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조우석

요즘 K클래식이란 말이 종종 들린다. K클래식은 서양근대음악 붐을 우리 연주자들이 떠받치는 현상인데, 이 놀라운 현상도 알고 보면 치맛바람이 출발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등 음악 가족 3남매를 키워낸 모친 이원순 여사 얘기가 상징적이다. 그는 6·25 피난 트럭에 피아노부터 실었던 여걸이다. 전쟁통이라고 애들 레슨을 빼먹을 수 없다는 신념인데, 그 유명한 얘기는 그가 쓴 책 <통 큰 부모가 아이를 크게 만든다>(2005)에 등장한다.

치맛바람은 외국에도 사례가 없지 않다. 하지만 ‘캥거루 부모’, ‘헬리콥터 부모’란 말에서 보듯 부정적 뉘앙스다. 그러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키운 힘도 8할은 부모 치맛바람이었다. 미 육사 웨스트포인트에 입교했던 건 청년 맥아더만이 아니었다. 어머니 핑키 여사도 조용히 따라붙었다. 학교 앞 호텔에 장기 투숙해 4년 내내 아들의 성장을 지켜봤던 것이다. 그런 독려 탓에 맥아더는 전설의 장군 로버트 리(98.33점) 한 명을 제외하곤 웨스트포인트 사상 최고점수(98.14점)로 졸업한다.

정경화-맥아더의 어머니 얘길 떠올린 건 축구 스타 손흥민의 아빠 손웅정 감독 때문이다. 며칠 전 그가 나온 TV예능 ‘유퀴즈 온더 블록’을 봤다. "흥민이 절대 월클(월드클래스) 아닙니다"란 말로 워낙 유명하지만, 그의 삶과 철학에 새삼 감동받았다.

아들의 유럽 진출 초기에 소속 클럽에서 가까운 호텔에 장기투숙해서 손흥민의 성장을 체크했다는 회고 대목에선 뒤로 나자빠졌다. 그건 영락없는 핑키 여사의 재림이 아니던가? 축구 외적인 것과 엮이는 게 싫어서, 완전 컴맹에 휴대폰도 안 보고 사는 수도사 같은 삶을 선택한 것도 경이로웠다. "(현역 축구 선수 시절) 나는 그저 그런 선수였을 뿐이다"는 겸손도 남달랐다. 그날 가장 큰 소득은 나만의 오해를 푼 것이다.

그의 그런 행동이 결국 아들 성공에 대한 집착이고, 못 다 이룬 자기 삶의 한풀이 과정이 아니겠는가 짐작했는데, 안 그랬다. "토트넘이건 어디건 흥민이가 행복할 수 있다면 뭐든 오케이!"란 신념에 새삼 그를 다시 쳐다봤다. 내 눈에 그는 정경화-맥아더 부모보다 한 차원 위의 교육철학을 구현했다. 자식과 함께 성장하는 삶, 그 점에서 손웅정 부자는 이미 대한민국의 교사가 아닐까? 그가 한다는 ‘SON축구아카데미’에도 새삼 관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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