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왜곡하는 ‘大문호’ 조정래와 그 후예들
세상 왜곡하는 ‘大문호’ 조정래와 그 후예들
  • 박동원 정치평론가, 폴리콤 대표
  • 승인 202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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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깨끗이 정화할 수 있는 글을 써내야 하는 게 작가의 임무이고 소임”이라는 대문호

-“세상을 깨끗이 정화”하는 문학작품은 인간 본질적 문제와 실체 무시해 전체주의 야기

-친일몰이 적폐청산으로 세상을 깨끗이 만들려는 586들은 선악 이분법에 젖어든 조정래 후예

 

조정래 작가가 10월 12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등단 5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세상을 깨끗이 정화시킬 수 있는 글을 써내야 하는 게 작가들의 임무이고 소임

조정래가 강연에서 했다는 이 말에 깜짝 놀랐다. 이 한 문장 속에 그의 모든 것이 다 들어가 있다. 그의 작품도 삶도 이러할 것이다. 이 문장 속에 오만, 우월감, 세상에 대한 확신, 이중성, 위선 등 모든 게 다 녹아들어 있다. 세상에 대한 이해가 일천한 이가 문호라 떠받들어지는 천박한 세상이 되었다.

친일몰이 적폐청산으로 세상을 깨끗이 만들려는 586들은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나 <아리랑> <정글만리> 따위를 읽으며 선악 이분법에 젖어든 조정래의 후예들이다.

학창 시절부터 확신에 찬 말을 하는 이들을 믿지 않았다. 신입생에게 확신을 설파하는 후배에게 책임질 수 있는 말만 하라 충고했고, 임용고시를 쳐야 하는데 후배들에게 눈치 보여 총학생회 그만두지 못하겠다는 여자 후배에게 절대 그리 생각하지 마라. 눈치 볼 거 없다. 네 인생이 가장 소중하다. 운동은 짧고 인생은 길다라고 조언했다.

문학을 하며 호화롭게 살기를 바라지 말고, 굶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문학의 생명은 영원합니다. 그 확신 위에서 좋은 작품은 탄생하며, 굶주리며 쓴 좋은 작품은 영생을 얻습니다작가란 인류의 스승이고, 그 시대의 산소이며 인류적 동의로 주어진 명예입니다. 그 길을 선택하는 것만 오로지 당신의 실존입니다.”

-조정래의 시선 292p-

전남 벌교에 자리잡은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조정래, 그렇게 빨치산 유가족 취재로 돈 벌어서 기부했단 소식 없어

위선 떤다. 참 좋은 말이긴 하지만 태백산맥을 드라마로 만들기 위해 조정래를 만났던 후배 작가로부터 전해 들은 그는 탐욕에 찌든 추한 늙은이였다. 예전부터 그런 얘기들이 많았다. <태백산맥>은 오롯이 피해 유가족들이나 당사자들의 취재로 이뤄진 작품이다. 그는 그 많은 돈을 벌었지만 어디에도 기부를 했단 말을 듣지 못했다.

유시민은 한 강연에서 문학작품에 대한 학생의 질문에 이런 답을 했다.

박경리의 <토지>는 훌륭한 역사소설이다. 지주도 선한 지주와 악한 지주를, 소작농도 저열한 소작농과 훌륭한 소작농으로 인간의 모습 그대로 정직하게 표현했다.

황석영의 <장길산>은 좀 거시기하다. 제도라는 구조 속의 인간을 너무 단순 과장했다. 양반은 무조건 나쁘고, 저항 도적은 선하게만 그렸다. 너무 과장된 표현이다.

이문열의 <영웅시대>는 나쁜 역사물이다. 지주를 공산주의자에 탄압받는 희생양으로만 그렸기 때문이다. 그건 왜곡된 표현이다.”

태백산맥은 안 읽어봐서 모르겠고, 아리랑은 충분히 나쁜 역사물이다. 유시민은 인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를 그린 걸 정직하다고 표현했다.

조정래가 문학의 사명이고 임무라고 말한 세상을 깨끗이 정화시킬 수 있는 글은 정직할 수가 없다. 확신에 찬 사람은 인간 현실을 그대로 써낼 수가 없다. 인간의 삶은 모순투성이고 현실적 인간세계는 부조리로 꽉 들어차 있는데, 자신이 원하는 깨끗한 세계를 그리려면 거짓과 위선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인간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와, 실제로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거리가 멀다. 그렇기에 인간이 어떻게 살 것인가만 논하고, 실제 인간이 사는 양상을 직시하지 않는 자는 현재 가진 것을 보전하는 것은 고사하고 모든 것을 상실하여 파멸로 향하는 수밖에 없게 된다.”

-마키아벨리, 군주론-

잘 만든 역사영화는 선악의 이분법 없어

그렇다. 잘 만든 역사 영화는 담담하다. “어떻게 살 것인가보다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더 천착한다. 선악의 이분법도 없고, 주인공을 영웅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오히려 주인공의 인간적 고뇌가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들뜨고 흥분된 멀찍한 영웅담보다, 나와 가까운 동질감에서 오는 공감이 독자와 청자를 더 고조시키고 더 큰 성찰을 일으킨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19대 대통령선거 이틀 뒤인 2017년 5월 11일 청와대 경내에서 참모들과 티타임을 갖고 있다. 문정부의 청와대 참모진은 모두가 586 운동권 출신들이다./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킹을 그린 영화 <셀마>가 그렇다. 흑인운동의 지도자가 정보기관의 주선으로 야밤에 백악관에 들어가 존슨 대통령을 만나 타협을 시도하는 장면은 충격 그 자체였다. 마틴 루터킹은 파티를 좋아하는 문란한 사생활, 여자문제, 약물문제, 기부금 유용 의혹, 표절 의혹 등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런 개인의 사생활조차도 담담하고 정직하게 그렸다.

대만 831 공창부대를 그린 영화 <군중낙원>에도 피해자, 가해자라는 선악의 이분법이 없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 가장 인상적인 건 감독의 정치 이념적 생각을 개입시키지 않았다는 것. 흔히 있을 법한 권력의 배경, 집행자들의 악행 같은 것들이 없다. 그래서 좋다. 감독은 영화 말미에 그것이 생긴 것도 사라진 것도 시대의 요구였을 뿐이다.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는 자막이 흐른다.

이런 문학이나 예술 작품들을 접하면 죽여야 할 나쁜 놈이라는 분노 보다 우리가 무슨 짓을 했나라는 자각적 성찰이 일어난다. 그래야 세상이 좀 더 나아진다.

흔히 조선을 의 나라라 얘기하는데 그건 인문이 아니라 권력쟁취를 위한 지적 도덕적 우월성확보 투쟁이었다. 도덕적 우월성은 필히 선악 이분법을 부른다. 도덕엔 인간적 과정이 없다. 선악의 결과만 있을 뿐이다. 옳으냐 그르냐, 좋으냐 나쁘냐, 바르냐 삐뚤하냐의 문제만 있다.

세상을 깨끗이 정화하는 문학작품은 선악 이분법으로 인간 삶 왜곡

세상을 깨끗이 정화시키기 위한 문학작품은 역사의 표면 뒤에 드러나지 않는 인간적 문제와 본질적 실체가 무시된다. 역사의 주인공은 늘 옳아야 되고 정의로워야 된다. 선악의 이분법으로 과장하거나 인간의 실제 삶을 왜곡한다. 우린 역사물을 정직하게 표현하면 외면한다. 선악의 이분법이 극명한 도덕적 영웅담만이 평가받는다.

문학 예술하는 사람은 금기나 제한이 없어야 한다. 예술에 금기나 제한이 있으면 이미 예술이 아니다. 경계와 담이 있으면 문학과 예술은 이루어질 수가 없다.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극악무도한 인간의 악행을 담기도 하고, 저 깊은 곳의 숨겨진 인간의 이중적 본질, 위선과 온갖 부조리를 끄집어내어 해체하는 게 문학이고 예술이다.

극악무도한 상상력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대중은 호응하고, 문호란 호칭은 극악한 상상력이 크기에 비례하여 붙여진다. 문예창작을 가르치는 교수가 수업 중 비튼 표현을 문제 삼아 사직서까지 내게 만든 건 일상적 파시즘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상을 깨끗이 정화시킬 수 있는 글은 절대 세상을 깨끗이 정화시킬 수가 없다. 이런 생각은 반드시 폭력과 전체주의를 불러낸다.

세상은 깨끗이 정화 시킬 수 있는 곳이 아니며, 그런 생각은 필히 전체주의를 낳는다. 친일몰이 적폐청산으로 세상을 깨끗이 만들려는 586들은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나 <아리랑>, <정글만리> 따위를 읽으며 선악 이분법에 젖어든 조정래의 후예들이다. 그런 생각은 필히 진영 정치를 낳는다. 그들의 뻔뻔한 거짓말과 위선은 우연이 아니었다.

 

rsfnew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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