에서 분명히 확연한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다.

독일로부터 ‘서양’ (West)으로 치부되었던 영국과 프랑스와 달리, 독일은 스스로 非서양권 또는 '동양' (East)으로 분류하고, 이성에 기반을 둔 철학기조보다는 '감성'과 '민속'에 기반을 둔, 낭만주의사조 속으로 깊이 심취해 들어갔다고 보여 진다.

결과적으로, 프랑스혁명 이후 갈라져 나오게 된 두 가지 형태의 이념체제, 즉 자유주의형 체제와 전체주의형 체제의 대립양상에서, 독일은 자유주의보다는 전체주의적 체제형태로 변모해서, 확대, 발전되어 나갈 수밖에 없는 철학적 기반이 영국과 프랑스보다 월등하게 강하게 작동하였다고 볼 수 있다.

서양의 역사 속에서 ‘개인의 자유’는 결코 추상적인 형태가 아니었고, 자유를 추구하고자 하는 개인으로서 국민들의 현실적인 ‘피와 땀과 고통의 산물’이었다. 자유민주주의는 그렇게 ‘고통’과 ‘피의 대가’로 만들어졌고, 민주주의의 상징인 자유와 평등이 언급되기 전에, 먼저 ‘국가의 독립’이 절대적으로 우선시 되어졌다.

독립된 국가가 먼저 선행되지 않고는 그 안에 자유, 평등, 박애정신은 존립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모든 자유민주주의국가들이 근대국가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필히 수반되어져야 했던 여러 형태의 ‘전쟁’들을, 그 엄청난 희생에도 불구하고, 자유시민들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전쟁의 결과로, 더욱 결속된 독립국가로서, 자유민주주의를 공고화해 나갈 수 있었다.

반면, 대한민국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못했다. 주어진 해방과 치열했던 좌우이념의 공방은 이승만대통령의 탁월한 지도력과 한국전쟁이라는 희생을 치룬 후에도 제대로 된 ‘국민건설’ (Nation-Building)을 이룩하지 못했다.

보통명사화하고, 박제화 된 자유, 민주에 대한 ‘몰가치’ 속에서, 물질주의에 빠진 대한민국 국민들은 자유민주주의가 선물한 영광된 대한민국의 ‘기적’을 망각한 채, 종족적 민족개념을 앞세우는 反대한민국세력에게 정권을 빼앗겼고, 이제 고통스런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남북한 ‘생명공동체’를 주장하는 文정권의 성격은 과거 프랑스혁명이후 프랑스와 독일이 거듭되는 혁명과 반혁명 속에서 동일하게 경험했던바 있는 바로 '수구' (Reactionary) '꼴통'인 '극도의 보수주의' (Extreme Conservatism) 성격을 띠고 있다. 중국의 ‘천하질서’에 복종하는 조선의 ‘반상의 정치’를 21세기에 구현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양식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내로남불’과 ‘자화자찬’의 억지 속에서, 대한민국세력에 대한 끝없는 ‘원한’과 ‘복수심’을 전개하는 이들의 언사가 민주주의사회의 탈을 쓴 '사회적 자연상태' (Social State of Nature)를 방불케 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그나마 버텨오던 입법, 사법, 행정, 국방영역에서의 소수엘리트들조차도 이제는 내놓고 文정권의 부패와 불법행위들을 감싸고돈다는 점이다. 아마도 文정권이 그들 스스로의 말대로, 20년 정도는 거뜬히 영속할 것이라고, 기회주의적으로 판단하고, 알아서 넙죽 엎드리는 모양새다.

그러나 묻고 싶다. 아무리 文정권의 체제전복을 위한 파괴행위와 이를 수반하는 정책결정들이 압도적인 권세로 보일지라도, 결코 역사 속에서 지워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관료로, 법관으로, 장군으로 살아왔다면, 그 정도의 결과에 대한 ‘예측성’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미친년처럼 날뛰는 ‘운명의 여신’ (Fortuna)을 제압할 ‘탁월함’ (Virtu)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 역사적 결과를 내다보는 ‘지혜’ (Prudence) 정도는 있어야, 그나마 72년을 이어온 대한민국이라는 작금의 민주공화국이 생존할 것 아닌가 말이다.

고통과 억압 속에서도 ‘나는 내 영혼보다 내 조국을 더 사랑 한다’고 외친 마키아벨리 (Niccolo Machiavelli)의 ‘조국에 대한 충성심’이 저물어가는 대한민국위에 서럽게 그립다.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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