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특별전시 ‘이상 염상섭 현진건 윤동주, 청와대를 거닐다’의 일반관람 시작을 하루 앞두고 2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공개된 자료에 시인 이상, 소설가 박태원, 시인 김소운 모습이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김소운 기증 자료
 

한국근대사를 대표할 문인 네 사람의 특별전시가 청와대 춘추관에 자리잡았다. ‘이상·염상섭·현진건·윤동주, 청와대를 거닐다’는 ‘역사·문화·예술복합공간 청와대’를 향한 두 번째 기획이다. 9월 장애예술인작품 특별전(춘추관)에 이어, 어제 개막한 이번 전시는 내년 1월16일까지 열린다. 매주 정기휴관일(화) 외엔 예약 없이 무료관람 할 수 있다. 국립한국문학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청와대 주변 서촌 지역에서 활동했던 문인 4명을 선정했다. 장르와 경향을 아우르는 차원에서 소설가·시인 각 2명, 리얼리즘(염상섭·현진건) 모더니즘(이상) 서정시(윤동주)로 고른 것이다.

이번 전시는 2025년 개관 예정인 국립한국문학관이 그간 기증받고 수집해온 관련 자료를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한국인 정체성의 근간인 ‘우리말’이 근대 문학어로 성장하는 과정의 일부를 보여준다. 책 91점, 작가초상 원화 4점, 사진자료 1점, 신문 자료 1점 등 총 97점을 접하며 일종의 ‘타임 슬립’을 맛볼 수 있다. 네 문인 각자의 작품세계는 물론, 이들의 인간관계를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이 눈길을 끈다. 1934∼1935년 무렵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가로15㎝ 세로14.2㎝)엔 멜빵바지·셔츠에 넥타이 차림으로 팔짱을 낀 채 정면을 응시하는 시인 이상, 노 타이 차림에 안경을 쓴 소설가 박태원, 재킷을 입고 비스듬하게 앉은 시인 김소운이 있다. 김소운 친필 ‘아동세계 간행 당시의 편집실에서’ 메모와 함께 세 사람 성명이 보인다. 이들의 각별한 관계를 증언하는 사진이다. 그 시절 사진이란 아무하고나 쉽게 ‘한 컷’ 하기엔 너무나 고가의 신문물이었다.

이상이 직접 작성한 김기림 시집 ‘기상도’는 문인들의 우정을 엿보게 해준다. 소설가·시인 이상이 훌륭한 디자이너였으며 빼어난 타이포그래피 작품을 남겼다는 사실도 확인된다. 김기림이 200부 한정판 제작한 ‘기상도’도 희귀하지만, 이상이 친구인 소설가 박태원의 중앙일보 연재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 그려준 삽화도 직접 접할 기회 자체가 드문 전시물이다. 또 ‘해바라기’ ‘신혼기’ ‘추도’ 등 우리나라 최초 여류작가인 나혜석의 일대기를 소설화한 염상섭의 작품들도 볼 수 있다.

염상섭의 대표작이자 한국문학사 가장 중요한 리얼리즘 소설로 꼽히는 ‘만세전’의 원형도 만나게 된다. 전시된 잡지 신생활 7호(1922)는 이 장편소설이 제목 ‘묘지’로 연재되던 당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필화사건 때문에 연재가 중단돼 훗날 단행본으로 나오는데, 1924년 ‘만세전’ 초판본(고려공사)과 1948년 개정판 ‘만세전’(수선사)이 이번 전시에서 공개됐다. 개정판엔 염상섭 스스로 검열을 의식해 삭제했던 내용까지 포함돼 있다.

현진건의 대표 단편인 ‘운수 좋은 날’ ‘고향’ ‘B사감과 러브레터’ 등을 수록한 작품집 <조선의 얼골> 초판본, ‘빈처’ ‘술 권하는 사회’ 등이 실린 <타락자> 초판본도 실물 그대로의 모습으로 관람객을 기다린다. 윤동주가 1941년 출간하려 했으나 제자의 안전을 걱정한 스승 이양하의 만류로 발행하지 못했다가 사후인 1948년 발행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등 역시 시대상을 실감하게 한다. 문정희 국립한국문학관장은 "고독·상처와 싸웠던 문인의 작품이 시대를 견디고 살아 남아 이 자리에 와있는 것 자체가 관람하시는 국민들께 큰 위로와 힘이 될 것"이라며 전시의 의미를 짚었다. 아울러 "청와대 하면 떠오르는 어떤 특정한 이미지보다 더 넓고 푸른 바다를 헤쳐 나갈 미래 공간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기대를 밝혔다.

윤동주 시집 1948년 발행된 유고 시집으로 발행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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